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광의 여백에 들어선 지리멸렬한 일상… 욕망의 숲에 갇힐 수밖에 없는 사람들
‘江源道의 힘’. 강원도 인제를 지나 속초로 가는 설악산 미시령 중간에 서 있는 큼직한 입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입간판의 내용을 그대로 적자면 ‘국제관광엑스포로 다져진 江原道의 힘, 세계 속의 관광 강원으로/ 강원도의 인심, 우리의 관광상품, 친절, 청결, 질서, 신용’이다. 신념의 수사학으로 가득 찬 이 입간판을 보노라면 웃음이 나온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해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던 국제관광엑스포를 자기 치장의 유일한 도구로 찾아낸 옹색함이 느껴져서고, 다른 하나는 영화 <강원도의 힘>(98)이 떠올라서다. 입간판의 타이틀을 만든 이는 아마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친절하지도, 청결하지도 않고, 무질서하며, 신용 따위는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는 듯 불순한, 심지어 강원도를 서울의 뒷골목 정서로 묘사하는 이 영화의 제목을 베끼지는 않았을 터이다.
특별한 사건도 없이 이미지·환상 산산조각
제목의 강렬함만큼이나 ‘000의 힘’ 따위의 아류 제목을 유행어처럼 각종 인쇄매체에 등장하게 했던 홍상수(39)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은 헤어진 두 남녀가 떠나는 강원도 여행의 짧은 기록이다. 영화는 특별한 사건도 없이 100여분에 걸쳐 강원도, 여행, 그리고 연애에 대해 합의된 이미지나 환상을 산산조각낸다.
대학강사인 유부남 상권(백종학)과 여대생 지숙(오윤홍).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했지만 아직 마음의 정리가 안 된 연인 사이다. 지숙은 두 친구와 함께, 상권은 후배를 따라 강원도로 여행을 떠난다. 두 사람은 같은 기차를 탔지만 서로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강원도에 도착한 뒤에도 두 사람은 설악산과 낙산사 등 같은 공간을 맴돌지만 부딪치지 않는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전개된다. 지숙의 여행길을 따라가는 1부에서 지숙은 젊은 경찰을 만나게 되고 다시 찾아간 그와 어색한 동침을 한다. 상권의 서울생활과 강원도 여행이 주된 내용인 2부에서 상권은 술집여자와 섹스를 나누고 서울로 돌아온다. 강원도의 설악산 일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특히 제주도나 경주 등 다른 이름난 곳들에 비해 서울에서 가기 편하기 때문에 서울 사람들은 거의 한두번쯤은 설악산에서 휴가를 보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지시하는 강원도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서울 사람들이 잠깐 동안의 탈출을 원할 때 가장 많이 가는 곳”의 의미를 지닌 일반명사에 가깝다. “강원도라는 지명에 별 의미나 계산은 없었다. 영화는 두 남녀가 강원도를 통과하면서 겪는 변화를 다룬다. 그것은 마치 어떤 자장을 통과하는 것과도 같다. 크건 미세하건 공간이 사람한테 주는 영향들이 있다. 어디를 지나면서 하는 생각은 바로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생각이 아닌가 싶다. 강원도라는 공간도 그렇다. 이를테면 비일상적인 공간인데 그곳을 통과하면 무엇이 달라지나를 보고 싶었다. 두 주인공이 달라졌다면 무엇이 달라졌고, 달라진 게 없다면 또 어떤건지…” 홍 감독이 강원도를 선택한 이유다. 그러나 제목에서 지나치게 강조된 강원도가 영화에서 드러나는 방식은 서울의 변두리와 질적으로 많이 다르지 않다. 설악산의 위용이나 낙산 해수욕장의 탁 트인 수평선 등 ‘관광지 영화’(?)가 의당 갖추어야 할 아름다운 풍광은 영화의 관심 밖이다. 모난 일상을 압도하는 자연의 힘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물과 자연은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 오히려 상권와 지숙의 시선을 통과하는 숲과 계곡, 바다는 그들의 심성만큼이나 핏기가 없다. 기차를 타고 도착해 친구들과 합류한 지숙은 낙산해수욕장에서 노래책을 펴고 노래도 하고 설악산의 낙산사에도 올라간다. 지숙은 보통 사람들이 흔히 가는 길을 따라 여정을 펼치지만 그곳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휴가’에 배어 있는 설렘이나 평온함이 없다. 두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연결되지 않고 둥둥 떠다니며 술자리에서의 말다툼은 서울에서 느꼈던 환멸이나 비웃음이 증폭된 것일 뿐이다. 상권의 여정은 더 삭막하다. 우연히 콘도를 빌린 후배를 따라 강원도에 온 상권은 설악산을 올라가며 만난 여자와 어떻게 해볼 심산도 부려보지만 결국 그가 하는 짓이라곤 술자리에서 먼저 교수가 된 후배를 향해 자신의 졸렬함을 드러내며 술집여자와 사막 같은 섹스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나신이 바로 거기에 있다
