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친절한 일산 주민의 발, 마을버스 베테랑 기사 안만준과 그의 동료들
안만준 기사(65)가 운전하는 버스가 저기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취재를 위한 두 번째 만남이다. 그의 미소가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인 듯 다정하다. 일반인 요금 400원. 요금함에 얼른 500원 동전을 집어넣었다.
“에이, 그러지 마세요.” 나무라듯이 안 기사는 동전을 되돌려준다. 다른 승객들이 정실주의라고 욕하지 않을까. 눈치가 보이면서도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공짜버스 아무나 타나. “어서 오세요.” 그는 차에 오르는 승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넨다.
백화점 셔틀버스 중단, 덕 좀 봤나요?
<감사와 부탁의 말씀> “항상 불편과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저희 마을버스를 이용하시는 승객(고객)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모든 산업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하나, 우리 현실 속의 대중교통 서비스 질은 개선되어 지질 않고 있습니다. 이에, 깊이 반성하며 이제라도 泣斬馬謖의 아픔을 겪어서라도 고객이 느낄 수 있는 써비스를 제공하려 하오니 고객 여러분의 많은 질타와 격려를 부탁 드리며 이용 시에 불편한 사항과 운행직원 (운전기사)의 문제점을 차량 번호만이라도 알려 주시면 즉시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꼭 변화하겠습니다. 항시 행복과 사랑 속에 생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제반 민원전화 ooo-oooo 마을버스 가족일동 올림.” 원문 그대로 옮겨놓은 이 글은 마을버스 안에 붙여져 있었다. 어스름한 차 내 불빛으로 읽은 내용은 감동적이었다. 이 동네 저 동네 구석구석 다니며,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 학교가는 학생들, 시장가는 아주머니, 바람쐬러 나선 할머니, 아기 안고 병원가는 새댁, 학교가는 학생들, 온갖 사연의 사람들의 발이 되는 마을버스. 대중교통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마을버스가 과연 어떻게 변하려는 것일까. 그 변화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안 기사를 만난 것이다. 운전경력 35여년의 베테랑. 택시도 몰았지만 그 전에는 서울시내에서 마을버스를 운전하다가 5년 전에 경기도로 옮겨와 마을버스만 10년째 운전하고 있다. 하루 16번을 똑같은 노선을 오고가는 단순 운행에다가 주민들의 불만도 잔돈푼인 찻삯만큼 잦은 게 태반이다. 그래도 그는 친절불량, 시간무시, 정차위반 등 마을버스의 고질적인 폐습을 초월한 모범운전자로 이름이 높다. 첫날 인터뷰는 노동조합으로 쓰이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이루어졌다. 에어컨과 컴퓨터가 갖춰진 사무실에는 탤런트 송혜교의 사진이 가족사진처럼 걸려 있었다. 하루걸러 일하는 격일 근무지만 비번인 동료기사들이 여럿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백화점 셔틀버스도 중단되었으니 승객이 많이 늘었겠군요? “그게 말이지요, 오히려 줄었어요. 처음엔 한 20% 느는가 싶었는데 자가용을 끌고 나오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사실 백화점 손님들 반은 거품이었던 것 같아요. 그나저나 우리 버스 승객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노선에 경쟁버스가 비집고 들어와서 그래요.” “글쎄, 경쟁버스는 안 돼요”
안 기사의 말을 바로 이어서 노동조합 위원장 이종길씨가 덧붙인다. “셔틀버스 폐지 이후 노선 변경이 있었는데, 시에서 말이지요, 어떻게 한 건지 우리 노선에 경쟁회사를 허가해준 겁니다. 마을버스도 아닌 일반버스로 말이지요. 지난 몇년간 적자운행을 감수하면서 우리가 닦아놓은 노선에 경쟁버스를 넣으면 안 되는 거거든요.”
