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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탐욕의 고양이’가 활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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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15 10:46 수정 : 2012-09-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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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 보하이만에 접한 베이다이허는 휴양지로 이름이 높다. 수도 베이징에서 약 280km 떨어져 있으니, 중국 기준으론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1958년부터 해마다 여름이면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이곳으로 모여든다. 피서를 겸해 공산당의 주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8월4일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렸다. 오는 10월 열리는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10년 만에 권력 교체가 이뤄지는 터라, 안팎의 관심이 예년보다 뜨겁다. 차기 지도부를 구성할 정치국 상무위원 6명과 이들을 포함해 모두 25명으로 구성되는 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회의 기간에 확정될 예정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8월호에서 특집으로 ‘오늘의 중국’을 다룬 것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중국 10년 전 소득 격차 7.3배에서 23배로

리시구앙 신화대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은 ‘불평등은 끝이 좋지 않다’는 글에서 “세계 2위의 경제강국인 중국의 소득 불평등은 미국 못지않다”고 지적했다. 2009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사이의 소득격차는 15.9배다. 반면 중국에선 그 격차가 무려 23배에 이른다. 10년 전인 1998년엔 7.3배였단다. 리 소장은 “빈부 격차 문제가 공산당의 정당성을 위협하고 있다”며 “다가오는 18차 전국대표대회에선 ‘국민 최우선’이란 전략을 채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까만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덩샤오핑이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기 위해 내세운 이 논리가 스페인에서도 바람을 타고 있는 모양이다.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펠리페 곤살레스의 흑묘백묘론’이란 제목의 글에서, 스페인이 겪고 있는 현 경제위기의 뿌리를 1980년대 집권한 좌파 정부가 부추긴 눈먼 탐욕에서 찾는다. 세풀베다는 이렇게 지적했다.

“부동산 투기 광풍과 그에 따른 부정부패로 비행기가 한 대도 착륙한 적이 없는 대규모 공항과, 승객이 단 한 명도 이용한 적 없는 고속철도, 토끼만 뛰노는 자동차 경주장, 비둘기가 둥지를 튼 웅장한 문화회관이 앞다퉈 들어섰다. 이 시기에 은행은 역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두었다. 고양이가 쥐를 잡은 것이다. …결국 스페인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부정부패에 대한 변명, 물욕에 대한 사회주의적 변명, 미묘한 색깔의 고양이 포식으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가증스러운 고양이는 쥐 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스페인뿐이 아니다. 한국판에서 비중 있게 다룬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의 ‘가계부채,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을 보면, 한국에서도 살찐 ‘탐욕의 고양이’가 활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2011년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부채가 있는 가계의 평균 금융 부채는 6396만원에 이른다. 이는 가계의 연간 가처분소득 3283만원의 거의 2배에 가까운 금액이란다. 그는 “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수출 경기가 급격하게 냉각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등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소지가 다분히 큰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이미 일부에선 빚으로 빚을 막아야 하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경은 국가의 물리적 시위

이 밖에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주간지’로 알려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를 ‘부자와 엘리트들의 명품 스카프’이자 ‘미국에 줄 선 자유주의의 수호자’로 꼬집은 알렉산더 제빈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역사학)의 글도 흥미롭게 읽힌다. 무려 3286km에 이르는 인도∼방글라데시 국경지대의 삶을 추적한 사진가 엘리자베스 러시의 글을 읽다 보면, “국경은 과대망상증에 걸린 국가의 주체할 수 없는 강력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물리적 시위에 불과하다”는 그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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