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상위 1%의 거짓말 “또 다른 세계는 불가능하다”

저성장의 원인은 불평등이라는 스티글리츠… 가진 것 지키려는 1%의 ‘이념전쟁’에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정책 반대로 하면 된다” 역설

970
등록 : 2013-07-17 13:47 수정 : 2013-07-20 11:48

크게 작게

<불평등의 대 가> 조지프 스티글 리 츠 지 음, 이순희 옮김/열린책들 펴 냄/2만5천원

“이들은 더는 빚(학자금 대출)을 내려는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극심한 절망감과 환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유한 부모의 도움을 받아 무보수 인턴으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있는 또래 학생들을 볼 때면 이들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졌다. 서민층 자녀들은 무보수 인턴 자리를 유지할 경제력이 없었고, 장래성을 따질 여유도 없이 닥치는 대로 임시직 일자리를 잡아야 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가 신작 <불평등의 대가>에서 묘사한 미국 대학생들의 상황이다. 너무 비슷해 한국이라 착각할 정도다.

한국이라 착각할 것 같은 비슷한 미국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때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1%의, 1%를 위한, 1%에 의한’ 나라로 전락한 미국의 불평등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재 미국 상위 1%에 속하는 가구가 소유한 부는 미국인 표본가구가 소유한 부보다 225배 많다. 이는 1983년보다 2배나 심해진 것이다.

불평등은 단지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다. 그는 “(불평등으로 인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국내총생산이 감소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 불안정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돈이 상위 1%에게만 집중되면서 서민층이 쓸 돈이 줄어들고, 그 결과 소비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저성장의 원인은 분배가 아니라 불평등인 셈이다. 상위 1%의 소득 가운데 5%포인트만 하위계층이나 중위계층에게 이동시켜도 국내총생산(GDP)은 1.5~2%포인트 올라 갈 수 있다는 것이 스티글리츠 교수의 분석이다.

하지만 불평등을 완화시킬 책무가 있는 정치권은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있다. “오늘날 정치라는 싸움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상위 1%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의 규칙’을 정하기 위해 정치권에 막대한 선거자금을 대고, 정치인이나 관료가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좋은 자리를 제공해 금전적 보상을 해준다.

하지만 미국은 민주주의 사회이고,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99%가 뭉쳐서 이런 상황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그들은 부지런히 ‘관념 전쟁’ ‘이데올로기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상위 1%에게 이로운 것은 만인에게 이롭다” “상위 1%가 원치 않는 일을 하면 나머지 99%가 피해를 입게 된다” 같은 관념을 99%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런 관념들은 “상위 1% 쪽에서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일갈한다.


1%의 거짓말에 속지 않고 어떤 정책이 1%의 이익에 부합하고 어떤 것이 99%의 몫을 키우는지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부자 감세, 작은 정부, 민영화, 규제 완화, 복지 축소를 통한 재정 적자 감축, 노동시장 유연화, 중앙은행 독립성과 물가 안정의 절대시 등은 전형적인 1%를 위한 정책이다.

‘전문가’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상위 1%는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열심히 99%를설득하지만, 스티글리츠 교수는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일반 대중의 이익을 반영하는 민주주의를 확보하고 지금까지 해온 경제정책을 반대 방향으로 바꿔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이런 의문들에도 답을 줄 것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왜 계속 낮아지는지, “경제민주화를 하면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전문가’가 왜 그렇게 많은지, 경제관료들이 왜 민간기업이나 은행의 고위직으로 척척 들어앉는지.

안선희 기자 한겨레 문화부 sh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