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축과 전통건축의 활발한 만남을 주장하는 우리시대 한옥의 명장 신영훈
아직은 볕이 따가운 늦여름 오후에 그를 만났다. 만난 곳은 경복궁, 그 안에서도 자경전이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한옥 명장’, ‘이 시대 최고의 고건축 전문가’로 불리는 신영훈(66)씨. 그와 만나는 곳으로는 역시 경복궁이 제격이었다.
넓고 건물도 많은 경복궁에서 굳이 자경전을 약속장소로 정한 데는 자상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신씨는 관광객의 동선에서 살짝 비껴선 자경전 왼쪽의 예쁜 꽃담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꽃담 위에 그려진 무늬 하나하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꽃에 앉기 직전 나비의 발이 꽃을 향해 퍼지는 모습까지 살려냈던 조상들의 관찰력이며, 엉성한 듯해도 정교한 건축기법 등에 대한 구수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신씨는 늘 그래왔듯 요즘도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은 예전과는 다소 바뀌었다고 한다. 으레 맡아오던 규모가 큰 일 대신 그는 스스로 추진하는 ‘작은’ 일에 매달리고 있다. 그가 요즘 한창 짓고 있는 집은 ‘현대판 황룡사 9층 목탑’이라고 불렸던 보탑사나 거의 새로 짓다시피했던 송광사처럼 커다란 건물이 아니다. 신씨는 경기도 양평에 귀틀집을, 강화도에 학사재란 한옥을 짓고 있다. 모두 몇칸 안 되는 작은 살림집들이다. 그의 주된 일 가운데 하나인 전통건축 강의 역시 커다란 대학 강의실이 아니라 사무실을 개조한 작은 강의실로 장소가 바뀌었다. 지난해 그가 소리소문 없이 문을 연 ‘한옥문화원’(02-562-0303, www.hanok.org)을 통해 벌이고 있는 일들이다. 평생 한옥 짓기와 한옥 지키기에 헌신해온 그가 이제는 한옥 알리기에 나선 것이다. 8월28일 한옥문화원 개원 1년을 맞아 신씨를 만나 지난 1년 동안 벌여온 시도와 지금까지의 성과에 대해 물어봤다.
우리 것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옥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옥문화원이 등장했는데 반응은 어떻습니까.
=40여년 동안 한옥 건축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제는 후배들에게 그 지식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들을 넘겨줘야 하니까요. 확실히 한옥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무척 높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300여명이 한옥 공부를 했는데, 숫자보다는 확실하게 한옥을 이해하도록 이끄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한옥 전문반 수강생은 주로 건축 실무자들입니다. 현장에서 건축작업을 하다가 우리 것, 우리 건축을 너무 모른다는 것을 느끼고 답답해서 배우러 옵니다. 건축 전문가들이 우리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한옥집을 잘 지어보려고 해도 믿고 맡길 건축가가 없습니다. 대학에서 한옥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건축과는 서양건축과예요. 한옥건축과는 아예 없습니다. 빨리 한옥건축과가 생겨야 합니다. 기존 건축과에서 한옥 전공자를 배출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현재 대학에서는 한옥을 그저 건축사 과목에서 잠깐 접하는 정도입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건축사 자격시험에 한국건축사가 필수과목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없어요. 시험을 위해서라도 공부할 필요조차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안 가르치고…. 자기 것 먼저 가르치고 그 기반 위에서 남의 것을 가르치는 게 정상 아닙니까? 현재는 한옥에서 살지 않아도 언젠가는 한옥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방 이후 판잣집부터 시작해 다양한 주거형태를 실험해 지금의 빌라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빌라에서 사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한옥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아주 오래 전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옥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굳이 한옥에서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옥이 불편하다는 인식도 여전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한옥을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집으로만 알아요. 그건 1930년대쯤 지은 집장사 집들 때문입니다. 현재 그런 한옥들만 남아 있다보니까 생겨난 인식인데 제대로 지은 한옥을 접해보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또한 전자파가 쏟아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전자파를 차단하는 흙과 돌로 짓는 한옥이 현대인의 생활에 더욱 적합한 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까지 알아야 합니다. 정신없이 경제개발 흐름에 휩쓸려 살아오다보니 집을 생활공간이 아니라 그저 재산개념으로 여깁니다. 삶을 담는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한 사회적 철학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집문화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결정적이었던 것이 5·16 이후 벌어진 새마을운동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운동을 한 것은 뭐라 평가하기 어렵지만, 초가집을 헐어낸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초가집을 헐어낸 자리에 과연 어떤 집을 지어야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고 무턱대고 없애버린 겁니다. 문화적 식견이 없는 집권자가 빚은 문제인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소득이 높아지고 살림이 나아지면 갖고 싶은 집, 언젠가는 살아보고 싶은 이상적이고 모범이 되는 집이 있어야 합니다. 꼭 한옥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사는 것이 좋은지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제대로 집에 대해 가르치는 곳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게다가 한옥은 더더욱 가르치지 않는 현실이고…. 문제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한옥을 지을 줄 아는 전문 기능인을 배출해서 한옥이 보편화되면 과연 어떤 집이 좋은 집인지 알게 될 겁니다. 워낙 아쉬운 것이 많아 하시고자 하는 일도 많아 보입니다. 앞으로 가장 중요하게 추진할 일은 무엇입니까. =21세기형 한옥, 우리 백성들이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한옥을 짓는 겁니다. 기존 한옥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재료나 형태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이 작업을 위해서 한국건축과 서양건축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한옥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화하기 이전까지 우리는 이 땅의 생태에 맞는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지난 5천년 동안 우리 역사 속에 등장했던 온갖 집들은 모두 한옥입니다. 한옥이란 것이 꼭 19세기 목조건축물만은 아닙니다. 19세기 한옥은 19세기 생활의 필요에 따라 지은 집들이고, 지금은 그런 것 못 짓죠. 오늘은 오늘에 맞는 한옥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 걸 해보자고 해서 시도한 것이 귀틀집입니다. 