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와리족의 사라진 금기 재해석… 비탄을 먹는 자연과의 소통행위로 여겨
흔히 식인풍습이라고 알려져 있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은 문화인류학, 생물학, 고고학 등의 분야에서 가장 많은 논쟁이 벌어지는 주제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이 용어는 생물이 같은 종을 먹는 행위를 나타내는 포괄적인 개념이며,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스티븐 제이 굴드와 같은 진화생물학자는 고생대에 살았던 초기생물인 프라이플루스류(袋形動物)에서도 이러한 습관이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카니발리즘이 생물진화의 초기단계에서부터 이미 광범위하게 나타났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의 경우에는 네안데르탈인이나 그 밖의 사람과(科)에 속하는 초기인류에서 이러한 습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콜로라도 남서부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거주지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브라이언 빌먼(Brian R. Billman) 박사는 850년 전에 이 거주지에 세 가족이 살았고 약 20∼30년 동안 거주하다가 그들이 1150년경 그곳을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팀은 그곳에서 최소한 7명의 남자, 여자, 어린아이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먹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배설물, 석기, 요리에 사용된 도구 등을 생화학적인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 사람의 뼈, 피 등을 발견했다. 배설물에서는 사람의 근육에서만 나타나는 미오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 검출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사람을 먹었을까? 빌먼 박사는 그 부근의 버려진 촌락에서도 비슷한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들이 농업공동체를 형성하고 살다가 한발과 같은 혹독한 자연조건 때문에 최후의 방편으로 같은 부족 구성원들을 희생시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단당한 마지막 금기, 그 오해와 진실
몇해 전에 눈덮인 고원에 추락한 항공기 승객들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죽은 사체를 먹는 영화가 상영된 적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사람이 사람을 먹는 엽기적인 행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생각은 너무 편협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더빌트대학의 문화인류학자인 베스 콩클린(Beth A. Conklin)은 최근까지 식인풍습을 지속했던 아마존 열대우림의 원시부족인 와리(Wari)족을 대상으로 탐문조사를 한 끝에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 이 부족은 60년대까지 이 풍습을 지켜왔지만, 정부와 선교사들에 의해 강제로 식인풍습을 중단당했다. 콩클린 교수는 그 이유가 “식인풍습이 현대사회에 남아 있는 마지막 금기(禁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구자들은 1985년에서 2000년까지 식인풍습을 행했던 와리족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와리족의 식인풍습은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하나는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장례절차이다. 전쟁에서 이긴 뒤에 적의 포로를 먹는 것은 적에 대한 분노나 경멸을 나타내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장례에서 나타나는 식인풍습은 전쟁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콩클린 박사는 장례의식에서 같은 공동체 구성원의 사체를 먹는 행위는 사자(死者)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표현이며, 남은 사람들이 슬픔을 달래기 위한 의식이라고 말한다. 그가 같은 주제로 집필한 저서의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그것은 죽은 자의 몸을 먹는 것이 아니라 ‘비탄을 먹는 것’(consuming grief)이다.
콩클린 박사는 연구를 통해 문화인류학에서 식인풍습을 설명했던 전통적인 모델이 적합하지 않으며, 이른바 문명인들의 관점을 우위에 놓은 부당한 설명양식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동안 학자들은 식인풍습이 부족한 단백질을 섭취하거나 죽은 자의 생명력, 용기를 비롯한 그 밖의 품성을 흡수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산 자가 죽은 자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양분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콩클린 박사는 이러한 해석이 문명인들의 관점을 덧씌우는 오만의 발로라고 비판하면서 와리족의 매장의식에는 그들의 세계관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와리족은 유족들이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죽은 자와 연관된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 도움이 되며, 이러한 행위가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다고 믿었다. 가령 살아남은 유족들을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죽은 자가 살던 집을 비롯해서 평소 사용하던 모든 물건들을 태운다. 망자(亡者)의 의복과 신발을 태우는 행위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습이다. 또한 와리족은 죽은 자의 이름을 절대 입에 올리지 않고, 마을에서 죽은 자가 평소 자주 가던 장소까지 없앤다. 따라서 사체를 먹는 행위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이어진 애착의 끈을 풀어내는 포괄적인 의식 중 하나인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포괄적 의식
그 밖에도 와리족에게 사람의 신체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전통신앙에 의하면, 죽은 자의 영혼은 지하세계로 들어가서 그들의 주요한 식량원인 페카리(멧돼지의 일종)로 환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잡는 페카리는 그들의 선조가 후손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몸은 그들이 자연과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이 사자의 몸을 먹는 행위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우리는 가족이나 친지가 죽었을 때 땅에 묻는 매장의식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사체를 먹는 행위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와리족은 오히려 죽은 자를 땅 속에 묻어 썩게 하는 행위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식인풍습에 대해 독특한 입장을 견지했던 철학자 리처드 루틀리(Richard Routley)는 우리가 식인풍습에 대해 일그러진 관점을 갖게 된 원천이 서구의 기독교 전통과 근대의 계몽주의가 낳은 인간중심주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신이 차지하던 위치에 인간을 올려놓으려는 과도한 시도가 인간을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강요했고, 그 결과 인간과 그 밖의 생물들을 철저히 분리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와리족의 식인풍습을 자연과의 소통이라는 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사진/ 와리족의 한 남자가 사냥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와리족의 식인풍습을 재해석한 베스 콩클린.

사진/ 와리족 사냥꾼이 잡은 남미의 멧돼지'페카리'(아래쪽). 베스 콩클린이 와리족에 대한 현지조사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