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적으로 때론 친구로…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영화 속 로봇의 진화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로봇은 친근하기보다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통속적인 SF에서 로봇은 외계의 괴물이나 미친 과학자 등과 함께 악역을 맡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1926년에 독일의 프리츠 랑 감독이 만든 걸작 SF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도 ‘마리아’ 로봇은 복제인간으로 둔갑하여 노동자들을 선동, 폭력을 행사하게 만든다. 그러나 오늘날 이 로봇은 악역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시대를 뛰어넘은 세련된 시각디자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흐르도록 영화 속에 나오는 로봇들은 대개 깡통 땜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금지된 세계>에서 친구가 되다
로봇이 인간의 친구로 극적인 변신을 한 것은 1956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금지된 세계>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로봇 ‘로비’는 충실한 하인이자 만능 재주꾼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로봇 캐릭터가 하나의 대중적 아이콘으로 부각된 것은 사실상 ‘로비’가 최초이며, 그 인기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서 미국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손자 세대까지 하나의 공감대로 묶어주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컴퓨터공학이 발전하고 인공지능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로봇의 핵심 중추인 인공두뇌에 대해서도 진지한 접근이 이루어진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등장하는 컴퓨터 ‘할 9000’은 자신에게 모순된 명령을 내린 인간들 때문에 고민하다가 인간 그 자체를 소거시켜버리려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이러한 설정은 인공두뇌의 사고나 행동양식에 관한 중요한 본보기가 되는 텍스트로서 이후 많은 SF로봇들에 영향을 끼쳤다. 70년대의 로봇영화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웨스트월드>(1973). 이 영화는 오늘날 <쥬라기 공원>의 작가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이 각본을 쓰고 직접 감독까지 했는데, 내용 역시 <쥬라기 공원>처럼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과학기술을 다루고 있다. 서부개척시대를 재현한 테마공원에서 로봇 총잡이가 입력된 프로그램을 어기고 인간에게 총을 쏘아댄다. 대머리 명배우 율 브린너가 로봇 총잡이를 열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품. 1977년에 이르러 <스타워즈>가 발표되자 로봇 캐릭터는 일약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주인공은 R2-D2와 C-3PO 두 로봇 콤비로서 서로 상반된 외모를 지녔는데, 인간과 같은 휴머노이드 타입인 C-3PO보다 단순한 깡통 형태인 R2-D2쪽이 더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일종의 ‘이동형 만능기계’인 이 로봇은, 인간보다는 주로 기계나 컴퓨터들 사이의 인터페이스로서 활동한다는 과학적 묘사의 충실함 덕분에 이전까지의 단순하고 막연한 역할의 로봇들과 차별되는 설득력을 이끌어낸 듯하다.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영화 속 로봇은 더 세련되고 정교해진 모습을 나타냈다. 게다가 역할도 인간의 정체성 탐구라는 진지한 주제의 수사적 상징으로 격상되었다. 외모나 언행만으로는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고도의 로봇을 흔히 안드로이드라고 부르는데, 1982년에 발표된 <블레이드 러너>는 바로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영화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이 영화의 안드로이드 제조회사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으며, 실제로 안드로이드들은 인간보다도 훨씬 더 절박하고 숭고하게 삶과 인간성의 의미에 매달린다. 액체금속로봇, 물리적 발전의 정점
1984년에는 오늘날 가장 유명한 로봇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터미네이터>가 처음 등장했다. 시간여행의 패러독스와 로봇 액션을 절묘하게 결합한 이 작품은 90년대 들어 후속편이 제작되면서 엄청난 인기상승 효과를 누리게 된다.
<터미네이터>와 함께 80년대가 낳은 또 하나의 로봇 캐릭터는 1987년작인 <로보캅>.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과는 달리 로봇이 아니라 사이보그다. 로봇은 100% 인공물인 반면, 사이보그는 인간을 비롯한 생물 신체의 일부를 기계나 인공기관으로 대치한 것을 뜻한다. 로보캅은 비록 전신이 금속 뼈대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머리는 사망한 경찰관의 두뇌를 되살린 것이다. 이 때문에 로보캅은 이따금 예전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며 자기정체성의 고민에 빠진다.
1990년대 이후 가상현실을 다루는 사이버펑크영화들이 쏟아져나오면서 로봇 캐릭터들은 한동안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TV연속극인 <스타 트랙: 그 다음 세대>에서 승무원 중 한명으로 나오는 ‘데이터’의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안드로이드인 그의 전자두뇌는 경이로움과 의문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서 스스로 진화가 가능하다. 등장할 때마다 항상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몰두하면서 인간에 가까워지려는 모습은 오늘날의 로봇 담론에서 사실상 가장 진보된 역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1992년에 나온 <터미네이터2>는 무정형의 액체금속로봇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액체금속로봇은 SF로봇의 변천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단순한 시각효과적 신선함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이러한 액체금속로봇의 제작이 일단 불가능하지만, 그렇다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과학기술들은 어떤 것이겠는가 하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상온에서 고체와 액체 상태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신종합금의 개발이나 나노테크놀로지로 구현되는 초고밀도 인공지능 및 메커니즘 등등. 아무튼 이 액체로봇은 현재까지 등장한 모든 SF로봇들 중에서 물리적으로는 가장 발전된 형태라 할 수 있다.
21세기의 초입에 발표된 <바이센테니얼 맨>(2000)은 SF팬들에게는 단순히 한편의 영화 차원을 넘어서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로봇’ 주제의 SF작가로서 독보적인 명성을 쌓았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이 장장 60여년 만에 스크린에 구현되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른바 ‘로봇공학의 3원칙’에 충실하면서 한순간도 인간이 되려는 갈망을 포기하지 않는 로봇이다.
SF를 지배하는 로봇공학의 3원칙
로봇공학의 3원칙이란 아시모프가 창안한 로봇의 행동강령이다. 1원칙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위험에 처한 상황을 방관하지 말 것, 2원칙은 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에게 절대 복종할 것, 3원칙은 앞의 두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항상 스스로를 보호할 것. 사실 이런 원칙들을 저 혼자 판단할 수 있는 인공두뇌의 개발은 아직 요원하지만, SF적 설정으로는 매우 흥미로운 장치가 된다.
이번에 개봉된 스필버그의 는 원래 예술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이 20여년 가까이 진행시켜왔던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그는 처럼 아이들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1994년에 스필버그에게 감독을 맡겼다고 한다. 아쉽게도 큐브릭 감독은 영화가 완성되기 훨씬 전인 1999년 말에 작고하고 말았는데, 관객 입장에서도 ‘그가 직접 감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필버그의 는 대중적 정서에 호소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작품성 측면에서는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인류가 멸종된 뒤에도 살아남아서 인간의 유산을 증언하는 로봇 소년의 모습은, 앞으로 로봇이 현실의 역사에서 담당할 수도 있는 어떤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적잖이 흥미롭다.
박상준/ SF·과학해설가

