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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선생님이 아니라 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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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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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운·김민우·조정현·박준하… 망각을 딛고 부활하는 30대 가수들

서울 마포의 한 스튜디오. 두터운 이중문을 열자 안면의 근육을 때리는 듯 강렬한 비트가 온몸을 후끈하게 감쌌다. 에 이어 시작되는 . 80년대 20대를 보낸 사람들이 고고장에 드나들며 발바닥에 불을 붙이던 그때 그 음악들이 연주되고 있었다. 스튜디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네 사람. 어떤 이들에게는 반갑고, 어떤 이들에게는 생소한 사람들이다. 생소하다면 아마도 20대 초반의 초(超)신세대일 확률이 높다.

찾아오지 않는 팬들을 찾아간다

박정운(37), 김민우(33), 조정현(36), 박준하(36).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 가요판을 풍미했던 네 가수가 모였다. 공연 <회귀(回歸)>(8월18∼26일/ 연강홀/ 1588-7890) 연습을 위해서다. 실로 오랜만에 콘서트 현장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신인가수가 첫 무대를 준비하듯 발갛게 상기된 모습이었다.


“거의 매진이래요. 원래는 서울에서만 일주일하기로 했는데 지방 기획사들이 요청해서 부산, 광주, 청주, 수원, 창원 공연까지 이어져 기간이 10월까지 연장됐어요.” 이야기하는 박준하씨의 목소리에는 가벼운 떨림까지 느껴졌다.

정말이지 오랫동안 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이들의 이름은 몇년 동안 활동하다 슬며시 무대 뒤로 사라진 무수한 가수들과 함께 잊혀졌다. 그래서 십년 만에 다시 등장하는 이들의 용기가 가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쑥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오히려 편안하다”고 대답한다. “더 많은 팬, 화려한 조명에 대한 긴장감이 아니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설레임이라고 할까요?”

“옛날에는 팬들이 나를 보러 온다고 생각했었죠. 이제는 저희들이 찾아갑니다. 대중음악판이 10대 위주라고 비판만 하면 뭐해요. 깨지더라도 나와서 싸워야죠.” 박정운씨가 운을 띄웠다. 그동안 후배 밴드의 앨범제작을 두번했다가 “완전히 말아먹고, 숨어 있었다”는 박씨는 공연준비하랴, 9월에 나올 7집 마무리하랴 가장 바빠보였다. 박씨처럼 후배 가수의 음반제작에 나섰다가 쓴맛을 본 조정현씨는 자영업을 하면서 잠시 외도를 했다가 돌아왔다. “잘 나갈 때는 정말 나하나 잘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작한답시고 후배 음반들고 직접 뛰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게다가 같이 농담하던 방송사 PD들과 눈 한번 맞추기 위해서 새벽 다섯시에 집을 나서는 기분이란…. 그래도 그 경험이 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죠.”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인기의 정점에서 사라졌던 김민우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운나쁜 가수로 꼽힐 만한 사람이다. “활동 4개월 만에 군대에 갔어요. 제대하고 나서 3집음반을 낸 직후 제작사가 쓰러져서 제대로 활동할 수 없었지요. 게다가 어렵게 만들어놓은 녹음실에 불이 나고, 견디기 힘든 시절이었죠.” 제대 뒤 처음 가진 한 방송사 무대에서 서태지와 아이들과 만났던 김씨는 그때 느꼈던 쓸쓸함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중음악의 허리를 만드는 것

사진/ 공연 <회귀>로 돌아온 가수들. 김민우(위쪽)와 박정운.
방송에서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이들은 미사리에서 계속 노래를 불러왔다. 물론 그 무대가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수천명씩 모이는 장소에서 노래하다가 몇십명의 사람들, 게다가 노래하는 중간에 자리를 뜨기도 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데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여기 있는 사람들만 내 음악을 인정해도 나는 다시 할 수 있다, 그런 거요.” 제작으로 재정적 타격을 입은 뒤 미사리 음악카페로 출근길을 옮겼던 박정운씨는 “첫눈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다른 가수들에 비해 꾸준히 음반작업을 해왔던 그는 한동안 노래 부르는 데 염증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4집, 5집이 나와도 가끔 방송 나가면 요구하는 건 <먼 훗날에> <오늘같은 밤이면>이에요. 늘 같은 노래를 하다보니까 어느 순간 아무런 열정도 없이 노래하고 있는 내 자신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한 4년 동안 방송활동을 일절 접었죠.”