평론가 토니 레인즈가 지적했듯 “휴가의 로맨스 신화”, 즉 죄의식을 느낄 필요없이 성적인 모험을 해보고 싶은 충동이나 휴가중 누군가를 만나 뭔가 흥미로운 일을 벌여보고 싶은 충동은 결코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울에서의 일상을 지배했던 구질구질한 욕망과 자의식의 신경전만이 자리를 옮겨 변주될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일상에서 벗어난 어딘가로 떠나면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그렇지만 가서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도시에서의 생활과 별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대학 때 친구들과 설악산이나 속리산 같은 데로 충동적으로 여행을 가본 적이 몇번 있는데 항상 도착해서 불과 하루, 이틀 지나면 떠날 때 품었던 막연한 기대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지리멸렬이 되는 거예요. 누가 돌아오라고 지시한 것도 아닌데 피로와 짜증만 잔뜩 묻혀가지고 황급히 서울로 돌아오곤 했지요.” 상권 역을 맡았던 백종학(36)씨는 여행에 기대하는 치유와 재생의 환상에서 깨어났던 짧은 여행담들을 귀띔해준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경우 여행과정의 절정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 교통편 안에서 이뤄진다. ‘떠나자’고 다짐을 하는 순간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긴장과 설렘은 여행지로 향하는 기차나 버스, 비행기에서 부지런히 발효되고 부풀어진다. 시계 바늘이 도착시간에 가까워 올수록 감정의 팽창 속도는 빨라져 도착 직전 정점에 도달하지만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또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부풀었던 기대는 쭈글쭈글한 주름을 만들면서 사그러든다. 던져두고 왔다고 믿고 싶지만 여전히 반쯤은 허리춤에 달고 온 욕망과 똬리를 튼 자의식으로 인해 사람들은 엉거주춤한다. 이 어정쩡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주나 섹스를 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 결과는 건조한 일상에서보다 더 참혹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할 때 가끔은 ‘버스가 또는 기차가 서지 말고 계속 달렸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상권은 그의 연애사를 알고 있는 후배에게 “나이는 어리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성숙한 여자”라는 신파적인 말을 선뜻 내뱉을 정도로 지숙을 사랑했(다고 믿)지만 그의 일상은 지숙에 대한 타는 듯한 그리움보다는 전임교수가 되기 위해 선배를 만나서 전술적 지침을 받고 노교수의 집에 고급 위스키를 들고 찾아다니는 것으로 채워진다.
지숙과 상권은 서울에 돌아와 다시 만난다. 이들이 서로의 강원도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는지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여관에 들어가 서로의 몸을 더듬는다. “나 수술했어요” 하는 지숙에게 상권은 오럴섹스를 요구한다. 서울에서 그들의 섹스는 강원도에서 겪었던 익명의 섹스보다 더 나을 것도 한심할 것도 없다.
<강원도의 힘>을 보는 것은 불편하다. 이렇게 형편없는 요구를 하는 상권이라는 인물을 향해 순연하게 분노할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발가벗겨진 ‘나’의 치부를 응시해야 하는 불편함이다.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의 나신(裸身)은 “삶을 안개 속에 가두어 놓는 우리에 대한 근거없는 희망과 눈먼 이상주의적 선동”으로 위장된 “지리멸렬한 파편적인 삶”의 원형질이다.
