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자만과 약자의 노력이 연출한 드라마…세계를 열광시킨 경기를 살펴본다
지난 8월7일(한국시간) 제8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육상 100m 결승전이 벌어진 케나다 에드먼턴의 커먼웰스스타디움. 1위로 들어온 우크라이나의 자나 핀투세비치(29) 선수는 자신이 1위를 차지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트랙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핀투세비치는 준우승을 차지한 미국의 매리언 존스 선수가 다가와 축하를 해주자 그제야 실감이 난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이 대회가 있기 전까지 매리언 존스는 여자육상 100m에서 42연승 행진을 하고 있었다. 존스는 2000시드니올림픽 금메달은 물론 세계선수권대회도 3연패를 노리고 있었다. 핀투세비치가 존스에 가장 접근했던 것은 지난 97년 아테네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였다. 당시 두 선수가 얼마나 접전을 벌였던지 테이프를 끊은 순간 핀투세비치는 자신이 우승을 차지한 줄 알고 두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운동장을 돌았다. 사진판독 결과 핀투세비치는 존스에 0.02초 차로 패했다. 사실 육상은 스포츠 가운데 가장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종목이다. 특히 단거리의 경우 기록이 있기 때문에 무명선수가 기록이 앞서는 스타플레이어를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핀투세비치처럼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칼(?)을 간다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핀투세비치는 난공불락인 존스를 뛰어넘기 위해 스포츠의 본질인 극기(克己)를 생활화했다. 자기자신을 고통과 극한상황의 와중으로 밀어넣어 거기서 존스를 이기는 힘을 길러낸 것이다. 그리고 죽을 각오로 뛰었다. 인간이 죽음을 각오할 때 가장 강한 저력을 발휘한다. 그러니까 핀투세비치에게는 존스를 이긴 것이 이변이 아닌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스포츠에서 이변(異變)은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의 얘긴지도 모른다. 스포츠 사상 가장 큰 이변 가운데 하나는 1974년 10월30일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캔자스 혈투. 당시 복싱전문가들보다 더 정확하다는 도박사들은 10 대 1 정도로 포먼의 우세를 점쳤다. 아니 실제로 돈을 걸었다. 그러니까 알리의 승리에 돈을 거는 사람들은 10원을 내고 100원을 따는 것이고, 포먼의 승리에 건 사람들은 100원을 내고 10원을 가져가는 것이다. 알리는 7회까지 엄청 얻어맞았다. 그러나 링에 기대어 살짝살짝 비켜 맞았기 때문에 결정타는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알리는 수없이 맞으면서도 포먼의 숨소리를 체크하고 있었다. 8라운드 중반, 포먼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고 판단하는 순간 알리의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펀치가 포먼의 턱에 작렬하며 대역전승을 거뒀다. 알리는 캔자스의 무더위와 포먼의 펀치력 그리고 자신의 수비력 등을 감안, 치밀한 작전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이를 복싱인들은 이변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포기를 한 것이 승리의 원인?
