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 주검, 똥… 14세기 유라시아의 진기한 풍속지
정수일 교수의 번역으로 읽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오도릭의 여행기
등록 : 2012-07-10 20:37 수정 : 2012-07-13 11:47
오도릭의 동방기행 오도릭 지음, 정수일 옮김, 문학동네 펴냄, 1만8천원
1318년 이탈리아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오도릭(1265?~1331)은 베네치아를 출발해 동방의 몽골제국으로 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겉옷 한 벌에 매듭지은 밧줄을 메고 맨발로 떠난 이 고행길엔, 사실 절박한 목적이 있었다.
마르코 폴로, 이븐 바투타와 겹치는 여정
당시 유럽에서는 마르코 폴로 등 적잖은 탐험가와 상인, 수도사들이 교황과 제후의 밀명을 받고 동방 실크로드로 향했다. 그들의 머릿속엔 13세기 십자군 원정 와중에 불쑥 쳐들어와서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은 노란 피부의 몽골 군단이 어른거렸다. 무엇보다 그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다. 교황이 이끄는 유럽의 기독교 세계와 동방의 먼 나라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였다. 기독교의 성지 팔레스티나를 점령한 숙적 이슬람 세력을 동방의 강국과 동맹을 맺어 협공하는 것이 당시 유럽에서는 초미의 과제였기 때문이다.
<오도릭의 동방기행>은 이런 역사적 배경 아래 12년 동안 실크로드, 바닷길을 무대로 펼쳐진 한 수도사의 인문적 탐험 기록을 담고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더불어 중세기 서양인들의 대표적인 유라시아 여행기로 꼽히는 책이다. 이탈리아로 귀환한 오도릭이 말년에 기억으로 구술해 쓴 이 기행기의 내용은 <동방견문록>과 아랍인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의 여행 경로와 견문 기록이 상당 부분 겹쳐 사료적 가치가 높다. 특히 오도릭은 이 기행기에서 중국과 동남아, 중앙·서아시아의 인문지리 경관 못지않게 곳곳의 기묘한 풍물과 풍경, 기담을 비중 있게 다룬다. 당대 서구인의 낯선 시각으로 바라본 유라시아 곳곳의 진기한 풍속지라고도 할 만하다.
끊임없이 술이 흘러나와 마음대로 퍼마실 수 있다는 몽골 대칸(황제) 궁전의 대형 술항아리, 아이들을 도살해 인육을 먹는 동남아 라모리국의 섬뜩한 식인 습관, 쇠똥을 몸에 뒤발하고 오줌으로 얼굴 씻기를 성스럽게 여기는 인도 서남해안 항구도시 폴룸붐 사람들의 극진한 소 숭배, 주검을 새에게 뜯어먹히게 해서 장사를 지내는 티베트의 조장(鳥葬) 풍습 등을 오도릭은 다소 과장이 섞인 생생한 묘사로 전해주고 있다. 원 제국의 수도 캄발레크(대도)의 장대한 위용과 당대 세계 최대의 도시로서 상업과 문화가 융성했던 칸사이(오늘날 항저우)의 그윽한 풍경, 코끼리가 끄는 수레에 침실까지 갖춰졌던 호화로운 황제의 행렬 등 당시 유라시아를 지배했던 몽골제국의 영화를 엿볼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 아기 예수를 알현한 것으로 나오는 동방박사 세 사람의 출발지를 이란 고원의 카샨이라 단언하고, 중국을 지배한 원 왕조 특유의 행정체계인 보갑제와 인도로 전도를 떠난 성 토마스의 발자취를 언급하는 등 다른 기행기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역사 인문 사료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흑사자, 비비(원숭이), 향신료의 일종인 소두구·육두구 등 각지의 희귀 동식물에 대한 기록은 이 기행기의 읽는 맛을 돋우는 양념이 된다. 오도릭은 1330년 고향인 이탈리아 프리울리로 돌아온 뒤 수사 50명을 모아 다시 동방여행을 준비하지만, 재가를 얻으려고 로마 교황을 찾아가는 길에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본문 4배에 가까운 상세한 역주
<오도릭의 동방기행>의 원본은 여러모로 세심한 번역과 주해가 필요한 책이다. 지은이가 말년 병석에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구술해 기록한 책이어서 기억상의 오류나 혼선이 적지 않고, 철저한 기독교도의 시각에서 다른 종교·문화를 재단한 부분이 많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나온 국내 번역본은 신뢰성에 점수를 줄 만하다. 번역자가 세계 문명교류사 연구의 국내 권위자인 정수일 박사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븐 바투타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의 방대한 역주서를 썼던 그는 이번에도 본문의 4배에 가까운 상세한 역주를 곁들이며 오도릭의 700년 전 여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새롭게 되살려내고 있다.
노형석 기자 한겨레 책지성팀장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