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리 음악카페에서의 만남… 전인권 “조상과 두 아이의 이름 걸고” 부활을 맹세하다
신화는 언제나 과거형이다. 신화는 남은 자들의 기억과 기록, 그리고 말을 통해서만 현실에서 살아 있다. 그래서 신화와 통속적인 현실이 만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80년대 우리 대중음악의 신화가 된 들국화를 만나러 미사리의 카페촌에 달려가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자정이 되면 뜨거워 지는 환호
지금처럼 무소불위였던 방송사의 권위에 코웃음치며 소극장에서 잠실운동장으로 자리를 넓혀간 그룹, 뮤지션이 공연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사람들은 실력있는 가수들의 손을 들어준다는 대중음악의 상식이 통하던 짧았던 시절을 일구어낸 그룹, 데뷔앨범을 한국 대중음악사의 최고 자리에 등극시키고, 두 번째 앨범의 온기가 채 식지 않을 무렵 신화 속으로 걸어들어간 그룹. 이들이 ‘원로가수(?)’들의 텃밭인 미사리의 음악카페에서 연주한다니…. 빼곡이 들어차도 100명을 못 채우는 카페 ‘엉클톰’ 2층에 마련된 비좁은 무대. 장비랄 것도 없이 단촐한 음향시스템. 자정이 되자 세 사람이 무대에 올랐다. 가운데에 보컬 전인권씨가 앉았고, 기타를 치던 최성원씨는 오른쪽에서 건반 자리에, 왼쪽 드럼 뒤엔 주찬권씨가 앉았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한잔했어요. 난 지금도 맨정신이 싫어요. 왜냐면∼ 나니까.” 전인권씨가 어눌한 말투로 가수보다 더 긴장한 관객에게 너스레를 떤 다음 연주가 시작됐다. <축하합니다> <사노라면> <매일 그대와> 등 히트곡들 사이로 록그룹 스틱스의, 비틀즈의 가 연주되며 40여분의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시원하게 내지르던 보컬의 화려함은 약해졌지만 빈 자리에 질그릇 같은 편안함과 여유가 들어 앉았다. 전인권씨의 에너지는 여전했고, 최성원씨의 섬세함도 녹슬지 않았다. 마지막 곡 <그것만이 내세상>이 끝나자 환호가 그치지 않았다. 들국화의 음악도 관객의 환호도 80년대 뜨거웠던 그것 그대로였다. 환호 속에는 전씨의 막역한 친구인 시인 김정환씨와 소설가 조경란씨, 후배가수 권진원씨의 것도 있었다.
이들은 이렇게 매일 자정이 되면 30분씩 4개월째 조용하게 공연을 해오고 있다. 입소문을 통해 듣고 이들의 공연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비좁은 객석은 언제나 만원이다. 마치 80년대 초반 이들이 음악을 시작할 때처럼. 한곡이라도 더 듣고 싶어하는 관객의 성화에 언제나 공연은 한시간 가까이 간다.
“세계 어디를 가도 공연을 볼 수 있는 클럽이 바글바글한데 우리는 점점 더 줄어들잖아요. 클럽공연 활성화를 위해서도 여기서 공연하는 걸 부끄러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성원씨의 대답이 스스럼없다.
공연문화의 전위부대로서의 사명감
“뮤지션은 관객과 만나는 게 생명이에요. 관객과의 소통이 사라지면 음악도 거기서 끝나는 것 아니겠어요?” 전인권씨의 말은 텔레비전 출연에 목숨 바치는 후배가수들에 대한 질타처럼 들렸다. ‘맨정신이 싫다’고 말한 연유 가운데는 80년보다 뒷걸음치는 대중음악환경의 현실에 대한 불만도 섞여 있을 듯싶다.
“솔직히 요즘 음악 재미없어요. 감동도 별로 없고. 가끔 공연을 보면 우리 관객이 너무 착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정도면 관객도 직무유기 아닌가?”
