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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국영화는 ‘신나는 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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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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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세편이나 200만 관객 돌파… 상업영화 미래 밝지만 작가주의영화는 들쭉날쭉

사진/ <신라의 달밤>에 이어 <엽기적인 그냐>가 개봉 일주일 만에 전국 400만명을 돌파했다.(임종진 기자)
한국영화 관객이 늘고 있다는 얘기는 2∼3년 전부터 나왔지만, 올해는 그 추세가 더욱 뚜렷하다. 지난해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38%에 이르렀지만 최고 성수기인 여름 시즌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들에 안방을 내줘야 했다. 그런데 <진주만>부터 시작해 <파이널 환타지> <쥬라기 공원3> 등 제작비 1억달러가 넘는 할리우드 흥행대작들이 유달리 많이 쏟아져나온 올 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관객이 많이 든 영화는 놀랍게도 한국영화 <신라의 달밤>이다.

, <엽기적인 그녀>에 눌리다

지난 8월8일까지 전국관객 400만명, 서울관객 130만명을 동원했는데 이런 수치는 <친구>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에 이어 한국영화 사상 4번째다. 한국영화들은 군침만 흘려야 했던 여름 시즌에 이런 기록을 세운 것이다. 또 놀라운 건 지난 7월28일 개봉한 <엽기적인 그녀>가 를 제치고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올 여름 흥행 1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엽기…>는 개봉 6일 만에 전국관객 100만명을 동원해, <친구>와 함께 최단기 100만명 돌파 기록을 나눠 가졌다. <친구>는 개봉관 수가 많아 좌석이 2만4천석이었음에 반해, <엽기…>는 1만6천석에 불과한데도 동률을 기록했다. 11일까지 전국 230만명, 서울 82만명으로, 이런 속도라면 <신라의 달밤>을 넘어서든가 그렇지 못하더라도 올 여름 흥행 2위는 확실해 보인다.


99년 여름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유령>이 서울관객 40만∼60만명을 동원하며 선전했을 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재정비하고 있는 공백기라는 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전까지 재난영화로 매진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새로운 소재를 찾아나서고 있던 때였고, 그런 모색이 끝나 완성품들이 쏟아지는 2000년이나 2001년에는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실제로 올 여름은 그렇게 3∼5년씩 준비해온 대작들이 대거 밀려왔다. 그러나 한국영화가 굳건하게 버티고서 흥행 1위와 2위 자리를 모두 차지한다는 건 실로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전국관객이 200만명을 넘는다는 건 말이 쉽지 어지간히 힘든 일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국관객 집계가 공신력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꼽기는 힘들지만 한국영화 사상 지금까지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 <편지> <약속> <주유소 습격사건> <서편제> 등 10편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올해 들어 <친구> <신라의 달밤> <엽기…> 등 세편이 이 선을 넘었다. 올 하반기에는 <무사>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봄날은 간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 제작비 50억원을 훨씬 웃도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의 개봉이 줄지어 예정돼 있어 올해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은 45%선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자신감에 힘입어 영화계에서는 앞으로 4∼5년 동안은 점유율 40% 안팎을 유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인들의 1년 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늘고, 영화 소비 패턴도 지방으로 분산되면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점도 청신호다. 지난 99년 한국의 전체 영화 관람 인원은 5500만명에서 2000년 6200만명으로 12% 늘었다. 이에 따라 인구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는 1.2회에서 1.3회가 됐다. 올 상반기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보다 전체 관람 인원이 한국영화는 90%, 외화까지 합쳐 30%가 증가했다. 하반기에 주춤할 것으로 보고 올해 전체관람인원 증가율을 최소 15%로 잡아도 7100만명이 넘고, 연평균 관람 횟수는 1.5회를 상회하게 된다.

국민 모두가 1년에 2회씩 극장을 찾는다면…

미국 인구의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5.2회, 프랑스가 3회, 영국 2.4회인 것에 비하면 아직 미미하지만 1회 안팎인 일본은 이미 앞지른 상태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정책실장은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2회 정도면 선진국 평균에 이르는데, 거기까지는 빠르게 갈 것으로 본다”면서 “앞으로 4∼5년쯤 뒤면 그 수준에 이르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국민 모두가 1년에 2회씩 극장을 찾는다면 국내 영화시장이 1억명이 되고, 그렇다면 영상산업에 대한 투자가 꾸준히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김 실장은 “구제금융 때도 영화 관람 인구는 줄지 않고 꾸준히 증가했다”면서 “영화는 경제상황과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소비되는 문화상품이라는 사실이 한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 집중돼 있던 영화소비가 전국으로 분산되는 현상은 더욱 뚜렷하다. 99년에 비해 2000년에 부산관객이 22%, 인천 71%, 경남 30%가 증가했다. 또 서울로 와서 영화를 보던 관객이 주변으로 이동하면서 경기가 34%나 늘었다. 반면 서울은 거의 정체 수준이다. 지난해 서울인구 1명당 연평균 관람 횟수가 2.5회인데 부산이 1.9회, 인천이 1.5회, 대구 1.4회, 광주 1.7회 등으로 바짝 따라붙고 있다. 서울 주변 소도시와 광역시에 극장이 늘면서 그곳에서 영화가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관람 행위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말로, 곧 영화소비패턴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CJ엔터테인먼트, 동양그룹이 앞다퉈 지방에 극장을 짓고 있고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대표도 수도권과 지방에 극장을 늘려 짓고 있다. 또 극장들이 주말 이벤트와 심야상영 등으로 경제활동인구를 영화관으로 끌어오기 위한 적극적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영화소비패턴을 더 안정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전체 시장이 커지고, 소비가 일상화되는 것에 발맞춰가며 한국영화도 관객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프랑스는 올 상반기에 60%에까지 이르렀고, 타이나 남미국가들도 자국영화 소비의 급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가 모두 영상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서 할리우드 못지않게자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서 한국이 선두 대열에 나서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상업영화말고 작가주의영화, 독립영화 등 영화의 다양화가 같은 속도로 이뤄지지는 못하고 있다. 감독 못지않게 제작 역량이 중요한 상업영화는 국내 제작사들이 안정적 시스템을 확보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만큼, 지속적 발전이 예상되지만 감독의 색채가 뚜렷한 작가주의영화의 경우는 해마다 들쭉날쭉한 양상을 벗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칸영화제에는 한국영화들이 몰려갔지만, 올해는 장편이 한편도 가질 못했다. 김혜준 실장은 “상업영화 중심의 양적 증가?? 못지않게 영화의 다양화에도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임범 기자/ 한겨레 문화부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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