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의 서사와 박은옥의 서정… 17년만의 ‘얘기노래마당’에서 밀도있게 만난다
정태춘·박은옥씨가 촬영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노란 조명 아래 선 부부는 결혼생활 20년 만에 처음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진관에 들어선 사람들처럼 쑥스러워한다. 박씨의 어깨에 손을 얹어달라는 사진기자의 주문에 정씨는 연신 손사래를 친다. 카메라 앞에서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부부가 된 이들은 올해로 음악생활 24년째, 90년대 초반부터 음반사전심의제와 싸워 한국대중음악의 자유를 한뼘 더 넓힌 장본인들이다. “진땀나네. 그만하죠.” 싸움이건 노래건 ‘현장’에서만 살아온 이들에게 ‘연출’은 음악보다, 싸움보다 어려운 일인가보다.
기타 코드 잡을 시간도 없었던 2년간
정태춘·박은옥씨가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기 위해 무대로 돌아왔다. ‘자유’ 콘서트,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등 동료들과 함께하는 초청공연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두 사람만의 공연을 본 지는 2년이 넘었다. “2년 동안 둘이 앉아서 기타 코드 잡을 시간이 없었어요. 정태춘씨는 저작권협회문제 때문에 정신없었고, 고3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그렇듯 마음의 부산함도 있었고.” 정씨보다 더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박은옥씨는 “새로 시작하는 것 같다”며 설레는 마음을 솔직하게 내보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공연은 2년 만이 아니라 17년 만에 준비하는 무대다. 이들이 80년대 초반 해온 ‘얘기노래마당’을 다시 시작하는 것.
“얘기노래마당은 일반적인 의미의 콘서트와는 좀 다르죠. 콘서트 중간에 잔재미로 이야기 시간을 가지는 게 아니라 말그대로 관객과 이야기하는 자리예요.” 둘이 공연을 시작하던 당시 일방적으로 노래를 들려주는 ‘리사이틀’이나 ‘쇼’와는 다른 양식으로 관객과 만나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타이틀이 ‘얘기노래마당’이었다. 당시 검열로 음반에 들어가지 못한 노래나, 상처가 난 노래를 제대로 부르는 것도 얘기노래마당의 중요한 의미였다. “우리 이야기뿐 아니라 관객의 이야기, 바라는 점 같은 것도 듣고 싶었죠.” 이들은 무대 아래의 관객과 함께 가요심의문제, 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했다. 엉뚱한 질문도 많았다. “불교노래가 많은 것 같은데, 파계승 아니냐, <촛불>에서 ‘나를 버리신 내 님’이 누구냐 하는 질문도 많았죠. 노래를 따라부르기 힘들다는 불만도 있었고요. 유쾌하고, 진지한 자리였어요.” 이들이 다시 얘기노래마당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이제 정말 다시 한번 말을 걸어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90년대는 침묵의 시간이었죠.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감과 실망의 반복이 교차하고, 그 사이에 연민도 끼어들면서 전면적인 비판은 유보됐죠. 그러나 이제 다시 이야기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이런 것이었나, 이건 아니다라고.” 정태춘씨가 이번 무대에서 말을 건네고 싶은 사람들은 80년대라는 신산한 시절을 함께 뚫고온 지난 시절의 동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386이라는 말에 대해서 거부감도 많고 냉소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헌신한 체험을 공유한 386세대는 다른 세대와는 다른 이념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전 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주류사회에 편입한 사람들이 386의 대표처럼 상징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대에 대한 소속감을 잃고, 오히려 혐오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나는 대다수 386들의 마음 저변에는 옛날에 가졌던 상상력,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의지가 남아 있다고 믿어요.” 두 사람은 이번 무대의 부제를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라고 붙였다. 이 제목은 정씨가 이번 무대에서 처음 선보이는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정씨는 이 곡에서 ‘모든 걸 잃고’, ‘어둠 속에서 깊이 잠들었던’ 시간을 깨어나 ‘어둠 걷혀 깨는 새벽 길모퉁이를 돌아’, ‘가끔씩 꿈으로 배회하던’ 그 정류장으로 나갈 것을 제안한다. 이 밖에도 이번 공연에서 <사람들> <오토바이 김씨> 등 다섯곡의 신곡을 소개한다. 새로운 노래들은 <92년 장마, 종로에서>만큼 현실을 생생하고 뜨겁게 담아내고 있다. 생각이 조금은 다른 두 사람 “어떤 이들은 저의 노래에 대해서 구호 같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관념을 노래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가 뮤지션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말하는 사람이죠. 