“우리 안 기사 같은 분은 참 모범이 되지요. 항상 차분하게 운전하시는 것을 보면 배울 게 많아요.” 어느새 안 기사 옆에 앉은 서춘석 기사가 말을 거들었다. “그런데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경쟁노선을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승객의 입장에서 물었다. 주민들이야 어느 버스가 어느 회사인지 아나요. 그저 친절한 기사, 깨끗한 버스, 시간 지키는 버스를 타고 싶어하지요. “우리도 친절교육 많이 하거든요. 회사에서 저희한테 전부 마이크 달아주면서 인사하라고 교육시키지요.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하기 싫으면 고향 앞으로 가세요, 라고 하죠.” 안 기사가 답했다.
“그런데 마을버스에는 기사들이 오래 안 있어요. 초보자가 대부분인데다가 조금 실력이 되면 얼른 일반버스로 옮겨가 버려요.” 노조를 맡은 이 위원장은 고충을 토로한다.
“참 안타깝지요. 마음을 정하고 하면 단합도 잘되고 그러면 근무조건 개선이나 승객에 대한 서비스 개선이 훨씬 더 잘 이루어질 텐데 말이지요. 우리가 조합을 만든 게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그동안 키운 기사만 해도 여럿 돼요. 실컷 가르쳐 놓으면 큰 회사로 가버릴 때는 마음이 좀 그래요.” 씁쓸한 표정으로 안 기사가 말했다.
고참으로 하루 17시간씩 격일 근무하고 한달 봉급이 120만원 남짓이다. 얼마 전 임금협상이 스무드하게 이루어져 곧 조금씩 오를 전망이긴 하다. 그런데 왜 버스는 제시간에 못 오나요?
“배차시간 맞추는 게 저희들한테도 제일 중요해요. 정확하게 시간 맞추려고 하지만 갑작스런 차량 고장이나 교통체증 같은 불기피한 변수가 생기면 난감하지요. 그런데 한 십분 늦었는데도 무턱대고 30분 기다렸다고 하시는 분들은 좀 서운해요. 그저 죄송합니다 하고 말씀드리지요. 대부분 양해해주시는데 내릴 때까지 막 욕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버스에는 앞차와의 간격을 알려주는 ‘타코’라는 기계가 있어 전체 운행 상황을 그래프로 정확하게 기록해준다. 그래서 어느 차량이 얼마나 늦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특히 학생타임에 걸리면 어쩔 수 없게 되지요.” ‘학생타임’이란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을 말한다. 중딩, 고딩들이 몇백명, 몇천명 한꺼번에 버스에 오른다고 상상해보라.
“우리가 운전솜씨 자랑하려고 빨리 달리는 거 아닙니다. 신호위반하고 싶어서 하는 기사 아무도 없어요! 회사에서는 배차시간을 맞추라고 닦달하지, 신호는 막히지, 게다가 다른 회사버스가 앞서가면서 손님 다 실어 가면 누가 좋겠냐 이 말입니다.” 언젠가 내가 탄 버스의 기사는 손님도 없는데 잔돈버튼을 눌렀다. 알고본 즉, 저기 저 앞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승객이 천원 지폐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리미리 시간절약을 하는 것이다.
취객의 행패와 데고보꼬를 넘으며…
다음 질문. 서 있는 승객이 대부분인데 브레이크를 좀 살살 밟으시면 안 되나요? 화가 나서 급히 밟으시나요? “아니, 안 그렇지요. 안전사고나면 어쩌려고. 옛날에는 일부러 손님들을 휘둘러주기도 했지만요.” 이 위원장이 씩 웃으며 말한다. 가끔 급브레이크를 밟아줘야 비몽사몽간에 ‘방황하고 있던’ 손님들이 손잡이를 꽉 잡아서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 간부인 박용직 부장에게 안내되었다. 경영마인드로 똘똘 뭉쳐진 인상의 그는 대뜸 안 기사 칭찬부터 한다. “이분요, 그동안 일하면서 민원 한 건도 안 들어왔어요. 그거 참 어렵거든요. 일부러 안 기사를 기다렸다가 타는 손님도 있어요. 이런 양반을 인간복제해서 좌-악 앉히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대통령 표창 줘야 돼요!” 그리고는 곧장 회사운영의 애로사항으로 넘어간다. “경쟁노선 그거 참,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기사 봉급 올려주고, 좋은 버스로 승객 모시고, 다 하고 싶지요. 그런데 하드웨어가 받쳐줘야지요.” 보험료, 기름값, 인건비, 버스값, 뭐 하나 안 오른 게 없는데 요금은 몇년 전 그대로이고 시의 지원도 까마득하다는 말이다.