사진/ 스타워즈.
로봇이 인간의 친구로 극적인 변신을 한 것은 1956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금지된 세계>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로봇 ‘로비’는 충실한 하인이자 만능 재주꾼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로봇 캐릭터가 하나의 대중적 아이콘으로 부각된 것은 사실상 ‘로비’가 최초이며, 그 인기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서 미국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손자 세대까지 하나의 공감대로 묶어주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컴퓨터공학이 발전하고 인공지능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로봇의 핵심 중추인 인공두뇌에 대해서도 진지한 접근이 이루어진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등장하는 컴퓨터 ‘할 9000’은 자신에게 모순된 명령을 내린 인간들 때문에 고민하다가 인간 그 자체를 소거시켜버리려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이러한 설정은 인공두뇌의 사고나 행동양식에 관한 중요한 본보기가 되는 텍스트로서 이후 많은 SF로봇들에 영향을 끼쳤다. 70년대의 로봇영화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웨스트월드>(1973). 이 영화는 오늘날 <쥬라기 공원>의 작가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이 각본을 쓰고 직접 감독까지 했는데, 내용 역시 <쥬라기 공원>처럼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과학기술을 다루고 있다. 서부개척시대를 재현한 테마공원에서 로봇 총잡이가 입력된 프로그램을 어기고 인간에게 총을 쏘아댄다. 대머리 명배우 율 브린너가 로봇 총잡이를 열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품. 1977년에 이르러 <스타워즈>가 발표되자 로봇 캐릭터는 일약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주인공은 R2-D2와 C-3PO 두 로봇 콤비로서 서로 상반된 외모를 지녔는데, 인간과 같은 휴머노이드 타입인 C-3PO보다 단순한 깡통 형태인 R2-D2쪽이 더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일종의 ‘이동형 만능기계’인 이 로봇은, 인간보다는 주로 기계나 컴퓨터들 사이의 인터페이스로서 활동한다는 과학적 묘사의 충실함 덕분에 이전까지의 단순하고 막연한 역할의 로봇들과 차별되는 설득력을 이끌어낸 듯하다.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영화 속 로봇은 더 세련되고 정교해진 모습을 나타냈다. 게다가 역할도 인간의 정체성 탐구라는 진지한 주제의 수사적 상징으로 격상되었다. 외모나 언행만으로는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고도의 로봇을 흔히 안드로이드라고 부르는데, 1982년에 발표된 <블레이드 러너>는 바로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영화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이 영화의 안드로이드 제조회사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으며, 실제로 안드로이드들은 인간보다도 훨씬 더 절박하고 숭고하게 삶과 인간성의 의미에 매달린다. 액체금속로봇, 물리적 발전의 정점

사진/ 바이센터니얼 맨.

사진/ 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