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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골프의 백미 ‘서든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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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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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말리는 연장전 통해 우승한 골퍼들… 상대방 압도하는 카리스마 지녀야 유리

사진/ 골프지존 타이거 우즈는 6번의 연장전을 벌여 5번이나 우승했다. 우즈가 러프를 탈출하기 위해 샷을 하고 있다.(AP연합)
얼마전 미국 PGA선수권대회에서 ‘골프지존’ 타이거 우즈와 ‘8자 스윙’ 짐 퓨릭의 경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아, 저런 것이 피말리는 싸움이구나’ 했을 것이다. 우즈를 정상으로 올려놓고 승부는 가려졌지만, 우즈가 “오늘 하루는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고 말한 것만 보아도 힘겨운 ‘서든데스’였음에 틀림없다. 골프 연장전에는 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서든데스, 두가지 종류가 있다.

연장전 방식 갖가지… 역시 타이거 우즈

일반 오픈대회는 서든데스로 한다. 하나의 홀에서 이기면 바로 승부가 결정나는 방식이다. 그러나 플레이오프는 연장전을 의미하지만 메이저대회에서만큼은 의미가 다르다. 메이저대회 중 마스터스는 연장전을 서든데스로 한다. 이에 비해 US오픈은 승부를 가리지 못한 선수끼리 18홀을 연장한 뒤 이때도 무승부가 나면 서든데스로 한다. 브리티시오픈이나 PGA선수권은 4개 홀에서 플레이오프를 벌인 뒤, 비기면 다시 서든데스로 승부를 가린다.


연장전의 방식은 US오픈을 제외하고는 서든데스의 성격이 강하다. 홀마다 상대방을 압도하며 일단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홀마다 승부를 가리는 홀매치플레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홀매치로 벌이는 경기는 일단 18홀을 기준으로 홀을 많이 이긴 사람이 승자가 된다.

이때문에 사실 연장전은 서든데스가 백미다. 홀을 먼저 이기는 사람이 승자가 되므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타이거 우즈는 역시 특별하다. 이번 PGA선수권대회 최종일 경기에서 2타차의 스코어를 타이로 만든 뒤 7개 홀의 연장 끝에 퓨릭을 잠재웠다. 우즈는 6개홀 중 2번의 고비를 절묘하게 넘긴 뒤 일곱 번째 홀에서 버디로 우승쐐기를 박았다. 이는 91년 이후 최대 연장홀 기록이다. 우즈는 지난해 PGA선수권에서 봅 메이와 동타를 이룬 뒤 3개 홀에서 가진 연장에서 1타차로 힘겹게 승리했다. 미PGA정규투어에서 통산 29승을 올린 우즈의 연장전 기록은 5승1패. 대단한 승수다.

사진/ 2승 1패의 연장전 기록을 가지고 있는 데이비스 듀발.(AP연합)
홀마다 승부를 거는 써든데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세상에서 가장 못할 짓이 파퍼팅”이라는 말처럼 연장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를 압도하는 뭔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타이거 우즈와 박세리는 일단 ‘강한 정신력 소유자’로 둘만의 싸움에서 일단 유리한 위치에 선다. 그러나 무엇보다 연장전에서 승리하는데 개인 기술이 우선이다. 드라이버 거리가 많이 나가거나 그린주변에서 쇼트게임이 탁월하거나, 혹은 퍼팅에 남다른 기량이 있다면 일단 상대방을 저지할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같은 연장전은 적지 않다.

‘황금곰’ 잭 니클로스. 40년 투어생활중 미PGA투어 70승에 시니어투어 10승. 이중 정규투어 연장승수는 13번 이기고 10번 졌다. 시니어투어는 2승1패. 니클로스와 함께 골프영웅으로 칭송받는 아놀드 파머는 47년간 미PGA투어 60승 중 연장전에서 14번 이겼고 10번 졌다. 그런데 연장전은 둘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 여러 명이 함께한다. 99년 브리티시오픈에서는 폴 로리, 저스틴 레너드, 장 방드 발데가 290타로 동타. 4개 홀을 플레이오프한 결과 로리가 이븐파, 레너드와 장 방드 발데가 3오버파를 기록해 로리에게 우승컵이 돌아갔다.

