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광기의 시대, 학살자의 상처

318
등록 : 2000-07-19 00:00 수정 :

크게 작게

노다 마사아키 교수 <전쟁과 인간> 한국어로 출간… 죄의식 없는 일본의 정신병력 해부

(사진/일본군은 중국인 포로를 총검술 연습 대상으로 삼아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러나 학살을 강요당한 일본 병사들도 정신적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경악하게 된다. 그 다음엔 슬픔이 밀려온다. 그리고는 부끄러움에 잠기고,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5년 일제 패망. 이 단어들과 관련된 사실들에 대해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를 견딘 사람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단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지식이 얼마나 진실의 겉껍질에서 맴돌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노다 마사아키(56). 일본 고치현에서 태어나 홋카이도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나가하마 적십자병원 정신과 부장, 고베시 외국어대학 교수를 거쳐 지금은 교토여자대학 교수(비교문화정신의학 전공)로 재직하고 있다.

철저히 슬퍼하고 철저히 울어라


최근 그의 책 <전쟁과 인간>(원제 ‘전쟁과 죄책’)이 한글로도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그가 95년 중국 하얼빈과 선양 등지에서 행한 현장조사를 토대로 93년부터 6년간 줄기차게 매달렸던 ‘전쟁의 죄의식에 대한 연구’를 정리한 것이다.

“중일전쟁에 대한 일본의 정신적 왜곡, 그 정신병력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었다. 그 전쟁을 침략전쟁이 아니었다고 부인하는 현상, 정치인들을 비롯한 일본인들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최근에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그 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걸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치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전후 새로운 세대들에게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묻고 싶었다. 그들은 그 전쟁은 아버지 세대의 일이며 자신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한다. 윗세대의 정신적 왜곡과 굴절이 교육을 통해 신세대들에게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93년부터 관련자료를 읽기 시작했고 그해 가을 현장 면접조사(필드워킹)에 들어갔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전후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일본인들의 정신문화 어딘가에 큰 허공이 있다는 걸 느끼면서부터다. 85년 ‘쇼와 천황’ 치세 60돌 때 도쿄 시민 수만명의 화려한 제등행렬 속에 떠밀려가면서 느낀 일본인들의 ‘다행증’(Euphoria: 근거없이 행복감에 젖는 기질적 정신장애)에서도 그는 그것을 감지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경험했던 사람과 사람간의 감정이입이, 유독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며 사는 일본인들과는 제대로 되지 않는 사실에서도 그는 그런 공허감을 느꼈다.

그는 일본사회의 공허감이 ‘죄의식의 억압’에서 비롯했다고 진단한다.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자만이 충분히 기뻐할 수 있다. 즐거운 감정이 솟아오르기도 전에 몸으로 웃는 시늉만 익힌 자들의 감정은 절대 풍부해질 수 없다.” 의식의 내면을 직시하고 스스로의 죄악에 대해 철저히 슬퍼하고 철저히 울지 않는 한, 일본의 정신과 문화는 결코 풍요로워질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죄의식이야말로 귀중한 문화”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중·일전쟁 기간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 근처 루안 육군병원 등에서 14명의 무고한 중국인들의 생체해부에 직접 참가했던 군의관 중위 출신 유아사 겐, 병사들의 전쟁영양실조증(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을 지켜봐야 했던 베이징 제1육군병원 군의관 출신 오가와 다케미쓰, 중국인 ‘토끼사냥’을 지휘했던 북지나방면군 제12군 32사단 소위 출신 고지마 다카오 등 전범자들을 만나 끈질기게 묻고 들었다. 이들은 그나마 자신들의 과거 행위를 뉘우친 사람들이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각종 강연에서 일본군의 죄악을 증언했으며 중국인 피해자들을 돕고 그들과의 인간관계 회복에 힘쓰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노다 교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가족들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깊은 상처들을 안고 있었다. 책에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는 그들의 증언은 실로 끔찍하다. 전쟁 때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18살 처녀를 끌고가 성적으로 착취하고 토막내 구워먹고 산채로 장기를 잘라내었고, 연습용으로 산사람을 군도로 찌르고 목을 쳤다. 수도 없이, 그리고 아무 죄의식도 없이.

