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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전통주의자, 그는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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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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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이 텃세를 부리는 안동에서 임세권 교수가 ‘안동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

안동에서 안동사람 되기는 영 쉽지가 않다. 안동에서 50평생, 아니 한 세대를 온전히 살았다 하더라도 안동사람으로 대접받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세계유교문화축제가 열리는 곳, 조선시대 사대부 후손임을 자랑하는 전통의 고장. 이 지역에서는 오래 살아온 내력보다는 본관이 텃세를 부린다. 그래서 고향이 다르면 알짜없이 “그 사람 안동사람 아이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곳이다. 안동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임세권(55) 교수는 이곳에 산 지가 겨우 21년밖에 안 된다.

안동대에서 쫓겨날 뻔했던 사연

“서른넷에 안동대로 발령을 받아오며 안동에 뼈를 묻으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지방대학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기는 교수들을 심심찮게 봐온 터라 학생들은 서울말씨의 임 교수도 이내 떠가버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처음 한 십년간 자신이 안동사람인 줄 알면서 살았다. 깊은 속을 나눌 만한 지인들도 만들고 안동 지역문화를 열심히 살폈다.


“그런데 안동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가 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안동사람들은 그를 언제나 서울에서 온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게다가 그와 안동사람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을 ‘안동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그도 안동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생각하는 방법이나 관점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안동에서 막 터를 잡은 초창기에 그는 시민대상의 문화강좌인 ‘신부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 고고학 전공인지라 그는 자연스레 안동지역에 산재해 있는 남근석을 주제로 얘기했다. 바람직한 성문화에 대한 현대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점잖은’ 안동사람들이 “하고 많은 좋은 것을 제쳐두고 하필이면 그런 내용이냐, 그것도 여자들 앞에서” 하며 난리가 났다. 당시 ‘퇴계문화의 계승과 극복’에 대한 강의를 했던 그의 동료교수도 혼이 났다. ‘계승’은 좋은데, 퇴계문화에 ‘극복’할 게 무에 있냐는 것이었다. 전국의 ‘안동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돌리고 안동대 학생들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교수들을 내쫓으라는 압력이 심각했다. 하마터면 일자리를 잃을 뻔했다.

“조선 몇백년 동안 굳어졌고 지금도 안동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안동의 ‘공기’에 나는 다가갈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지요.”

안동사회에서는 혼담이 오고갈 때 아직도 상대가 ‘양반’ 가문 출신인지를 심각하게 따진다. 남녀유별은 아직도 유별나다. 최근 그가 관여하는 한 작은 단체에서 여성운영위원 영입을 두고 회의가 열렸다. 결론은 간단하게 “안 돼”였다. 모두 남자인데 여자가 들어오면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 만장일치로 여성 영입에 반대표를 던진 남성위원들 중에는 평소 다른 이슈에서는 매우 진보적 성향인 이도 있었던지라 그는 더욱 실망했다. 안동을 방문했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도 ‘여’왕이 아니었더라면 안동양반들이 더 좋아했을지 모를 일이다.

납골당 문화에 대한 일침

요즘 임 교수는 자신의 방식대로 안동에서 산다. 최근 그의 방식은 ‘안동사람’이 보기에 파격적이 것이었으리라. 부친 임창순 옹이 돌아가시자 외아들인 그는 장례방식을 화장으로 택했다. 납골당에도 모시지 않았다.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시게 했다. 몇해 전 모친상을 당했을 때에도 그렇게 했다. 부친이 한국 금석학의 대가이시고 한학에 명망이 대단하신 분이니 당연히 전통적인 유교방식으로 장례의 예를 다하리라는 기대가 오히려 당연했다. 학문을 아는 옛 어른들이 곰방대를 땅땅 두드리며 “고얀지고”를 연발할 만한 일이지 않았겠는가.

“착각인 것이지요. 아버지께서 사서삼경을 읽고 그것으로 후학을 길러내신 어른이지만 그분의 사고방식마저 유교적이라고 단정짓는다면 말이지요.”