박준하씨는 다른 세 가수와 달리 오랫동안 아예 음악활동을 접고 있다가 이번 공연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았어요. 먹고살기 위해서 무대에 서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가수라면 좋은 노래 발표하면서 활동해야 하는데 옛날 거 우려먹는다는 것도 저 자신을 누추하게 만들었고요.” 그러나 이번 무대의 주동이 된 건 박준하씨였다. 처음에는 기획사의 중견가수 패키지 상품화에 회의도 들었지만 세 동료들을 보면서 활동 재개를 준비하게 된 건 박씨 개인의 결실이기도 하다.

언뜻 보면 이번 공연기획 역시 복고바람에 편승하는 상술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네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대중음악의 허리를 만드는 건 우리 몫이라고 생각해요. 20∼30대가 들을 만한 음악이 없다는 데는 우리 책임도 커요. 후배들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음악을 하는 데 필요한 매뉴얼도 우리 몫이죠.” 조정현씨의 말을 박정운씨가 이어받는다. “젊었을 때는 대중성이냐, 음악성이냐 이런 문제로 고민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건방진 나르시시즘이었는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많이 돼요. 아마 후배가수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얼마 전에 이들은 함께 방송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수백개의 조명 아래 서는 기분도 낯설었지만 대기실에서의 분위기는 더욱 낯설었다. “제가 활동할 때만 해도 누가 말하지 않아도 방송이 끝나면 모든 가수가 모여서 밥먹고 뒤풀이도 했어요. 그런데 요즘 후배들은 그냥 데면데면해요. 참 어색하더라고요.” 김민우씨가 후배들 이야기를 꺼내자 다들 한마디씩 거든다. “요즘에는 가수하는 걸 쉽게 생각하는 후배들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외모나 개인기 중심으로 신인가수들을 띄우는 제작사나 방송사 탓이 크겠지요. 그렇지만 가수를 그냥 인기연예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후배들에게 음악적 줏대가 좀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힙합이 뜬다니까 너도나도 힙합하고, R&B가 뜨니까 또 그쪽에 우르르 몰리고, 그러니까 음악적 다양성이 90년대 초반보다 훨씬 부족해졌어요.” 정상의 화려함과 내리막의 고적함을 모두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역시 당장의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나중에 대한 염려가 더 커보이는 듯했다.

대박을 바라는 게 아니다

사진/ 조정현(위쪽), 박준하.
네 사람은 “우리는 이미 정상에서 내려왔다”고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다시 재기를 꿈꾼다”는 전제도 붙어 있지 않다. “대박이 아니라 다만 몇만장이 팔리더라도 우리가 기거할 자리, 20∼30대에게 음반 고르는 재미를 다시 찾아오는 게 우리의 바람”이라는 이들의 고백은 수수해서 더 여유롭게 들린다. 오는 9월 새 음반을 내는 박정운씨를 시작으로 올 겨울쯤에는 김민우씨도 독집을 낼 생각이다. 조정현씨과 박준하씨는 듀엣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가능하면 네 사람의 헤쳐모여도 계속해볼 생각이다.

취재도중 케이블 음악채널의 카메라가 연습현장을 찾았다. 10대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의 PD가 이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박정운씨가 대답한다. “선생님 아닌데요, 형인데요.” 이들은 마지막에 “파이팅”을 외쳐달라는 요구에 “출발”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허리가 없는 우리 대중음악판에 이들의 외침이 좌절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기자만이 아닐 것 같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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