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거부했던 두 ‘시인’, 윌리스 파울리의 <…랭보와 짐 모리슨>
랭보 연구자인 월리스 파울리(1908∼98) 미 듀크대학 교수가 랭보와 모리슨이라는 두 ‘시인’의 삶과 문학을 다룬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이양준 옮김, 민미디어(02-719-8048) 펴냄, 8천원)이 번역돼 나왔다. 아르튀르 랭보(1854∼91)는 19세기에 활동한 프랑스의 천재 시인이고, 짐 모리슨(1943∼71)은 베트남전쟁이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던 60년대 말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던 록그룹 도어스의 리드 싱어였다. 평생을 프랑스 문학 연구에 바친 노학자가 왜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는 듯 보이는 두 사람을 비교하는 ‘일탈’을 감행한 걸까.
프랑스문학 노연구자의 일탈?
그가 천애의 방랑자이자 반항아이던 랭보를 연구하는 한, 짐 모리슨이란 인물을 피해가기란 어려웠을지 모른다. 난해하고 상징적이며 폭발적이고 광기 서린 노래말과 강렬한 비트로, 기성세대의 위선과 이중성에 신물이 날 때까지 난 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짐 모리슨이, 랭보와 니체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랭보’라는 공통분모로 인해, 노교수는 짐이라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젊은이와 살짝 스쳐지나가는 인연을 얻는다. 1966년 랭보의 작품을 영역해 <랭보 전집>을 펴낸 지 2년이 지난 1968년, 그는 자신을 ‘록가수’라고만 밝힌 짐 모리슨으로부터 팬레터를 받는다. “랭보 번역집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프랑스어 실력이 신통찮은 관계로 이런 게 꼭 필요했거든요. 저는 록가수입니다. 교수님이 번역하신 책은 언제나 저와 함께 있습니다.” 이미 예순의 나이에 접어든 노학자가 짐 모리슨이 누군지 알 턱이 없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짐 모리슨이 누구지?”라고 묻자 학생들은 야유 섞인 목소리로 “도어스의 리드 싱어를 모르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노교수는 이후 <여기서는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한다>란 불길한 제목이 박힌 짐 모리슨 전기를 접하며, 그의 록음악과 만난다. 그는 거기서 랭보의 영혼이 짐의 목소리를 빌려 절규하고 있음을 듣는다. 랭보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 이후 왕당파의 반격으로 계급갈등이 첨예하게 들끓던 시절, 더 구체적으로는 ‘파리코뮌’이란 이름을 얻은 1870년 프롤레타리아트의 도시 바리케이드 전투가 처참한 살육과 함께 실패로 돌아간 폐허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주변 어린이들로부터 차단해 고귀한 아이로 키우려 했던 마담 랭보의 억압은 소년 랭보를 내면으로 곪아터지는 반항아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3년 동안 쓴,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란 제목으로 묶인 그의 시편들은 가족과 종교와 사회와 국가를 향한 극단적인 반항의 불온한 상징으로 가득한 묵시록으로 남았다.
직업군인인 아버지 아래서 자라나 어릴 때부터 다루기 힘든 반항아였던 짐 모리슨이 랭보를 자기의 영웅으로 받아들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학교에 늦고도 “집시에게 유괴당했다”든가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게 됐다”는 거짓말을 태연하게 늘어놓던 모리슨이 단순한 반항아인 것만은 아니었다. 훗날 자신의 동료에게 자신이 “시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하곤 했던 그를, 그의 고등학교 영어교사는 “<율리시즈>를 읽고 이해했던 거의 유일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문학과 영화와 연극 사이에서 온갖 실험을 벌이던 모리슨은 문학보다 훨씬 폭발성이 강했던 록음악을 통해 기성세대를 조롱하고 자신의 관객에게조차 모멸과 환멸을 맛보게 하는 ‘샤먼’으로 변해간다. 공연중 성기를 드러내는 ‘외설행위’로 경찰에 의해 무대에서 끌어내려진 1969년의 ‘마이애미 사건’ 때 짐은 자신의 팬이기도 한 경찰관에게 “현실의 한계를 실험해보고 있었다”고 속삭인다. 그 말이 랭보의 <지옥…>에서 인용한 것임을 경찰관은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랭보와 모리슨’은 이 늙은 불문학자의 단골 강연 주제였다. 이 책은 그의 이런 오랜 탐색의 결과물로서, 짐 모리슨의 음악이 세기말의 저항적 문학을 이어받은 ‘시편’이었음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랭보와 모리슨이란 두 저항 시인에게서 지은이는 “과학 따위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심리의 미스터리”를 읽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기타를 잡았건 펜을 잡았건, 환멸스런 현실을 극단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진실을 드러내는 이들이야말로 ‘시인’이란 이름에 값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상수 기자/ 한겨레 문화부 leess@hani.co.kr

노교수는 이후 <여기서는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한다>란 불길한 제목이 박힌 짐 모리슨 전기를 접하며, 그의 록음악과 만난다. 그는 거기서 랭보의 영혼이 짐의 목소리를 빌려 절규하고 있음을 듣는다. 랭보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 이후 왕당파의 반격으로 계급갈등이 첨예하게 들끓던 시절, 더 구체적으로는 ‘파리코뮌’이란 이름을 얻은 1870년 프롤레타리아트의 도시 바리케이드 전투가 처참한 살육과 함께 실패로 돌아간 폐허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주변 어린이들로부터 차단해 고귀한 아이로 키우려 했던 마담 랭보의 억압은 소년 랭보를 내면으로 곪아터지는 반항아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3년 동안 쓴,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란 제목으로 묶인 그의 시편들은 가족과 종교와 사회와 국가를 향한 극단적인 반항의 불온한 상징으로 가득한 묵시록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