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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지금 일상이 무시무시한 것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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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10 20:50 수정 : 2012-07-1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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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강신준 지음, 사계절 펴냄, 1만2천원
‘마르크스의 자본’이라고? 이 책의 제목과 만나는 순간 독자는 멈칫할지 모른다. 이런 어려운 책을 청소년이 읽어낼 수 있을까? 나이 든 학부모나 교사라면 삼엄했던 옛 시절이 자기도 모르게 떠올라 ‘괜찮을까?’ 싶다가 ‘아, 지금은 그때가 아니지’, 머쓱하게 웃으며 가슴을 쓸어내릴지 모른다.

간곡한 희망 ‘자본을 빨리 이해시키자’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괜한 걱정이다. 손에 맞춤하게 잡히는 아담한 크기에 240쪽의 분량은 아주 가뿐하다. 친근하고 다정한 구어체 문장과 요즘 드라마나 개그를 끌어들인 설명은 책의 무게를 거의 느낄 새 없이 미끄러지듯 읽어나갈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읽다 보면, ‘판도라의 상자’라고 했지만 어떤 금기나 재앙의 꼬투리는 별로 찾을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병폐에 대한 진단과 문제 제기와 대안 추구가 지금 이 시대에는 그때처럼 그렇게 불온하고 위험한 도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미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문제, 일상의 화제인 사안이 한때 그렇게 무시무시한 혁명적 선언이었다는 점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지은이의 말에 따르면, 1867년 출판된 마르크스의 <자본>이 한국에서 처음 번역돼 나온 것은 1987년이다(그 번역자가 이 책의 지은이다). 우리의 삶을 강력하게 쥐고 흔드는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성찰인 이 책은 정말이지 너무 늦게 소개됐다. 그런 만큼 제대로, 널리, 빨리 이해를 시키자! 지은이의 간곡한 희망이 이 책 전편에서 읽힌다. 그는 자본주의의 기본 구조를 중세시대의 탄생 배경부터 지금 21세기까지 내달리며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다. 그 설명으로 듣는 마르크스의 기본 개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본주의 구조상 공황이 되풀이해서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대목도, 반론이 있다지만 ‘그렇구나!’ 싶다. 우리의 구제금융 시대도, 지금의 불황과 갖가지 삐걱거림도, 그리고 유럽의 아우성도 불안해할 것 없이 침착하게 짚어볼 일이라는 속 깊은 생각을 청소년 독자에게 심어줄 수 있겠다, 싶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이 책이 우리에게 이만큼 풀렸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비판이 더는 위험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는 뜻인데, 이미 이 비판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가 이 시대를 옥죄고 있다는 말이겠구나 싶어 쓸쓸해진다. 이 책이 금지된 시대에는 그래도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꽤 가능하지 않았던가.

베짱이 없는 사회가 가능할까


이 책의 말미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항할 수 있는, 그러나 현실화되기 힘든 정답의 제시다. 그것은 개미들이 단결해 베짱이를 없애고, 공평한 공동 생산과 분배를 이루고, 개인의 자유와 이상 실현을 보장하는 사회조직 갖추기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독자의 새로운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될 듯하다. 베짱이 없는 사회가 가능할까? 인간의 탐욕적 본성으로 보면 베짱이로 변하는 개미들이 끝없이 출몰하지 않을까? 마르크스를 앞세웠던 공산주의의 몰락에는 어떤 진단이 가능할까? 그런 질문과 대답에 대한 탐구가 뒤따라준다면 이 책은 더 소중해질 듯하다. 욕심을 부리자면, 궁금하기는 하지만 원본 읽기가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 어른들을 위해, 책이 더 무거워져도 좋으니 이만큼 친절하고 재미있으면서 더 자세한 <자본> 소개서가 나오면 좋겠다.

김서정 문학평론가·중앙대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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