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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도대체 님은 누구시길래

책날개에 넣는 저자 사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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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18 15:2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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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주간님, 오늘 오신 분 중에 장회익이라는 이름이 있는데요.”

“뭐? 정말 선생님이?”

편집자는 책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책이라는 것과 관련된 건 다 하는 사람이다. 노가다도, 술상무도…. 그중에 낭독회, 북콘서트, 저자 강연 등과 같은 일도 한몫을 차지한다. 내가 처음 진행하던 강연은 많아야 매회 15~20명 정도 모이는 연속 특강이었다. 어느 날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노신사 한 분이 조용히 들어오셨다. 주로 대학원생들이 오는데 어떻게 이런 분이? 그런데 명단에서 이름을 보는 순간, 어? 설마?

김보경 제공
장회익 선생님이 누군가. 물리학의 대가,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녹색대학 총장. 물론 우리 출판사가 이분과 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조그마한 데 오셨다고? 문제는 내가 그분 얼굴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장회익 선생님이세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물론 물어보면 대답은 하시겠지. ‘네, 제가 장회익인데요’라고. 만약 그분이 아니라면 또 얼마나 민망해하실까. (‘정치적으로 옳아야 하는’ 계간지 편집자가 그럴 수 없지.) 맞다, 주간님은 아시겠지. 그런데 주간님의 이 난감한 표정이라니. “저도 직접 뵌 적은 없는데….”

인터넷을 급하게 뒤져 사진을 찾아보니, 안경 쓰시고, 머리 백발이시고, 마르시고, 뭔가 인문학적이시고…. 이거 왕자와 거지도 아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두고 주간님이 혹시 모른다며 책 몇 권을 챙겨 다가가셨다. “선생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저희가 만든 책입니다.” 그리고 곧 강연이 시작되었고 끝나자마자 그분은 학자다운 자태로 조용히 사라지셨다. 다음날 출판사가 난리가 났다. 진짜 장회익 선생님이 오셨어? 몰라요. 모른다고요. 나는 하루 종일 편집장님과 사장님의 눈을 피해 도망다녔다.

이어령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신이 젊었던 때는 글 쓰는 사람이 연예인이던 시절이었다고. 평론가의 사진이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던 시절이었다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책에서 점점 저자 얼굴이 사라진다. 자기 사진 싣기를 싫어하는 저자도 있고, 편집자들도 광고모델도 아닌데 띠지나 책날개에 꼭 사진을 넣어야 하느냐고 말한다.

암, 넣어야 하고말고. 나는 우리 사회의 지적 자산을 만드는 이들의 얼굴을 많은 사람이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자를 국민배우급으로 대우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된다. 무엇보다 독서는 한 사람과의 대화이기도 한데, 왜 얼굴도 모르는 ‘님’이어야 한단 말인가. 좋은 책은 다 읽고 나면 ‘이 사람 궁금하다’ ‘이 사람 글 또 읽고 싶다’ ‘이 사람 한번 만나고 싶다’ 이런 마음을 남긴다. 나는 저자의 사진을 책에 실을 때마다 독자들 마음속에 그런 욕망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런데 이런! 생각해보니 나는 장회익 선생님을 그 뒤로도 직접 뵌 적이 없네. 또 못 알아뵙는 거 아냐?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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