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서구문명이 갖고 있다가 잃어버린 것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탐구서, 서방 부국은 수백만 년 동안 축적돼 오늘의 인류를 있게 한 생존 기술과 지혜를 상당 부분 상실해

970
등록 : 2013-07-18 11:54 수정 : 2013-07-20 11:58

크게 작게

<어 제 까 지 의 세계> 재러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김영사 펴냄/2만9천원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2012)는 스테디셀러로 자 리잡은 <총·균·쇠>(1998), <문명의 붕괴>(2004)를 쓴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 국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대학 지리학과 교수가 내놓은 또 하나의 문명탐 구서다.

불과 80년 사이

1972년, 뉴기니인들이 서구 백인들과 같은 근대문명을 만들어내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한 것이 <총·균·쇠>였다. 그것을 압축하면, 인종적·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지리·생태학적 환경의 차이라는 거였다. <문명의 붕괴>에서는 앙코르와트와 마야의 도시들, 이스터섬의 거대 석상 들을 만든 문명이 멸망한 주된 원인을 자연자원 남용에 따른 환경 파괴에서 찾았다.

<어제까지의 세계>는 약간 방향을 달리한다. 이 책은 서구화에 의해 급속 히 변질되고 사라져가는 전통적 무리·부족 사회에서 서구 문명이 잃어버렸 거나 갖지 못한 가치를 찾아내거나 재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금도 1천여 개의 언어가 살아 있다는 뉴기니 고원지대의 전통사회를 처 음 ‘발견’한 것은 1931년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었다. 그때 서양인을 처음 본 뉴기니인들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벌벌 떨며 울었다. 80년이 지난 지금 뉴기 니인들은 옷차림에서부터 장수와 비만 등 신체적 특징에 이르기까지 서양 인들과 별로 다를 게 없다.

불과 한두 세대 만에 이뤄진 이런 급격한 변화를 지은이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대로 가면 인류가 오랜 세월 축적해온 소중한 가치나 현대문명의 병폐를 치유하고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단기간에, 그것도 영 원히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전통사회 자 체를 현대문명의 대안이라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통적인 삶을 절 대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현대 세계에도 막대한 장점이 있다.”

방대한 연구 성과를 뒷받침하는 실사


지은이가 생각하는 전통사회의 장점은 서방 부국들(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이 갖지 못한 것, 엄밀히 말 하면 갖고 있다가 잃어버린 것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사회가 600만 년 전 인류가 침팬지와 갈라진 이래 축적해온 가 치와 지혜를 담지하고 있다고 본다. 인류는 불과 1만1천 년쯤 전에 농업을 시작했으며, 그 물적 토대 위에 국가가 등장한 것은 5400년 전이었다. 그리 고 유럽이 산업혁명과 함께 세계를 제패한 것은 수백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세월 동안 서구 문명과 서구화된 세계는 수백만 년에 걸쳐 축적돼 오늘의 인류를 있게 만든 생존 기술과 지혜를 상당 부분 상실해버렸다. 그런 오랜 지혜의 원형들이 전통사회 속에 살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책은 그 지혜를 평화적인 분쟁 해결, 유대감을 강화하는 육아와 노인 대 우,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 전쟁, 종교, 언어, 식생활 등 9가지 주제로 나눠 살핀다. 진화생물학과 유전학, 언어학, 고고학 등 인문과 자연과학을 넘나드 는 방대한 연구 성과를 동원하는 그의 책들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50여 년 에 걸친 그의 전통사회 실사(實査)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승동 기자 한겨레 문화부 sdh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