일본의 집단주의와 베트남의 한국군

하지만 대다수의 전범자들은 지금도 변명하고 있고 또 그들 중 다수는 여전히 죄의식조차 없다. “전쟁이었으니까”,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지 침략전쟁은 아니었어”,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지, 어쩔 수 없었다”, “자학사관은 인정할 수 없어”, “영국도 미국도 소련도, 중국까지도 다 그랬어”, “이기든 지든 전쟁은 어차피 비참한 거야.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지”.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모든 걸 뭉뚱그려 일반화해버리고 누구도 처벌하지 않는 사회,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고 그 때문에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직시하지 않고 물질적 풍요로 상처를 덮고 과잉보상받으려는 사회, 그것이 일본의 공허함을 만들었다. 인간의 순수한 개인 감정은 사라지고 국가 이데올로기와 집단주의가 횡행하는 사회.

그는 말한다. “우선 과거에 무슨 일이 저질러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전범세대와 전후세대가 서로 오래 이야기하고 서로 느끼는 감정이입을 통해 비로소 상처입을 줄 아는 부드러운 정신을 되찾을 수 있다.”

그의 작업은, 나치독일 피해자인 유대인들이 진행했던 일부 작업을 제외하면, 침략국 전범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의학자의 전문적인 현장 면접조사로서는 역사상 처음이다. 독일에서도 전후 40년이 지난 80년대에 들어와서야 이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접근이 시작됐다. 그의 책 <전쟁과 인간>은 이미 독일어, 영어, 폴란드어로도 번역됐고, 한국어 번역본 출간과 같은 시기에 베이징에서 중국어로도 번역 출간됐다.

그는 지난 6일 <전쟁과 인간>의 중국어판 출판 기념을 겸해 중국에 갔다. 7월7일은 1937년 그날 베이징 서남쪽 노구교에서 일본군의 음모로 중·일 양국군이 충돌함으로써 중·일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8∼9일에는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와 일본연구소가 주최한 ‘침략전쟁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거기에는 ‘일본식민지교육연구회’와 역사학자 및 일본 고교 사회과 교사들로 구성된 단체인 ‘인간과 교육’, 그의 책에서 아버지 세대의 죄악을 드러내고 화해를 추구하는 전후세대 일본인으로 나온 와타나베 요시지 등도 참석했다.

그는 지난 79년 10·26 직후의 권력 공백기 때, 그리고 지난해 등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20년 만에 본 서울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는 최근 서울에서 벌어진 고엽제피해후유의증전우회의 한겨레 사옥 난입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식민지 지배와 전쟁 등이 연이었던 “한국인들의 감정마비는 (일본보다) 더욱 일반적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파월 한국군은 미군 이상으로 잔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본군과 매우 닮았다. 박정희 대통령도 그렇지만 한국은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집단주의적 문화를 그대로 물려받았을 것이다. 미군도 베트남전쟁 당시 많은 전쟁신경증 환자가 있었다. 참전 한국군에 대해 그런 연구가 진행됐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언젠가는 그런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정신의학회에 따르면 베트남전쟁 당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세를 보인 미군 병사는 전체의 35.8%에 이르렀고, 10∼50%가 정신장애 증세를 나타냈다는 보고도 있다.

통일은 정신적 상처 치유부터

이 대목이 그의 책을 읽고 나면 특히 부끄러워지는 부분이다. 환란으로 인해 국민들이 전체적으로 입은 정신적 상처로 치면 우리는 일본과 비교할 수도 없는 험한 시대를 살아왔다. 남북 대치가 만들어낸 상처에서는 지금도 피가 흐르고 있고, 모든 책임을 서로 상대에게 떠넘기는 감정마비상태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동란의 체험으로 인한 물질적 손실보다 정신적 상처가 더 심각하고 더 오래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사실을 공론화한 바 없다. 노다 교수는 “남북한의 통일과정에서도 통일비용 등 경제적 문제보다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문제가 더 심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책은 98년에 이와나미 서점에서 출판된 이래 지난해 말까지 8쇄를 발행하는 등 일본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다. 오는 9월에는 한국과 일본, 독일 개신교도들 중심으로 전쟁과 죄의식에 관련한 실천대회가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체첸, 아프간 등 전쟁과 변란이 있는 곳은 다 누비고 다닌 그의 꿈은 이렇다. “일본군이 37년 사건을 일으킨 노구교에서 상하이, 그리고 난징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2개쯤 만들어 아시아 모든 지역 사람들이 한 1주일간 현장을 걷게 한다. 전쟁을 체험한 살아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 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작업을 동남아까지 포함한 동아시아 공동작업으로 해내고 싶어한다.

도쿄=한승동/ 한겨레 도쿄 특파원sdh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