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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커진 규모, 줄어든 재미

작품제작 지원비 4천만원으로 늘었는데 경쟁심과 긴장감 다소 떨어진 ‘올해의 작가상 2013’ 파이널리스트 4명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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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01 17:46 수정 : 2013-08-0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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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은, 2012년 도입된 새로운 경쟁 시상 프로그램으로, 영국 테이트미술관의 터너미술상이나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의 휴고보스미술상에 비견되는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있다. ‘올해의 작가상 2012’는 대성공이었다. 그간 국내 최고의 현대미술상으로 자리매김해온 에르메스미술상을 뛰어넘는 전시 규모와 3천만원이라는 작품 제작 지원금은 관객의 이목을 한데 모으기에 충분했고,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된 네 팀의 작가들- 김홍석, 문경원·전준호(우승), 이수경, 임민욱- 도 열과 성을 다해 전시에 임한 모습이었다.

신작으로만 전시 꾸민 이가 없어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공성훈 작가의 (2013)는 캔버스에 유채 물감을 사용했다(왼쪽). 신미경 작가의 (2006∼2013)은 비누를 이용한 작품이다.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올해의 작가상 2013’에선 작가끼리의 경쟁심과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 모습이다. 작품 제작 지원비는 4천만원으로 늘었다는데. 공성훈(1965∼), 신미경(1967∼), 조해준(1972∼), 함양아(1968∼). 4명의 파이널리스트는 등분의 공간에서 각기 문법에 맞춰 각자의 근작전 혹은 약식 회고전을 열었다. 신작으로만 전시를 꾸민 이가 없다는 점은 다소 놀랍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각 4명은 어떤 작업으로 승부를 걸었을까?

이런 경쟁전에서 회화로 승부하는 화가는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생경한 느낌의 색조와 필치로 그려낸 화판들로 전시 공간을 메운 공성훈은 남다른 공력을 자랑했다. <겨울 여행>을 표제로 내세운 그는, 인간의 생활양식에 맞춰 문화적 미장센으로 재맥락화된 장소 혹은 풍경을 어떤 비루한 순간에 고찰하고, 사진 촬영한 기록을 바탕으로 특유의 우울한 풍경화를 귀결짓는다. 그림에 사용한 아크릴물감은 세련미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조합이고, 필치도 어느 정도 회화적 전통에서 벗어나 시장통 싸구려 풍경화의 그것을 닮아 있다. 그는 마치 한국식 도시화가 자연에 초래한 인위적 숭고를 화판에 집적해놓으려는 듯 뵌다.

그러나, 보는 이에게 초월적 숭고를 제시하는 면모로만 보면, 신미경이 우세다. 비누로 역사적 조상이나 도자기를 재현해온 작가는, 해를 거듭하며 기술적 완결성을 높여왔고, 이제 그의 작업에선 한 가지 재료에 통달한 장인의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어려운 것을 쉽게 해낼 때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작업 초기에 적잖은 이들이 이렇게 의구심을 표했다. “왜 굳이 비누로 박물관의 유물들을 모방해야 하지? 무슨 비누공예인가?” 하지만 이제 번역 연작의 일환으로 제작된 신미경의 화병 등에선, 원본을 뛰어넘는 독자적 존재 의의를 획득한 작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캐스팅으로 여러 점 복제돼 화장실 세면대 옆에 놓였던 비누 조상들- 비너스에서 불상에 이르는- 을 한데 모아놓은 모습에선, 사람들의 손에 의한 ‘인위적 풍화’(?) 덕분에 시간성의 숭고가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사이의 풍경’을 전시 제목으로 내건 조해준은, 2002년 시작한 아버지와의 공동 작업 형식을 유지하며 주제를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것이 영 마뜩지 않다. 처음에 작가가 부친 조동환을 한국 근현대사의 구술자인 동시에 협업자로 삼아 그림일기의 서술적 회화 양식을 도출했을 때, 그것에는 묘한 매력과 감동이 있었다. 기존의 허황한 현대미술에 대비되는 소박한 드로잉 형식과 진솔한 구술 서사의 힘은, 현대미술을 원점에서 재정의해낸 것 같았다. 문제는, 해를 거듭하면서 이 형식 이 점차 진부해졌다는 것. 작가가 다양한 디스플레이 인 터페이스를 고안하고, 대형 설치미술을 도출하고, 여타 제3세계의 이야기(화자들은 아버지와 달리 익명으로 처 리됐다)로 주제를 확장하고, 심지어 비디오 설치물까지 제작할 때, 어느덧 원뜻은 퇴색되고 미술품으로서 자가 증식 논리만 도드라져 뵈게 됐다.

우승자는 9월 말에 공식 발표

경쟁전의 특성에 가장 잘 부합한 전시관은, 함양아의 ‘넌센스 팩토리’였다. 작가가 작성한 시나리오에 맞춰, 전 시 공간은 ‘중앙 이미지 박스 통제실’ ‘복지 정책을 만드는 방’ ‘쿠폰을 만드는 방’ ‘예술가들의 방’ ‘팩토리의 지하’ ‘새 로운 팩토리의 도면을 그리는 방’으로 구획됐지만, 그에 맞춰 작품을 감상하기는 쉽지 않고, 꼭 그럴 필요가 있 어 뵈지도 않는다.


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계단이 나오고 무대처럼 설정 된 단상 구석에 책상과 의자가 있는데, 단상 바닥이 흔들 의자처럼 고안된 터라 발을 내디디면 출렁이듯 흔들리는 바닥에 흠칫 놀라게 된다. 중앙 화면엔 열심히 일하는 사 람들의 모습을 담은 픽셀이 투영되고, 지하철역의 굉음 같은 소음이 지나가면 한 명씩 ‘생활의 달인’이 나와서 제 직능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에 대비를 이루는 것이, 카이 스트에서 진행하는 실험쥐 프로젝트를 기록한 영상이다.

과학자들은 쥐의 뇌에 전자장치를 심고 소형 카메라 를 몸에 부착해 다양한 자극으로 구성된 트랙을 달리도 록 하는 대신 보상을 제공했다. 고통을 참고 달리는 쥐 는,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나름의 노하우를 찾아내는 모 양. 관련 영상을 다 보고 나면, 인간 삶의 존재 조건에 대 한 작가의 자조, 특히 상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자기 처 지를 비관한다는 점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올해의 작가상 2013’은 10명으로 구성된 미술계 추천 단에서 각 1명의 작가 추천을 받았고, 국내외 심사위원 5 명이 심사해 파이널리스트 4명을 선발했다. 우승자는 9 월 말에 공식 발표된다. 전시는 10월20일까지. 관람료는 5천원.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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