골프와 야구는 스포츠에서도 이변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종목에 속한다. 두 종목의 가장 유명한 명언 가운데 하나가 “골프는 장갑을 벗어야 알 수 있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난 8월6일 제이콥스필드에서 벌어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메이저리그 경기. 6회까지 시애틀이 14-2로 앞서고 있었다. 올해의 시애틀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2위팀을 18게임 이상차로 앞서 1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잘나가는 팀이다. 경기는 99% 시애틀의 승리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7, 8, 9회 각각 4, 3, 5점씩 만회를 해서 14-14 동점을 만들더니 연장전에서 15-14로 거짓말처럼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하루에 최고 15게임씩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 76년 만에 일어난 대사건(?)이었다. 시애틀이 이겼다고 방심하는 사이에 클리블랜드는 죽기살기로 승부에 매달린 결과다. 지난 8월5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 LPGA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이 영국 버크셔의 서닝데일골프장에서 벌어졌다. 박세리는 3라운드까지 5언더파로 공동 7위에 머물렀다. 선두와는 5타차로 벌어져 사실상 우승은 물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박세리는 20등을 하나 2등을 하나 1등을 하지 못하면 마찬가지라고 판단하고 공격적인 플레이로 일관해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포기를 한 것이 막판에 이변을 낳은 것이다. 야구와 골프는 무궁무진한 수, 다양한 작전의 묘, 강약이 뒤바뀌는 의외성이 있기 때문에 이변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축구와 농구의 스코어 차는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시간이라는 벽에 부딪혀 역전이 불가능하지만 시간 제한이 없는 야구와 비록 정지되어 있는 공을 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골프는 언제 ‘쨍’하고 해가 뜰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농구는 의외성이 가장 적은 종목이다. 농구는 바스켓이 305cm 위에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키가 큰 선수들이 유리하다. 농구는 팀워크를 강조하면서도 개인기를 내세우는, 이율배반이 어지러이 뒤섞인, 그리고 시계의 초침과 더불어 격렬한 율동과 미세한 신경을 쏟아넣어야 하는 아주 힘든 종목이다. 30초(또는 24초), 10초, 5초, 3초 등 시간과의 싸움, 상대편과의 싸움, 공간과의 싸움에서 결국 선반 위에 손을 가까이 댈 수 있는 자가 웃게 되는 장신자 천국의 논리가 성립된다. 따라서 농구는 키가 큰 팀이 유리하고 같은 키라면 기량이 약간이라도 앞서는 선수가 많은 팀이 승산이 높다. 더구나 야구(9명)나 축구(11명)와는 달리 5명이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기량이 뛰어난 선수 한두명이 있는 팀이 절대 유리하다. 농구에서 이변이래야 지난 72년 뮌헨올림픽에서 소련이 미국을 결승전에서 53-52로 꺾은 것이 가장 큰 이변이다. 미국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농구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된 뒤 68년 멕시코올림픽까지 7번의 올림픽에서 내리 금메달을 따고 있었다. 미국농구는 그뒤 전열을 재정비하여 76년 몬트리올,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따다가 88서울올림픽에서 유고와 소련에 밀려 동메달에 그쳤다. 미국농구는 그뒤 대학선발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압박해 프로농구 선수도 출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뒤, 미 남자프로농구(NBA) 선수들을 출전시켜 이변이 일어날 수 있는 길을 원천봉쇄하며 금메달을 독식해오고 있다. 레바논에 패한 남자농구의 자만
그렇다면 지난 7월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진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약체 레바논에 패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레바논은 아시아농구에서 중위권에 속하는 팀이다. 99년 일본에서 벌어진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예선에서 한국이 65-75로 패한 바 있지만 그때는 준결승전에서 중국을 만나지 않기 위해 고의로 패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예선에서 97-71, 26점 차로 우리가 이겼다가 준결승전에서 72-75로 무너진 것이다.
레바논의 칼 존 뉴먼 감독은 한국과의 준결승전을 앞두고 “우리가 이긴다. 예선 성적은 참고사항을 뿐이다. 두고봐라”며 큰소리쳤다. 한국이 레바논과의 준결승전에서 패한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레바논을 얕봤다. 레바논은 파디 엘 하티브라는 걸출한 센터가 있다. 그리고 전후반 고르게 뛸 수 있는 체력이 좋은 팀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선 때 26점차로 대승한 것만을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심판들의 편파판정이었다. 레바논과 중국은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경기 종료 7초를 남겨놓고 심한 몸싸움을 했다. 중국의 골게터 하오하오이동 선수는 15cm짜리 수술가위를 들고 레바논선수를 위협했고, 중국 관중도 합세해 레바논선수에게 폭행을 가하는 아시아농구대회 사상 최악의 유혈충돌사태가 발생했다. 중국 당국은 공안원 수십명을 베이징에서 공수해와 경비를 강화하기도 했다. 레바논은 아시아농구연맹에 중국농구를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시아농구연맹은 사태의 발단이 된 중국과 레바논선수에게 각각 2경기 출전정지만을 내린 뒤 마무리짓고 말았다. 그 와중에 중국과 레바논 사이에 밀약이 오갔고, 한국과의 준결승전에서 중동 심판을 배정하는 등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한국은 자만과 편파판정 때문에 아시아농구사상 최대 이변의 희생자가 되었다.