“동사무소 앞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안 기사는 하차하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하시는 손님들도 많아요. 아주 보람을 느끼지요.” 술 취해서 기사의 뒤통수를 치는 승객도 참고, 하루에 천번씩 넘어야 하는 데고보꼬(과속방지턱)도 참는다. 변함없는 주민의 발이라는 자부심으로 운전대를 잡기 때문이다.

사진/ (강창광 기자)
<감사와 부탁의 말씀> “항상 불편과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저희 마을버스를 이용하시는 승객(고객)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모든 산업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하나, 우리 현실 속의 대중교통 서비스 질은 개선되어 지질 않고 있습니다. 이에, 깊이 반성하며 이제라도 泣斬馬謖의 아픔을 겪어서라도 고객이 느낄 수 있는 써비스를 제공하려 하오니 고객 여러분의 많은 질타와 격려를 부탁 드리며 이용 시에 불편한 사항과 운행직원 (운전기사)의 문제점을 차량 번호만이라도 알려 주시면 즉시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꼭 변화하겠습니다. 항시 행복과 사랑 속에 생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제반 민원전화 ooo-oooo 마을버스 가족일동 올림.” 원문 그대로 옮겨놓은 이 글은 마을버스 안에 붙여져 있었다. 어스름한 차 내 불빛으로 읽은 내용은 감동적이었다. 이 동네 저 동네 구석구석 다니며,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 학교가는 학생들, 시장가는 아주머니, 바람쐬러 나선 할머니, 아기 안고 병원가는 새댁, 학교가는 학생들, 온갖 사연의 사람들의 발이 되는 마을버스. 대중교통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마을버스가 과연 어떻게 변하려는 것일까. 그 변화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안 기사를 만난 것이다. 운전경력 35여년의 베테랑. 택시도 몰았지만 그 전에는 서울시내에서 마을버스를 운전하다가 5년 전에 경기도로 옮겨와 마을버스만 10년째 운전하고 있다. 하루 16번을 똑같은 노선을 오고가는 단순 운행에다가 주민들의 불만도 잔돈푼인 찻삯만큼 잦은 게 태반이다. 그래도 그는 친절불량, 시간무시, 정차위반 등 마을버스의 고질적인 폐습을 초월한 모범운전자로 이름이 높다. 첫날 인터뷰는 노동조합으로 쓰이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이루어졌다. 에어컨과 컴퓨터가 갖춰진 사무실에는 탤런트 송혜교의 사진이 가족사진처럼 걸려 있었다. 하루걸러 일하는 격일 근무지만 비번인 동료기사들이 여럿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백화점 셔틀버스도 중단되었으니 승객이 많이 늘었겠군요? “그게 말이지요, 오히려 줄었어요. 처음엔 한 20% 느는가 싶었는데 자가용을 끌고 나오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사실 백화점 손님들 반은 거품이었던 것 같아요. 그나저나 우리 버스 승객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노선에 경쟁버스가 비집고 들어와서 그래요.” “글쎄, 경쟁버스는 안 돼요”

사진/ 안만준 기사는 친절불량, 시간무시, 정치위반 등 마을버스의 고질적인 폐습을 초월한 모범운전자로 이름이 높다.(강창광 기자)

사진/ 동료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강창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