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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중문화 코드에서 가장 흥한 아이템은 90년대의 호출이었다. 이들의 첫사랑과 ‘오빠’를 외치던 일상은 이제 ’복고’ 아이템이 되었다.
80년대생, 복고를 소비하는 나이로 드라마를 지켜보는 외부의 시선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씨는 “지금 30대 초반은 한창 돈 버는 시기,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사는 걸까 고민하는 나이”라며 “문화의 가장 강력한 소비층인 이들에게 호소하는 이야기가 등장”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0년 주기설’로 정리했다. “드라마나 영화로 재현되는 패턴을 보니 대체로 주기가 20년 단위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1990년대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는데, 2010년대가 되니 이를 말할 시기가 된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당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문화 코드가 쏟아져나오더니 영화와 드라마 등 내러티브를 가진 요소로 옮아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H.O.T.의 문희준이 ‘아이돌의 조상’으로 명명되고 그의 첫 무대는 어언 15년 전의 것이 되었으니 1990년대에 10대를 보낸 대중음악평론가 이민희씨 또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복고’라는 개념을 소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2012년은 대중문화에서 1990년대를 처음으로 ‘옛이야기’로 쓴 해로 기록될 것이다. 흐름을 살펴보면, 특정 시절의 정서를 가장 효과적으로 불러오는 도구인 음악이 먼저 흘러나왔다. 지난해 3월 시작한 MBC <일밤-나는 가수다>는 매주 리메이크되는 옛 노래 사이에 90년대 가요를 끼워넣었고, 서울 홍익대 인근 등지에서 문을 열고 8090 가요를 틀어주는 클럽 ‘밤과 음악 사이’는 90년대 복고 바람의 충분한 밑밥이었다. 싸이는 지난 8월11일 서울 잠실 올림픽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썸머스탠드-훨씬 더 흠뻑쇼’를 열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 등 90년대 댄스가요 메들리와 춤을 선보였다. 뮤지컬 <전국노래자랑>은 7080 가요를 넘어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김원준의 <쇼>,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 등을 무대에 올리며 당시의 정서를 환기한다. 청각적 자극에 먼저 호소한 90년대 감성은 영화, 드라마 등 시각적 무대로 옮아왔다. <응답하라 1997>에 앞서 영화 <건축학개론>이 90년대 초반 20대를 보낸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은 매회 마흔 살 주인공들의 20대로 돌아가 90년대를 회고했다. 여기저기서 1990년대가 호출되는 와중에 이 안에서도 다른 결이 존재한다. 차우진씨는 “두 개의 90년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1년을 단위로 무언가 확확 바뀌는 시기였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로 90년대 초·중반에 유학생이 많아지자 외국에 다녀온 이들이 고급 음악을 많이 들여왔고 이런 취향에 맞춰 유희열·윤상·김현철 같은 가수들이 등장했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고, 민영방송사가 개국하고, Mnet 등이 등장하며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몸을 키웠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댄스 커뮤니티가 흥하고 거기서 유명했던 이들이 뭉쳐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했다. 90년대 초반에 10~20대를 보낸 이들이 이런 변화를 눈으로 확인한 세대였다면, 90년대 후반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세대였다. 그러니 90년대의 10대는 하나의 세대로 규정되지 않는다. 90년대 안에 공존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덤과 H.O.T.의 팬덤은 서로 다른 색을 가졌고 이 변화의 주기는 매우 짧았다. 그러나 두 그룹은 오늘날 대중문화의 원형으로 동시에 기능하며 이는 <응답하라 1997>과 <건축학개론>, 90년대 리메이크 가요와 뮤지컬 <전국노래자랑> 등이 특정 세대만이 아닌 그 앞과 뒤의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는 이유로 작용한다. 버려지는 시기도 빨라, 빨리 돌아오다 종합하면 1990년대가 복고로 읽히는 것은 시간상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이 시절이 특별한 지점임을 부정할 수 없다. 90년대는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대중문화의 원형을 체험한 때이고, 삐삐와 PCS폰 등 처음으로 디지털 기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원호 PD의 말대로 “세상이 급속도로 바뀌기 시작했고, 그만큼 버려지는 시기도 빨라”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이동연 교수는 “90년대 복고 바람은 이제 출발점에 섰고, 기성세대의 향수를 부를 수 있는 것들은 현재의 스타일로 세련되게 계속 재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때가 되었으므로 90년대 복고가 도래했고, 그리워서 우리, 그리고 ‘오빠’를 외치던 1세대 빠순이들은 이제 그 시절을 곱씹으며 다시 소비하는 세대가 되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