들국화는 요즘 다시 꽃을 터뜨릴 준비가 한창이다. 9월2일과 3일,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서 본격적인 활동의 포문을 여는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문의 02-525-6929). 사실 이 세 사람은 98년 재결성을 하면서 활동 재개를 알리는 공연을 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 같던 들국화 멤버들을 다시 묶은 것은 그 전해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은 건반 주자 허성욱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흥분과 설렘을 뒤로 하고 다시 잠수에 들어갔다. 전인권씨의 잦은 부재 때문에 원활한 가동이 불가능했다. 대마초 흡연 사건으로 전씨가 재구속되면서 자리를 비우자 두 멤버는 하릴없이 기타와 드럼을 만지작거리며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번 공연은 들국화에게는 절박하다. 전씨도 이번 만큼은 “조상과 두 아이를 걸고 맹세”할 만큼 마음을 다져먹었다. 많은 동료와 후배가수들이 이들의 옹골진 결의에 힘을 보탠다.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씨가 함께 무대에 서고, 권인하, 이은미, 강산에, 김장훈씨 등이 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다. 이들은 조만간 새 음반도 낼 계획이다. 정규앨범으로 세 번째다. 지금까지 일곱곡이 완성됐다. 이들이 들국화의 새로운 음악을 준비하는 동안 윤도현, 크라잉 넛 등 후배가수들은 들국화 헌정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또 내년에 50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할 예정이다. 소극장이든, 시민회관이든 상관없다. 50개의 공연장은 같은 무대와 같은 조명, 같은 레퍼토리로 준비할 생각이다. 지방에 공연문화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맨 땅에 헤딩하기’ 식의 이런 발상에는 공연문화의 전위부대로서의 사명감이 깔려 있다. 80년대 들국화로 인해 음악인들의 공연이 만개했듯 자신들의 삽질로 뚫어지는 길을 다른 가수들이 밟고 지나가며 다져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이 공연을 통해 들국화는 자신들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려 놓으려고 한다.
“요즘은 가능하면 젊고 새로운 얼굴, 방송을 통한 홍보가 가수의 성공에 절대적인 조건처럼 돼버렸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성숙하는 게 아니라 퇴물이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아요. 이런 대중음악계 현실 앞에서 시험당해보고 싶습니다. 우리 공연이 성공한다면 나이가 들수록 더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게 검증되겠지요.”(최성원)
들국화가 말하는 음악활동이란 자유를 얻기 위한 현실과의 싸움 같다. 공연문화를 거세하는 시스템을 깨부수기 위해 방송을 거부하면서 80년대 활동시기 내내 라이브공연 투쟁을 벌여왔고, 이번에는 다른 어떤 장르와 달리 대중음악 시장에서만 존재하는 조기 정년퇴직제를 철폐하기 위한 싸움이다. 몇년 전 90년대 최고의 가수라는 서태지가 초콜릿 광고에서 “자유가 뭐, 별건가요?”라고 말했을 때 전인권씨는 분노했다고 한다.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자유의 소중함은 싸워본 자만이 안다.
그들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사진/드럼의 주찬권(왼쪽)과 건반의 최성원씨.)길지 않은 인터뷰였다. 인터뷰 내내 전인권씨는 어눌하면서 장난기 있고 때로는 지나칠 만큼 솔직한 이야기들을 해주었고, 최성원씨는 노트 정리를 하듯 논리정연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주찬권씨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로는 눈을 반짝였고 때로는 같이 웃어주었다. 이들의 이런 모습은 들국화의 음악의 원동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분방하고 정제되지 않은 전인권씨의 보컬과 최씨의 정갈하고 고전적인 음악이 만나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고 주찬권씨의 묵묵한 뒷받침이 그 조화를 완성시키는 것이리라. 이 조화에 의해 들국화는 지금까지 굴러왔고 앞으로고 굴러갈 것이다. 그리고 그 조화는 시간과 함께 곰삭아서 오래된 술처럼 관객에게 오래된 음악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 같다.
글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지금처럼 무소불위였던 방송사의 권위에 코웃음치며 소극장에서 잠실운동장으로 자리를 넓혀간 그룹, 뮤지션이 공연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사람들은 실력있는 가수들의 손을 들어준다는 대중음악의 상식이 통하던 짧았던 시절을 일구어낸 그룹, 데뷔앨범을 한국 대중음악사의 최고 자리에 등극시키고, 두 번째 앨범의 온기가 채 식지 않을 무렵 신화 속으로 걸어들어간 그룹. 이들이 ‘원로가수(?)’들의 텃밭인 미사리의 음악카페에서 연주한다니…. 빼곡이 들어차도 100명을 못 채우는 카페 ‘엉클톰’ 2층에 마련된 비좁은 무대. 장비랄 것도 없이 단촐한 음향시스템. 자정이 되자 세 사람이 무대에 올랐다. 가운데에 보컬 전인권씨가 앉았고, 기타를 치던 최성원씨는 오른쪽에서 건반 자리에, 왼쪽 드럼 뒤엔 주찬권씨가 앉았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한잔했어요. 난 지금도 맨정신이 싫어요. 왜냐면∼ 나니까.” 전인권씨가 어눌한 말투로 가수보다 더 긴장한 관객에게 너스레를 떤 다음 연주가 시작됐다. <축하합니다> <사노라면> <매일 그대와> 등 히트곡들 사이로 록그룹 스틱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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