이런 다양한 시도를 통해 모범이 생기면, 사람들도 차차 따라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전통건축 최고 전문가께서 전통건축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시는 점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현대건축과 전통건축이 잘 조화되려면 결국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급선무일 듯합니다. =다양한 시도를 활발히 하다보면 답은 나올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건축가와 현대건축가가 많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현대건축가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고민해보자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9월11일에 ‘21세기의 한옥’을 주제로 좌담회가 열립니다. 건축가 승효상씨부터 풍수학자 최창조 선생까지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셔서 함께 고민할 작정입니다. 그게 한옥문화원의 또다른 근본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40여년 동안 한옥 건축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제는 후배들에게 그 지식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들을 넘겨줘야 하니까요. 확실히 한옥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무척 높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300여명이 한옥 공부를 했는데, 숫자보다는 확실하게 한옥을 이해하도록 이끄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한옥 전문반 수강생은 주로 건축 실무자들입니다. 현장에서 건축작업을 하다가 우리 것, 우리 건축을 너무 모른다는 것을 느끼고 답답해서 배우러 옵니다. 건축 전문가들이 우리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한옥집을 잘 지어보려고 해도 믿고 맡길 건축가가 없습니다. 대학에서 한옥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건축과는 서양건축과예요. 한옥건축과는 아예 없습니다. 빨리 한옥건축과가 생겨야 합니다. 기존 건축과에서 한옥 전공자를 배출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현재 대학에서는 한옥을 그저 건축사 과목에서 잠깐 접하는 정도입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건축사 자격시험에 한국건축사가 필수과목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없어요. 시험을 위해서라도 공부할 필요조차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안 가르치고…. 자기 것 먼저 가르치고 그 기반 위에서 남의 것을 가르치는 게 정상 아닙니까? 현재는 한옥에서 살지 않아도 언젠가는 한옥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방 이후 판잣집부터 시작해 다양한 주거형태를 실험해 지금의 빌라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빌라에서 사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한옥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아주 오래 전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옥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굳이 한옥에서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옥이 불편하다는 인식도 여전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한옥을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집으로만 알아요. 그건 1930년대쯤 지은 집장사 집들 때문입니다. 현재 그런 한옥들만 남아 있다보니까 생겨난 인식인데 제대로 지은 한옥을 접해보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또한 전자파가 쏟아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전자파를 차단하는 흙과 돌로 짓는 한옥이 현대인의 생활에 더욱 적합한 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까지 알아야 합니다. 정신없이 경제개발 흐름에 휩쓸려 살아오다보니 집을 생활공간이 아니라 그저 재산개념으로 여깁니다. 삶을 담는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한 사회적 철학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집문화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결정적이었던 것이 5·16 이후 벌어진 새마을운동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운동을 한 것은 뭐라 평가하기 어렵지만, 초가집을 헐어낸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초가집을 헐어낸 자리에 과연 어떤 집을 지어야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고 무턱대고 없애버린 겁니다. 문화적 식견이 없는 집권자가 빚은 문제인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소득이 높아지고 살림이 나아지면 갖고 싶은 집, 언젠가는 살아보고 싶은 이상적이고 모범이 되는 집이 있어야 합니다. 꼭 한옥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사는 것이 좋은지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제대로 집에 대해 가르치는 곳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게다가 한옥은 더더욱 가르치지 않는 현실이고…. 문제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한옥을 지을 줄 아는 전문 기능인을 배출해서 한옥이 보편화되면 과연 어떤 집이 좋은 집인지 알게 될 겁니다. 워낙 아쉬운 것이 많아 하시고자 하는 일도 많아 보입니다. 앞으로 가장 중요하게 추진할 일은 무엇입니까. =21세기형 한옥, 우리 백성들이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한옥을 짓는 겁니다. 기존 한옥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재료나 형태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이 작업을 위해서 한국건축과 서양건축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한옥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화하기 이전까지 우리는 이 땅의 생태에 맞는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지난 5천년 동안 우리 역사 속에 등장했던 온갖 집들은 모두 한옥입니다. 한옥이란 것이 꼭 19세기 목조건축물만은 아닙니다. 19세기 한옥은 19세기 생활의 필요에 따라 지은 집들이고, 지금은 그런 것 못 짓죠. 오늘은 오늘에 맞는 한옥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 걸 해보자고 해서 시도한 것이 귀틀집입니다. 이런 다양한 시도를 통해 모범이 생기면, 사람들도 차차 따라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전통건축 최고 전문가께서 전통건축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시는 점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현대건축과 전통건축이 잘 조화되려면 결국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급선무일 듯합니다. =다양한 시도를 활발히 하다보면 답은 나올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건축가와 현대건축가가 많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현대건축가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고민해보자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9월11일에 ‘21세기의 한옥’을 주제로 좌담회가 열립니다. 건축가 승효상씨부터 풍수학자 최창조 선생까지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셔서 함께 고민할 작정입니다. 그게 한옥문화원의 또다른 근본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