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에서 출발한 트위터 대나무숲은 2012년 지식노동자들의 문제제기 장이자 기록보관소로 기능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지난 5월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에 모인 노동자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트위터 대나무숲에 모인 지식 노동자들도 공통된 윤리를 만들고 개념화 ·가시화·조직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김봉규
출판사·신문사·디자인회사 옆 대나무숲 등 지식노동자들의 성토장에서 출발한 대나무숲 트위터는 ’시월드 옆 대나무숲’ 등 그동안 몸 낮춰 살아야 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노동자들의 애환은 하루아침에 대나무숲 계정과 함께 생겨난 것이 아니다. 고단한 노동에 지친 ‘을’들은 수년 전부터 같은 말을 되풀이해오는 중이다. 정보기술(IT) 계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한 예다. “한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다. 10개월간 찜질방 정기권을 끊어 하루 3~4시간 자며 일했는데, 임금과 노동시간을 계산해보니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더라.”(<한겨레> 2012년 1월9일치) 몇 년 앞으로 건너가봐도 맥락은 비슷하다. “지난 3년간, 한 이동통신회사의 모바일 인터넷 구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석 달짜리 프로젝트를 하루도 안 쉬고 4시간만 자며 했더니 겨우 테스트 일정에 맞출 수 있었는데, 갑자기 바뀐 ‘갑’의 담당자가 자기들이 확정했던 기획과 디자인을 다시 하자고 하더라. 그러곤 지옥 같은 일정이 다시 반복되었다.”(<한겨레> 2007년 8월22일치) 떠돌던 말들은 이제 대나무숲에서 맞장구쳐줄 동료를 만났다. “몇 달 전 문 닫은 모 대기업 자회사. 12시간씩 일 시키고 저녁은 싸구려 떡볶이만 사주던… 한 달 내내 야근, 주말 근무, 명절까지 일해도 100만원을 손에 못 쥐어봤다. 6개월 만에 도망쳤는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 아직도 이 짓 한다.”(2012년 9월17일 ‘IT 회사 옆 대나무숲’) 이제야 입이라도 벙끗할 공간을 찾은 이들은 자신이 처한 노동과 삶의 퍽퍽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시댁 옆 대나무숲’(@bamboo_in_law00), ‘퀴어들의 대나무숲‘(@pqueersbamboo) 등 대나무숲은 그동안 몸 낮춰 살아야 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주변 영토를 넓히고 있지만, 다수는 여전히 출발지(출판사 옆 대나무숲)인 문화 계통 종사자들에게 뿌리를 둔다. 대나무숲 현상에 대해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지식노동자들의 조직화되지 않은 운동 형태, 이들이 조직적인 노동운동을 현실화할 수 없어서 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엔 지식노동자와 블루칼라 노동자의 구분이 엄연했다. 블루칼라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화됐던 노동운동이 이제는 역전될 가능성이 보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화이트칼라도 블루칼라도 아닌 이들 지식노동자는, 급변하는 노동환경에서 종종 스스로 노동자라는 인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프리랜서 고용관계 연구>에서 한 영화 PD는 인터뷰이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저희는 노동자가 아니잖아요.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네, 저는 개인적으로, 근데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PD들도 있어요. (그러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술가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고용주라고 생각하십니까?)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정체성에 확신이 들지 않는데.” 자신이 노동자인지, 고용주인지 아니면 예술가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가련한 청춘은 과연 무엇을, 어디까지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까. 이택광 교수는 이에 대해 “지식노동자 혹은 열정노동자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현상은 디시인사이드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 좌절이 냉소적으로 표출되는 정도”라며 “공통된 윤리를 만들고 개념화·가시화·조직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가십 매체가 없어서” 뒷담화에서 시작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묻는 트위터 대나무숲은 ‘을’의 해방구, ‘갑’의 헬게이트다. 번성한 대나무숲은 언제 흑색분자에 의해 계정 폭파가 이뤄질지 모르기 때문에, 많은 대나무숲은 비슷한 아이디로 ‘복사계정’을 만들었다. 같은 멘션을 리트윗하며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 2012년 지식노동자들의 문제제기가 수많은 대나무숲에 기록되고 있는 셈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는 “미디어가 부재한 한국 사회에서 대나무숲이 기록하고 퍼뜨리는 기능”에 주목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는 제대로 된 가십 매체가 없다. 일부 스포츠지나 온라인 매체가 이런 역할을 한다지만 홍보용 보도도 많고 진짜 가십을 말하는 매체는 없는 셈인데, 엄숙주의와 권위주의를 벗어던진다면 공론화될 많은 이야기가 술자리에서나 오갈 법한 가십에서 출발할 것이다.” 대나무숲에는 가십과 혼잣말과 선동이 동시에 넘실댄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지, 이제 그만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지, 하루에도 수백 번 고민하게 된다”(방송국 옆 대나무 숲(@bamboo150600))는 문장은 한숨에 가깝다. “노조를 만들자! 만들자!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지만 금방 잠잠해지는 이유는, 낮은 페이라도 우선 던져만 주면 작업을 하는 업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싸게 더 빠르게! 키 프레임당 얼마! 그냥 제 피까지 다 빨아드세요”(프로덕션 옆 대나무숲(@bamboo365365))는 자기 비판. 그리고 “블로그나 홈피 하나씩은 다 운영하고 있으니까 ‘표준계약서’ ‘저작권 양도 반대’ ‘공정한 계약’ 같은 통일된 배너나 아이콘 등을 만들어 배포하는 건 어떨까요? 갑에게 우리의 권리를 일깨워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게요”(그림작가 옆 대나무숲(@bamboo2012999))라는 건설적인 제안도 있다. 낮은 수준의 불만이건 높은 수준의 요구이건 간에 대나무숲에 발을 들인 ‘을’들은 140자의 노동시를 쓰며 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