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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노장의 노래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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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26 14:48 수정 : 2012-09-0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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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그리스 아테네 헬리니코 인도어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우선희가 덴마크 수비를 제치고 슛을 던지고 있다. 아테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녀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의 런던올림픽은 그녀가 나오는 사진에서 시작됐다. 지난 7월3일, 런던올림픽 미국 수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다라 그레이스 토레스가 딸과 포옹하는 장면이었다. 아니 이 아줌마, 아직도 선수생활하네…. 놀라움을 넘어선 경이였다. 17살 때 그녀는 1984년 LA올림픽에 첫 출전해 금메달을 땄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금·은·동메달을 각각 4개씩 거머쥐었다. 그후 오랫동안 은퇴했다가 41살에 베이징올림픽에 돌아와 은메달 [%%IMAGE1%%]2개를 더 획득한, ‘원더우먼’ 토레스가 45살에 런던올림픽 미국 예선에 나와 50m 4위의 ‘준수한’ 성적으로 탈락한 것이다. 올림픽을 감상하기에 노장들의 투혼만큼 ‘알흠다운’ 감상 포인트가 또 있을까. 우리에게는 올림픽에 나오는 ‘타라 토레스들’이 있다.

우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우선희가 없었던 올림픽’으로 기억한다. 한국 여자핸드볼의 ‘전설들’ 중 둘째가라면 서러운 기량의 선수가 우선희다. 2003년·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베스트 7, 빛나는 한국 핸드볼 역사에도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주역으로 은메달도 땄다. 완벽한 그녀에게 단 하나 없는 것,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절치부심 금메달을 ‘염원’했지만 대회를 앞두고 무릎 부상을 당해 출전을 접어야 했다. 베이징에서 한국이 노르웨이와 치열한 4강을 벌이다 1점 차로 탈락했을 때, ‘우선희만 있었다면…’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세계 최고의 라이트 윙, 우선희가 34살 대표팀 맏언니로 돌아왔다. 하필이면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의 덴마크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의 노르웨이, 한국을 울린 팀들과 같은 조다. 더구나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1~4위 팀이 속한 ‘죽음의 조’다. 그러나 우리에겐 4년 전, 너무나 그리워했던 새처럼 날아오르는 우선희의 점프 슛이 있다.

남자핸드볼의 윤경신은 20년째 올림픽 개근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19살로 처음 출전한 청년은 2012년 런던에서 39살 노장으로 5회 연속 올림픽에 나선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득점왕을 하고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한이 그를 밀어가는 힘이다. ‘올드보이’의 귀환은 사이클에서도 이어진다. 38살 조호성, 파란만장 노장이 12년 만에 올림픽에 나선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포인트레이스에서 1점 차로 4위에 그친 한이 있다. 2004년 경륜으로 전향해 ‘경륜황제’란 칭호도 얻었다. 그러나 올림픽을 향한 열망은 끈질겼다. 마침 단거리와 장거리를 모두 잘하는 그에게 알맞은 종목도 생겼다. 6종목을 뛰는 ‘옴니엄’ 경기다. 지난 2월 런던 트랙월드컵 옴니엄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내 자신감도 얻었다.

장미란의 세 번째 올림픽은 금메달이 아니어도 좋다. 2004년 아테네에서 깜짝 은메달, 2008년 베이징에서 당연한 금메달을 획득한 역도 선수 장미란의 마지막 도전은 지난 두 번의 올림픽보다 힘겹다. 그녀가 부상에 시달리며 세계선수권대회를 쉬는 사이에 러시아, 중국의 신예들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치고 올라왔다. 어느새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 금메달이 아니라도 우리는 장미란의 올림픽을 응원할 준비를 마쳤다. 김경아, 장미란보다 5살이 많다. 솔직히 한물간 선수인 줄 알았다. 어머나, 그녀의 세계랭킹을 보고 깜짝 놀랐다. 35살에 5위. 중국 선수가 즐비한 탁구에서 노장 김경아의 위치는 놀랍다. 이제 우리가 그 마지막 도전을 조용히 지켜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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