광화문이나 설악산이나 무엇이 다를 건가
“상권은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얄팍하고 구질구질한 욕망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필요에 따라 치사해지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광화문 네거리나 설악산 계곡에서 만나는 무수한 30대 남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요. 저 역시 나를 들여다보면 남들은 보지 못할지라도 내 안에서 언뜻 상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아픈 지숙에게 오럴섹스를 요구하는 상권을 보며 미친 놈이라고 욕할 수 있겠지만 그의 욕망에 공범자가 아니라고 결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여름이 막바지에 치닫는 8월 말 낙산해수욕장은 여전히 인산인해다. 해수욕장 언덕 위 낙산비치호텔 로비는 아이들과 가족들, 젊은 남녀들로 붐빈다. 젊은 남녀가 부부인지, 불륜인지, 오래된 연인 사인지, 강원도에서 처음 만난 어색한 연인 사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아는 게 또 무슨 대수랴. 강원도에서의 추억이 설사 음주와 주먹질, 파출소 행으로 이어진 이들이 다음해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나 <비포 선 라이즈>를 꿈꾸며 속초행 열차를 탄다 한들 무슨 죄가 될 것인가. 어차피 남루한 일상은 일탈보다 훨씬 높은 파고로 인간의 삶을 덮칠 것이고 우리는 잠시나마 낄낄거리며 안 그런 척, 그 비루함을 망각하는 척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글/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사진/이정용 기자lee312@hani.co.kr


(사진/강원도의 힘)
대학강사인 유부남 상권(백종학)과 여대생 지숙(오윤홍).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했지만 아직 마음의 정리가 안 된 연인 사이다. 지숙은 두 친구와 함께, 상권은 후배를 따라 강원도로 여행을 떠난다. 두 사람은 같은 기차를 탔지만 서로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강원도에 도착한 뒤에도 두 사람은 설악산과 낙산사 등 같은 공간을 맴돌지만 부딪치지 않는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전개된다. 지숙의 여행길을 따라가는 1부에서 지숙은 젊은 경찰을 만나게 되고 다시 찾아간 그와 어색한 동침을 한다. 상권의 서울생활과 강원도 여행이 주된 내용인 2부에서 상권은 술집여자와 섹스를 나누고 서울로 돌아온다. 강원도의 설악산 일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특히 제주도나 경주 등 다른 이름난 곳들에 비해 서울에서 가기 편하기 때문에 서울 사람들은 거의 한두번쯤은 설악산에서 휴가를 보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지시하는 강원도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서울 사람들이 잠깐 동안의 탈출을 원할 때 가장 많이 가는 곳”의 의미를 지닌 일반명사에 가깝다. “강원도라는 지명에 별 의미나 계산은 없었다. 영화는 두 남녀가 강원도를 통과하면서 겪는 변화를 다룬다. 그것은 마치 어떤 자장을 통과하는 것과도 같다. 크건 미세하건 공간이 사람한테 주는 영향들이 있다. 어디를 지나면서 하는 생각은 바로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생각이 아닌가 싶다. 강원도라는 공간도 그렇다. 이를테면 비일상적인 공간인데 그곳을 통과하면 무엇이 달라지나를 보고 싶었다. 두 주인공이 달라졌다면 무엇이 달라졌고, 달라진 게 없다면 또 어떤건지…” 홍 감독이 강원도를 선택한 이유다. 그러나 제목에서 지나치게 강조된 강원도가 영화에서 드러나는 방식은 서울의 변두리와 질적으로 많이 다르지 않다. 설악산의 위용이나 낙산 해수욕장의 탁 트인 수평선 등 ‘관광지 영화’(?)가 의당 갖추어야 할 아름다운 풍광은 영화의 관심 밖이다. 모난 일상을 압도하는 자연의 힘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물과 자연은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 오히려 상권와 지숙의 시선을 통과하는 숲과 계곡, 바다는 그들의 심성만큼이나 핏기가 없다. 기차를 타고 도착해 친구들과 합류한 지숙은 낙산해수욕장에서 노래책을 펴고 노래도 하고 설악산의 낙산사에도 올라간다. 지숙은 보통 사람들이 흔히 가는 길을 따라 여정을 펼치지만 그곳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휴가’에 배어 있는 설렘이나 평온함이 없다. 두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연결되지 않고 둥둥 떠다니며 술자리에서의 말다툼은 서울에서 느꼈던 환멸이나 비웃음이 증폭된 것일 뿐이다. 상권의 여정은 더 삭막하다. 우연히 콘도를 빌린 후배를 따라 강원도에 온 상권은 설악산을 올라가며 만난 여자와 어떻게 해볼 심산도 부려보지만 결국 그가 하는 짓이라곤 술자리에서 먼저 교수가 된 후배를 향해 자신의 졸렬함을 드러내며 술집여자와 사막 같은 섹스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나신이 바로 거기에 있다

(사진/<강원도의 힘>에서 묘사되는 강원도는 서울의 뒷골목이나 변두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상권 역을 연기했던 백종학씨)

(사진/상관이 후배와 찾아왔던 대포항 작은 횟집.지숙 또한 같은 시간 낯선 남자와 이곳을 찾는다.그러나 둘은 만나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