할말이 없다면 노래할 일도 대중 앞에 설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씨의 말이 끝나자 박씨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음악을 통해 발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의 감성을 어루만지는 노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무대에서도 정씨는 새 노래를 더 넣자. 박씨는 관객에게 익숙한 지난 노래를 더 부르자고 주장하면서 한참 동안 프로그램을 고민하기도 했다. “나는 사람에 대한 슬픔이나 연민 같은 걸 노래하고 싶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태춘씨는 그 슬픔을 만들어내는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죠.” 박씨는 얼마 전 부부가 프랑스에 다녀온 경험을 풀어놓았다. “화가 반 고흐가 죽기 전 살았던 집에 갔었어요. 창문이 노트만한 좁은 방이었지요. 그때 제가 느꼈던 건 지독한 슬픔 같은 거였죠. 그리고 돌아와서 정태춘씨가 써놓은 메모를 보았는데 ‘감옥 같은 다락방’ 이런 내용이었어요. 참 다르죠?” “함께 음악하다보면 토론을 많이 하시겠네요” 했더니 정씨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토론 수준이 아니죠.”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많은 대중보다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라도 밀도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점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 같아요.” 새 노래들의 노래말이 전의 노래들보다 길어지고, 실명이 거론되는 식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변한 건 그런 이유다. 서정적인 음색의 박씨로서는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이 줄어 아쉬울 것도 같다. “정태춘씨가 한쪽으로 치우칠수록 제가 반대편에 서서 둘의 무게추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은 인정하지 않죠.” 박씨의 말에 정씨는 그저 빙그레 웃는다. 세상의 슬픔, 사랑의 아픔… 이번 무대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각자의 무대를 가진다. 1부에서는 정씨가, 2부에서는 박씨가, 3부에서는 함께 무대에 올라간다. 정씨는 앞서 말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 “이건 아니다”라고 현실에 대해서 발언하는 새 노래들을 부를 예정. <봉숭아> <회상> 등 귀에 익숙한 노래를 준비하고 있는 박씨는 오랫동안 엄마로, 아내로 살면서 느껴온 생활인으로서 겪어온 마음의 울림을 관객과 소통할 생각이다. 20년 동안 함께 살면서 음악을 해온 두 사람은 많이 다른 것도 같지만 세상의 슬픔,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깊이 응시해왔다는 면에서 참 비슷하게 생겼다. 정씨가 그 아픔에 대해서 유장한 목소리로 분노하는 서사시인이라면 박씨는 고요한 목소리로 상처의 결을 어루만지는 서정시인이다. 얘기노래마당이 기다려지는 건 바로 두 시인이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386세대일 필요는 없다. 다만 ‘이건 아닌데’라고 고개를 젓는 사람들, 생활의 무게추 아래서 허덕이는 사람들이라면 참 오랜만이라고 악수하면서 함께 분노하고, 함께 토로할 것이다. 그리고 함께 위로받으며 17년 동안 빈 칸으로 이어져온 시간을 메워갈 것이다(공연: 9월18∼23일 연강홀, 문의: 02-3272-2334).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얘기노래마당은 일반적인 의미의 콘서트와는 좀 다르죠. 콘서트 중간에 잔재미로 이야기 시간을 가지는 게 아니라 말그대로 관객과 이야기하는 자리예요.” 둘이 공연을 시작하던 당시 일방적으로 노래를 들려주는 ‘리사이틀’이나 ‘쇼’와는 다른 양식으로 관객과 만나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타이틀이 ‘얘기노래마당’이었다. 당시 검열로 음반에 들어가지 못한 노래나, 상처가 난 노래를 제대로 부르는 것도 얘기노래마당의 중요한 의미였다. “우리 이야기뿐 아니라 관객의 이야기, 바라는 점 같은 것도 듣고 싶었죠.” 이들은 무대 아래의 관객과 함께 가요심의문제, 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했다. 엉뚱한 질문도 많았다. “불교노래가 많은 것 같은데, 파계승 아니냐, <촛불>에서 ‘나를 버리신 내 님’이 누구냐 하는 질문도 많았죠. 노래를 따라부르기 힘들다는 불만도 있었고요. 유쾌하고, 진지한 자리였어요.” 이들이 다시 얘기노래마당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이제 정말 다시 한번 말을 걸어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90년대는 침묵의 시간이었죠.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감과 실망의 반복이 교차하고, 그 사이에 연민도 끼어들면서 전면적인 비판은 유보됐죠. 그러나 이제 다시 이야기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이런 것이었나, 이건 아니다라고.” 