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음악의 힘을 아는가

376
등록 : 2001-09-12 00:00 수정 :

크게 작게

남성의 성적 능력 판별하는 음악적 재능… 항암효과 발휘 등 음악치료도 관심 대상

일러스트레이션/ 고성일
슬로베니아의 한 동굴에서는 약 5만년 전에 한 네안데르탈인이 사용했던 곰의 허벅지 뼈로 만든 피리가 발견됐다. 이같이 음악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도 같다. 지금도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각기 독특한 자신들만의 음악문화를 가지고 있다. 인간들에게 공통으로 음악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인류라는 종족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관점은, 음악은 인간의 생존에 유익한 뭔가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의 구조기능주의적 접근이다.

예를 들어 토론토대학 심리학과의 샌드라 교수는 엄마의 자장가가 유아의 지능과 성격발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자장가는 아기를 편안하게 잠재우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며 또한 그 아기들이 이후 어른이 되었을 때 생존경쟁에서 더 오랫동안 살아남고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릴 수 있는 정서적, 신체적 구성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자장가는 뭔가 인간의 생존에 이득으로 작용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양식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적 능력은 음악적 재능에 달려 있다”


이러한 식의 해석은 근대에도 있었다.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은 그의 저서 <인류의 후손>에서 “음악은 언어가 없는 원시인류들이 자신의 짝을 유혹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밝혔다. 언어가 없는 원시시대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짐승의 소리를 다른 주위 잡음과 분간하여 도망가야 할지, 아니면 사냥해야 할지를 빨리 결정해야 했다. 동시에 더욱 많은 수의 자식을 낳을 수 있는 튼튼한 암컷을 구하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남성보다는 더 나은 ‘개인기’를 보여주어야만 했을 것이다. 결국 그 시대에 가장 확실하게 생존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뛰어난 청각과 다양한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재주였을 것이고, 이들을 가진 개체는 도태되지 않고 좀더 쉽게 번식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뉴멕시코대학의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는 남성들의 음악적 재능과 성적(sexual) 능력과도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장르의 음악을 살펴보면 남성의 창작물이 여성보다 10배 정도 많은데, 그들이 음악적으로 가장 절정인 시기는 생식능력이 가장 원숙기에 접어드는 30살 정도와 일치한다고 밀러는 주장한다. 특히 성공한 남성 음악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많은 여성편력이나 평균 이상의 수의 자식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이를 유추해볼 때 음악적인 재능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있다면 이것은 남성에게서 더 쉽게 발현되고, 나아가서 이것은 생식능력을 담당하는 유전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음악적인 재능을 가진 남성에 대하여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더 많은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그러한 남성을 짝으로 맞이하였을 때 더 많은 자신의 후손을 생산할 수 있다는 유전자의 유일한 삶의 목표와도 적절히 부합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가·미술가·연기자들에 비해서 유독 젊은 가수들만이 수많은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니는 것도 바로 이런 식의 음악적 재능과 생식력과의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주장, 즉 인간 행동은 자신의 자손을 더욱 많이 퍼뜨리려는 하나의 목표점으로 향한다는 이기적 유전자 가설에 대한 반박도 많지만, 여하간 여성과 남성에게서 음악이 가지는 다른 의미와 효능은 실험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일본 나라대학의 후꾸이 교수는 음악 그 자체는 남성에게서 성욕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70명의 남녀로 실험한 결과 남성들은 대부분 한 시간 정도 음악을 듣고 난 이후에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한 반면 여성은 도리어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로 미루어볼 때 즐거운 성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남자쪽을 고려한다면 한 시간 전에는 음악을 꺼야 할 것이고, 여성을 위해서라면 분위기 있는 음악을 미리 들려주는 편이 좋을 것이다. 여하간 음악이 성욕을 감소시키는 것은 남성집단에서 성적긴장을 감소시켜 좀더 사회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군대에서 주는 사탕과 담배에는 정력감퇴제가 섞여 있다는 설을 믿는 남자들이 더러 있는데, 실제로 군대와 같은 극단적 환경에서는 남성들의 성욕을 억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같이 군대에서나 종교행사에서 일상적인 상황보다 훨씬 많은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은 노래와 음악이 성적 욕구를 가라앉히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특히 중세 때에도 교회에서 타악기 반주를 쓰지 않는 것은 그것이 성행위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여하간 국가(national anthem)나 노동요, 파티음악, 전쟁음악 등은 남성들의 성욕을 억제시키고 더욱 사회적인 동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특히 어떤 경우 음악은 사람들을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뜨려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기도 하는데 광신도들의 집회나 훌리건들이 거리로 몰려나오기 전에 정신없이 노래를 부르는 현상과 일치한다.

음악은 항암효과도 발휘하는데 10명의 피실험자들에게 음악 반주에 맞추어서 드럼을 치게 한 다음 피에서 면역세포 수를 살펴보니 그 이전에 비해서 현격히 증가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사람들에게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책을 읽게 한 것은 면역세포의 수에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 연주를 하는 동안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억제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음악을 성으로만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스티븐 핑커 교수는 음악과 성에 관한 그러한 설명은 매우 결과론적이고 끼워맞추기 식이라고 반박한다. 예를 들어 남성의 성적 매력과 음악적 능력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아주 부족하며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그 결과의 유익함과는 관계없이 단순한 쾌락을 위한 생리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당분과 지방 덩어리인 치즈케이크가 건강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자꾸만 손이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는 반례로 사람들이 혼자서 음악을 즐기려는 경향, 성적인 관심이 거의 없는 아이들이나 노인들도 음악을 즐기는 경향, 그리고 청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시끄러운 헤비메탈 음악을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경향을 볼 때, 음악이 인간의 진화를 유리한 방향을 이끌고 간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적의 음악치료 효과… 과학적 증거 불충분

음악의 동기와 그 기원을 따지기에는 매우 어렵겠지만, 음악이 가지는 신비로움은 분명하다. 철학자 니체는 매독 3기에 걸려서 말도 못하고 발광의 상태에 이르렀어도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훌륭하게 즉흥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음악치료를 통해서 혼수상태나 정신분열증의 일종인 긴장증에서 회복된 여러 사례가 있음을 볼 때 음악의 힘은 아직도 신비롭다. 실제 음악치료를 병행하는 뉴욕의 베티 아브라함 병원에서는 거의 말을 할 수 없는 정도의 심각한 환자들도 음악치료사가 연주하는 기타반주에 맞추어서 노래가 시작되면 그 노랫가락에 실어서 대화도 하고 우렁차게 노래도 하는 기적 같은 일이 매일 벌어진다고 한다. 이 과정 동안 뇌를 단층사진기로 관찰해보면 손상받은 뇌의 기능이 정상적인 뇌로 옮아간다고 한다.

앞서의 가설이 옳다면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좀더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울룩불룩한 근육보다 악기를 하나 정도 배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일전에 클린턴이 선거유세중에 멋진 색소폰 연주실력을 보인 것은 대통령후보로서 가장 고급스럽게 자신의 섹시함을 보인 셈이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