왼손잡이 필 미켈슨은 4전 3승1패, ‘넘버2’ 데이비드 듀발은 3번 싸워 2승1패다. 76년 프로데뷔 뒤 미PGA투어에서 18승을 올린 ‘호주의 백상어’ 그레그 노먼은 유독 연장에 약하다. 11번 연장전에 나가 7번 지고 4번 이겼다. ‘새가슴’ 데이비스 러브3세도 연장전에 약하기는 마찬가지. 러브3세는 사실 다 이겨놓은 경기를 여섯번이나 내줬다. 플레이오프서 겨우 1번 이겼을 뿐이다. 통산 34승의 톰 왓슨은 승수가 우세하다. 8번 이기고 4번 졌다. 그러나 시니어투어에서는 2승에 연장전은 2번 다 졌다.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박세리의 92홀 투혼

사진/ 98년 US여자오픈에서 20홀 연장 끝에 우승한 박세리는 연장전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AP연합)
국내 팬들은 물론 전세계 골프팬들에게 연장전 기억으로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박세리의 92홀 투혼이었다. 하얀 발이 생생한 해저드에서의 샷을 비롯해 연장전에서 보여준 박세리의 샷은 천금 같은 것이었다. 데뷔 첫해인 98년. US여자오픈 최종일. 아마추어 제니 추아시리폰과 연장전. US오픈의 전통답게 18홀 연장. 이 역시 비겼다. 서든데스로 돌입. 결과적으로 20홀을 연장한 셈이다.

박세리는 루키시즌에서의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통산 12승을 올리고 있다. 박세리는 99년 페이지넷 챔피언십에서 캐리 웹과 로라 데이비스를 연장 첫홀에서 간단하게 요리했다. 박세리가 보여준 또 하나의 연장전 진수는 99년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 무려 박세리까지 6명이 동타. 캐리 웹, 카린 코크, 마디 런, 켈리 퀴니, 셰리 슈파인하우어 등과 연장전. 그런데 박세리가 첫홀에서 5m 버디퍼팅으로 간단하게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극적인 역전극이었다. 연장승수는 3번 싸워 모두 이겼다.

우즈와 박세리의 공통점은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우즈는 어릴적부터 머리속에 특수훈련을 받았고 박세리 역시 아버지로부터 지옥훈련을 받았다. 우즈는 6살때 운명의 메시지들을 들으며 심리적인 강훈을 시작했다. 우즈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나를 믿는다. 나의 힘은 위대하다. 늘 정신을 집중하고 모든 것을 거기에 바친다. 결심은 강력하다. 전심전력을 다한다.”

비단 이것뿐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11가지 문구를 매일 듣고 문구들을 벽에 붙여놓고 하루도 거르지않고 읽었다. 부친 얼 우즈는 그러나 승패를 떠나 즐거운 게임을 하라고 우즈에게 주문했다. 또한 우즈는 게임분석능력이 뛰어나다. 다른 톱스타들의 경기운영을 유심히 살펴본뒤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장단점을, 그리고 코스에서 상황에 따라 어떻게 샷을 하는지 그의 머리속에 모두 입력이 돼 있다.

또 창의적인 샷을 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숲속에 빠지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리커버리 샷이 돋보인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뛰어난 스윙에다 좀처럼 무너지지않는 샷이 우즈를 천재로, 써든데스의 강자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즈는 평균 드라이버 300야드 이상을 날리며 일단 거리에서 상대방을 기죽게 한다.

박세리 역시 둘이 붙으면 일단 유리한 고지에서 경기를 한다. 국내 경기서 ‘천적’인 강수연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연장전에 갈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US여자오픈서 보여준 끈질긴 승부욕은 박세리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박세리는 성격상 이겨야할 경기는 반드시 우승타이틀을 자신의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는 어릴적 묘지에서 가진 지옥훈련에서 배운 담력이 우즈 이상이다. 아무리 강한 선수를 만나도 결코 기죽는 일이 없다. 일단 상대방을 제압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드라이버에서 강력한 파워샷을 구사, 거리를 내기때문에 다음 샷을 편하게 가져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심리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덤벼든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안다는 얘기다. 이것이 써든데스에서 박세리에게 승수를 안겨준다.

소심하거나 다혈질이면 연장전 손해 많아

사진/ 에니카 소랜스탐은 얼굴에 표정변화가 없어 연장전에 유리하다.(AP연합)
박세리에 비해 김미현은 연장전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지난해 뉴 알바니에서 로리 케인에게 졌고, 세이프웨이LPGA골프챔피언십에서는 장정에게 이겼다. 올 시즌 오피스데포에서는 소렌스탐에게 패했고 케시 아일랜드 챔피언십에서도 로지 존스에게 우승트로피를 헌납했다. 4전1승3패.

미LPGA투어에서는 통산 29승의 애니카 소렌스탐이 연장전에 강하다. 얼굴에 표정변화가 없는데다 컴퓨터 샷을 구사하는 소렌스탐은 일단 서든데스에 걸리면 결코 지지 않는다. 유독 소렌스탐은 연장전을 많이 했다. 모두 10전8승2패. 95년 한국에서 벌어진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로라 데이비스와 연장 첫홀에서 13.5m짜리 칩샷이 홀로 빨려들어가 우승했다.

연장전에서의 게임은 누가 먼저 상대방을 압도하느냐에 승부가 갈린다. 이 때문에 소심하거나 다혈질인 사람은 매치플레이의 서든데스에서는 손해를 보게 된다. 반면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톱스타들에게 플레이오프는 늘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안성찬/ 스포츠투데이 골프전문기자 golfahn@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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