정태춘씨가 이번 무대에서 말을 건네고 싶은 사람들은 80년대라는 신산한 시절을 함께 뚫고온 지난 시절의 동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386이라는 말에 대해서 거부감도 많고 냉소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헌신한 체험을 공유한 386세대는 다른 세대와는 다른 이념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전 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주류사회에 편입한 사람들이 386의 대표처럼 상징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대에 대한 소속감을 잃고, 오히려 혐오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나는 대다수 386들의 마음 저변에는 옛날에 가졌던 상상력,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의지가 남아 있다고 믿어요.” 두 사람은 이번 무대의 부제를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라고 붙였다. 이 제목은 정씨가 이번 무대에서 처음 선보이는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정씨는 이 곡에서 ‘모든 걸 잃고’, ‘어둠 속에서 깊이 잠들었던’ 시간을 깨어나 ‘어둠 걷혀 깨는 새벽 길모퉁이를 돌아’, ‘가끔씩 꿈으로 배회하던’ 그 정류장으로 나갈 것을 제안한다. 이 밖에도 이번 공연에서 <사람들> <오토바이 김씨> 등 다섯곡의 신곡을 소개한다. 새로운 노래들은 <92년 장마, 종로에서>만큼 현실을 생생하고 뜨겁게 담아내고 있다. 생각이 조금은 다른 두 사람 “어떤 이들은 저의 노래에 대해서 구호 같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관념을 노래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가 뮤지션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말하는 사람이죠. 할말이 없다면 노래할 일도 대중 앞에 설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씨의 말이 끝나자 박씨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음악을 통해 발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의 감성을 어루만지는 노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무대에서도 정씨는 새 노래를 더 넣자. 박씨는 관객에게 익숙한 지난 노래를 더 부르자고 주장하면서 한참 동안 프로그램을 고민하기도 했다. “나는 사람에 대한 슬픔이나 연민 같은 걸 노래하고 싶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태춘씨는 그 슬픔을 만들어내는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죠.” 박씨는 얼마 전 부부가 프랑스에 다녀온 경험을 풀어놓았다. “화가 반 고흐가 죽기 전 살았던 집에 갔었어요. 창문이 노트만한 좁은 방이었지요. 그때 제가 느꼈던 건 지독한 슬픔 같은 거였죠. 그리고 돌아와서 정태춘씨가 써놓은 메모를 보았는데 ‘감옥 같은 다락방’ 이런 내용이었어요. 참 다르죠?” “함께 음악하다보면 토론을 많이 하시겠네요” 했더니 정씨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토론 수준이 아니죠.”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많은 대중보다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라도 밀도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점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 같아요.” 새 노래들의 노래말이 전의 노래들보다 길어지고, 실명이 거론되는 식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변한 건 그런 이유다. 서정적인 음색의 박씨로서는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이 줄어 아쉬울 것도 같다. “정태춘씨가 한쪽으로 치우칠수록 제가 반대편에 서서 둘의 무게추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은 인정하지 않죠.” 박씨의 말에 정씨는 그저 빙그레 웃는다. 세상의 슬픔, 사랑의 아픔… 이번 무대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각자의 무대를 가진다. 1부에서는 정씨가, 2부에서는 박씨가, 3부에서는 함께 무대에 올라간다. 정씨는 앞서 말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 “이건 아니다”라고 현실에 대해서 발언하는 새 노래들을 부를 예정. <봉숭아> <회상> 등 귀에 익숙한 노래를 준비하고 있는 박씨는 오랫동안 엄마로, 아내로 살면서 느껴온 생활인으로서 겪어온 마음의 울림을 관객과 소통할 생각이다. 20년 동안 함께 살면서 음악을 해온 두 사람은 많이 다른 것도 같지만 세상의 슬픔,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깊이 응시해왔다는 면에서 참 비슷하게 생겼다. 정씨가 그 아픔에 대해서 유장한 목소리로 분노하는 서사시인이라면 박씨는 고요한 목소리로 상처의 결을 어루만지는 서정시인이다. 얘기노래마당이 기다려지는 건 바로 두 시인이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386세대일 필요는 없다. 다만 ‘이건 아닌데’라고 고개를 젓는 사람들, 생활의 무게추 아래서 허덕이는 사람들이라면 참 오랜만이라고 악수하면서 함께 분노하고, 함께 토로할 것이다. 그리고 함께 위로받으며 17년 동안 빈 칸으로 이어져온 시간을 메워갈 것이다(공연: 9월18∼23일 연강홀, 문의: 02-3272-2334).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