그는 학문을 하는 이들은 모름지기 발전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기를 꿈꾸는 이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는 우리의 유교문화에서 효사상이란 게 특히 제례, 죽은 이를 모시는 방법에 너무 붙잡혀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현대인들에게 고향 선산에 성묘 드리러 가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더욱 힘들어질 게 분명합니다. 지금은 교통문제가 주로 얘기되지만 사람들의 일의 성격이 복잡다단해지잖아요. 그리고 이제는 사는 곳이 반드시 한국이 되란 법도 없어요. 지구 곳곳으로 자손들이 흩어져 살게 될 텐데 누가 산소에 와서 절을 할 것이냐 말이지요.” 전통적인 효의 관념을 고수하기만 한다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상황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납골당문화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국토관리라는 점에서 보면 그중 호화 납골당은 일반 분묘보다 더 환경오염이 되는 것이지요. 대리석으로 주위를 치고 비싼 설치를 하여 자손 대대로 그곳에 뼈를 모으겠다는 발상은 형식만 다를 뿐 지금의 분묘문화가 주는 폐해와 다를 게 없어요. 매장문제를 국토관리 차원으로만 국한시킬 게 아닙니다.” 정말 안동사람들은 임 교수와 이야기하다보면 “안 통한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그의 부친은 자신이 세우고 평생 몸담으셨던 ‘태동고전연구소’와 연구소 소유의 부동산과 많은 서책들을 한림대학교에 기증하였고 돌아가시기 직전 자신의 모든 재산들을 청명문화재단을 설립하는 데 썼다. 마지막까지 옆에 두고 보던 아버지의 수많은 장서는 아들에 의해 안동대학교 도서관에 기증되었다. 유산이 될 뻔한 수십억 재산에 대해 그의 의견은 아주 홀가분하다. “난 지금 월급으로 충분히 잘살아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의 재산은 아버지께서 일구신 것이니까요.”

학문에 대한 진지하고 열성적인 자세가 만약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거라면 그로써 족하다는 표정이다. 가히 울트라 현대적인 인생관의 소유자인 임 교수의 중심연구테마는 선사시대 유물인 암각화. 시간적 선상에서 보자면 그는 극과 극에 서 있다. 한국 암각화에서 시작한 관심은 시베리아와 중국, 몽골 등 동북아시아로 확대돼 그의 걸음 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외지고 거친 곳에 주로 위치한 암각화를 찾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황야의 고독한 사나이’ 같다. 하지만 그는 마치 전람회를 돌아보는 일처럼 즐겁기만 하다. “글이 적은 유물일수록 거짓말을 덜해요. 글이 많아지면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들어 해석이 부정확하고 복잡하게 되거든요.” 단단한 암벽 위에 새겨진 선사시대사람들의 신호를 읽어가노라면 마음은 오히려 부드럽고 다정하게 변해간다며 암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전통이란 발전의 무한한 에너지”

사진/ 외지고 거친 곳에 주로 위치한 암각화를 찾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마치 '황야의 고독한 사나이' 같다. 중국 알타이에서.
그런데 최근 반구대 암각화가 개발바람에 휩쓸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울산시쪽에서 관광지로 선정하여 반구대 암각화 바로 턱밑까지 도로를 내는 등 관광객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다. 전세계를 통틀어 유례없는 선사시대 유적지 관광특구개발안에 대하여 국내의 고고학계와 미술사학계, 시민단체들이 반대성명을 내고 있지만 아직 별 효력이 없어서 그는 안타깝다.

“사람들은 자신을 문화의 한 고리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해요. 환경 속에 역사가 포함돼 있어요. 역사적 환경이 있고 자연적 환경이 있는 것이지요.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 모두 우리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지요. 고대사 연구에서 발굴을 하더라도 후손들이 할 것을 남겨두거든요. 지금의 기술이 가지는 한계를 인식해야지요. 후세에서 더 발전된 기술로 발굴하게 되면 우리가 알아내지 못한 역사적 사실들이 더 잘 알게 될 테니까요.”

가장 전통적인 곳 안동에 살면서 가장 현대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역사를 공부하면 자연스레 되는 법이지요. 역사는 과거의 일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미래에 대한 비전과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요.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반복되는 것보다 변화의 대목에 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까?” 전통은 발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에너지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전통을 유물로 존속시키는 데서 긍지를 찾으려는 자들은 함부로 ‘진정한 보수’라는 말을 쓸 일이 아니다.

진짜 안동사람이 되려면 한 300년 걸릴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최근 안동에 살고 있는 한 지역전문가는 “현재 안동에 솥을 걸어놓고 사는 이가 바로 안동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자신의 방식으로 안동을 사랑하는 임 교수. “나는 안동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열린 전통주의자, 역사의 흐름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진보의 노를 힘껏 젓고 있는 그는 신(新)안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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