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인력 퇴출 프로그램에 의해 원거리 발령을 받더라도 노동자들은 분노하는 대신 농사를 짓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비극을 희망으로 전복했다.김미례 제공
회사는 비용 대비 능률이 떨어지는 노동자를 ‘CP’라고 불렀다. 인사고과 저평가자, ‘C-플레이어’의 약자다. CP들은 연고가 없는 외지에 발령을 받거나, 그나마도 적응을 할라치면 또 다른 외지로 옮겨가라는 통보를 받는다. 이해관씨는 이런 식으로 ‘날아다니는’ CP들의 고단함에 대해 말했다. “예컨대 고장난 걸 고치는 게 능력이라고 하면, 집을 잘 찾아가는 것도 능력이에요. 훤히 골목을 잘 아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업무 환경이 계속 바뀌는 사람의 처지 차이는 클 수밖에 없죠. 고장난 걸 고치는 사람들은 하루에 몇 개를 고쳤느냐가 실적이에요.” 회사는 모든 업무를 수치화해 실적으로 계산했다. 휴대전화를 다 팔지 못한 이들은 ‘자뻑폰’을 만든다. 실적을 채우기 위해 자기 이름으로 개통하는 것이다. 이 자뻑폰이 쌓이면 ‘장롱폰’이 된다. 개통만 된 채 쓰이지 않고 장롱에 쌓여 있는 휴대전화다. 그래도 실적이 시원찮으면 평가에서 F등급을 받는다. 조직에서 5%는 무조건 F를 받는다. 옆에 있는 사람이 전화기를 몇 대나 팔았는지 서로 눈치를 본다.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24일 KT 노조원 82.1%가 찬성했다는 ‘의심스런’ 임단협안 찬반투표 내용 중에는 F를 정해진 횟수 이상 받으면 퇴출당할 수 있도록 한 면직 제도도 있다. 관리자에게는 퇴출 대상자가 회사를 그만두게 만드는 것이 실적이다. 김미영씨의 말에 따르면 2011년 양심선언을 한 반기룡씨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저도 처음에 듣고 ‘설마’ 했어요. 후배가 퇴출 대상자로 내려왔대요.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줬어요. 그 사람이랑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술을 먹어라, 그리고 대리운전하지 말고 그냥 차 몰고 가라고 시켜라, 그러면 저기서 기다리고 있던 차가 와서 일부러 받아버리는 거예요. 그럼 음주운전 사고를 내죠. 품위 유지 관리를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징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걸 양심상 도저히 못하겠다고 해서 그분도 퇴출 대상자가 됐어요.” 2011년 반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KT 인력 퇴출 프로그램에 대해 폭로했지만 회사는 전면 부인했다. 영화는 이렇게 회사와 싸웠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그럼에도 생을 이어가기 위해 굴욕적인 상황을 감수하며 업무를 지속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회사의 집요하고 은근한 공격에 대놓고 역공을 시도하는 유쾌한 50대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들은 회사가 원거리 발령을 내면 분노하는 대신 시골 생활을 즐거이 해나가고, 장시간 업무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사규에 정해진 대로 출퇴근 시간을 지키고, 할당된 제품을 다 판매하지 못하면 퇴근은 없다는 팀장의 말에 “잘 있어”라고 말해버리고 정시에 퇴근한다. 퇴근은 없다? “잘 있어” 정시 퇴근 영화는 지금은 비참하지만 어쨌든 다시 행복해지고 싶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김미례 감독의 말을 빌리면 “안정된 공간에 있음으로써 그것이 감옥이 돼버린”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김 감독은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간 노동운동이 가졌던 조직적 움직임과 거대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비극을 희망으로 전복하는 개인의 힘”을 이야기하고, “분열됐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도닥이는 영화라고 전했다. 내년 초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영화는 80%까지 제작을 마쳤다. 10월 초까지 막바지 작업을 할 계획이다. 김 감독이 전세 보증금을 빼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제작비는 부족하다. 나머지 몫은 관객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제작 지원은 소셜펀딩 사이트 ‘텀블벅’(tumblbug.com/ko/sanda2013)을 통해 할 수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