결국 스포츠에서 이변은 종목에 상관없이 상대적으로 강한 자의 자만과 약한 자의 피나는 노력, 그리고 심판의 편파판정 등 경기 외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사진/ 골프는 이변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종목이다. 초반의 부진을 딛고 과감한 플레이로 브리티스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한 박세리.

사진/ 누구로 예상치 못한 승리. 조지 포먼이 후반전 지친 틈을 타 강펀치를 퍼부은 알리의 치밀한 작전이 주효했다.
골프와 야구는 스포츠에서도 이변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종목에 속한다. 두 종목의 가장 유명한 명언 가운데 하나가 “골프는 장갑을 벗어야 알 수 있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난 8월6일 제이콥스필드에서 벌어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메이저리그 경기. 6회까지 시애틀이 14-2로 앞서고 있었다. 올해의 시애틀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2위팀을 18게임 이상차로 앞서 1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잘나가는 팀이다. 경기는 99% 시애틀의 승리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7, 8, 9회 각각 4, 3, 5점씩 만회를 해서 14-14 동점을 만들더니 연장전에서 15-14로 거짓말처럼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하루에 최고 15게임씩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 76년 만에 일어난 대사건(?)이었다. 시애틀이 이겼다고 방심하는 사이에 클리블랜드는 죽기살기로 승부에 매달린 결과다. 지난 8월5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 LPGA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이 영국 버크셔의 서닝데일골프장에서 벌어졌다. 박세리는 3라운드까지 5언더파로 공동 7위에 머물렀다. 선두와는 5타차로 벌어져 사실상 우승은 물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박세리는 20등을 하나 2등을 하나 1등을 하지 못하면 마찬가지라고 판단하고 공격적인 플레이로 일관해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포기를 한 것이 막판에 이변을 낳은 것이다. 야구와 골프는 무궁무진한 수, 다양한 작전의 묘, 강약이 뒤바뀌는 의외성이 있기 때문에 이변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축구와 농구의 스코어 차는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시간이라는 벽에 부딪혀 역전이 불가능하지만 시간 제한이 없는 야구와 비록 정지되어 있는 공을 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골프는 언제 ‘쨍’하고 해가 뜰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농구는 의외성이 가장 적은 종목이다. 농구는 바스켓이 305cm 위에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키가 큰 선수들이 유리하다. 농구는 팀워크를 강조하면서도 개인기를 내세우는, 이율배반이 어지러이 뒤섞인, 그리고 시계의 초침과 더불어 격렬한 율동과 미세한 신경을 쏟아넣어야 하는 아주 힘든 종목이다. 30초(또는 24초), 10초, 5초, 3초 등 시간과의 싸움, 상대편과의 싸움, 공간과의 싸움에서 결국 선반 위에 손을 가까이 댈 수 있는 자가 웃게 되는 장신자 천국의 논리가 성립된다. 따라서 농구는 키가 큰 팀이 유리하고 같은 키라면 기량이 약간이라도 앞서는 선수가 많은 팀이 승산이 높다. 더구나 야구(9명)나 축구(11명)와는 달리 5명이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기량이 뛰어난 선수 한두명이 있는 팀이 절대 유리하다. 농구에서 이변이래야 지난 72년 뮌헨올림픽에서 소련이 미국을 결승전에서 53-52로 꺾은 것이 가장 큰 이변이다. 미국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농구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된 뒤 68년 멕시코올림픽까지 7번의 올림픽에서 내리 금메달을 따고 있었다. 미국농구는 그뒤 전열을 재정비하여 76년 몬트리올,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따다가 88서울올림픽에서 유고와 소련에 밀려 동메달에 그쳤다. 미국농구는 그뒤 대학선발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압박해 프로농구 선수도 출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뒤, 미 남자프로농구(NBA) 선수들을 출전시켜 이변이 일어날 수 있는 길을 원천봉쇄하며 금메달을 독식해오고 있다. 레바논에 패한 남자농구의 자만

사진/ 올림픽에서 소련에 밀려온 미국농구. 결국 IOC를 압박해 결코 이변이 일어날 수 없는 드림팀을 출전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