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는 출간된 지 넉 달 만에 철학서로는 이례적으로 3만 부가량이 팔렸고, 아직 꾸준한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출판사 쪽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우울증, ADHD, 경계성성격장애… 21세기 병리현상
지은이는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교수인 한국인 학자 한병철 박사다. 그는 현대사회를 누가 강요하거나 시키지도 않는데 죽도록 일하며 피곤에 찌들어가는 ‘성과사회’라고 규정한다. 즉, 과거 사회가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에 의해 이뤄진 부정의 사회였다면 현대 성과사회는 성공하라는 규율만 남아 노동자 스스로 착취하게 되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이르지 못하면 좌절감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가 만들어내는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 21세기 병리현상을 철학적으로 진단한다.
지은이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에서 철학·독일문학·가톨릭신학을 공부했고, <하이데거 입문> <죽음의 종류: 죽음에 대한 철학적 연구> <죽음과 타자성> <폭력의 위상학> 등 전문서적을 펴내 현지 학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직전작인 <권력이란 무엇인가>(2011)를 통해서는 대중적인 글쓰기를 시도해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독일에서 출간 당시 큰 화제가 되어 독일의 주요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뤘으며 단기간에 2만 부가 팔렸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서는 2010년 10월 한 교수의 철학적 업적을 조명하는 특집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독일에서의 이런 평가 덕분에 한국 출간 당시에도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았고, 철학서로는 드물게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인문학 독자들 사이에서 올해 나온 책 중 가장 눈길 끄는 책이라는 입소문이 번지고, 전문가 필자들이 각종 언론 칼럼 등에서 ‘피로사회’란 용어를 소개해 대중적 관심이 증폭됐다.
책의 반응에 대해 문학과지성사 박지현 인문팀장은 “철학서는 두껍다는 선입견을 깬 것이 무엇보다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 책은 ‘만만한’ 128쪽 문고판으로, 누구라도 부담 없이 쉽게 잡아 읽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준다. ‘피로사회’라는 하나의 단어로 문제를 정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자유주의의 쳇바퀴 속에서 헤매는 현대인들의 갑갑증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에서 비롯됨을 콕 집어 알려주는 간결함도 강점이다. 특히 문장이 기존 철학책들과는 달리 유려하게 펼쳐진다. 처음부터 잠언을 방불케 할 만큼 선언적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어도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피로사회, 성과사회 등 주요 개념어들은 지은이가 처음으로 만든 것인 점도 특장이다. 남의 개념어와 이론을 인용해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기존 철학서들과 확연히 다르다.
해결책은 ‘쓸모없음의 쓸모’ 번역자인 김태환 서울대 교수는 “이들 개념어는 독일 철학자들이 구사하는 개념어와 달리 뜻이 단순 명확하다”며 “독일어를 제2언어로 쓰는 외국인의 단순한 언어와 문장 구사가 약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보았다. 마지막 장에서 피로를 놓아버림으로써 피로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다며 제시하는 해결책은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동양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한병철 교수는 올 하반기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공과 사의 경계가 소멸해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내용으로 하는 신작 <투명사회>(가제)를 펴낼 예정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문화부 blitz@hani.co.kr
해결책은 ‘쓸모없음의 쓸모’ 번역자인 김태환 서울대 교수는 “이들 개념어는 독일 철학자들이 구사하는 개념어와 달리 뜻이 단순 명확하다”며 “독일어를 제2언어로 쓰는 외국인의 단순한 언어와 문장 구사가 약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보았다. 마지막 장에서 피로를 놓아버림으로써 피로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다며 제시하는 해결책은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동양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한병철 교수는 올 하반기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공과 사의 경계가 소멸해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내용으로 하는 신작 <투명사회>(가제)를 펴낼 예정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문화부 blitz@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