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불모지’ 대구에서 인터넷 민중언론 <뉴스민>을 창간한 천용길(왼쪽)·이상원씨가 5월10일 모교인 경북대 교정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뉴스민 제공
뜸을 들이는 사이 용길씨가 말을 이어받았다. “‘시민’은 너무 정체가 모호하고, 막연히 ‘진보언론’이라 이름 붙이자니 맥이 좀 빠지는 느낌이고. 고민을 거듭하다 우리 매체가 누구의 열정과 이해를 대변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게 민중이었어요. 엄연히 이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어떤 공적 영역에서도 자신의 몫을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언론을 만들자.” 대구 지역 각계 인사 100명 발기인 참여 이들이 처음 매체 창간을 생각한 것은 3년6개월 전이다. 시작은 단순했다. 교지 편집장 임기를 마친 상원씨에게 선배인 용길씨가 제안했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대안 매체를 만들어보자.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지켜야 할 이곳 대구에서. 10년 뒤가 됐든 20년 뒤가 됐든, 꼭.” 약속은 했지만 구상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 두 사람 다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다. 우선 군대부터 다녀와야 했다. 지난해 가을, 제대한 두 청년이 다시 만났다. 용길씨가 물었다. “니, 아직 그대로가?” “변했으면 내가 사내가?” “그럼, 지금 칵 저질러뿔자.” “와?” “더 끌면 이리저리 재는 거밖에 더 하겠나?” “그럴까? 좋다.” 문제는 실무 지식이 일천하다는 점이었다. 우선 기성 언론사에서 일정 기간 경험을 쌓기로 했다. 용길씨가 선택한 건 진보 인터넷 매체 <참세상>이었다. 수습사원으로 입사해 6개월간 기자 생활을 했다. 상원씨는 대학 은사의 소개로 <한겨레> 인턴 과정을 밟았다. 교지 편집 경험이 전부인 두 사람으로선 큰 행운이었다. 6개월 남짓 현장을 포복하며, 취재와 기사 작성 요령을 익혔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한층 깊고 정교해졌다. 해가 바뀐 뒤 본격적인 창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대구 지역 시민사회와 노동계, 학계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구했다. 2개월여 만에 100명의 발기인이 모였다. 진보적 지역 매체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었다.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편집위원장을, 노태맹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가 대표직을 수락했다. 10명의 편집위원진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진보적 교수와 노동운동가, 전교조 교사, 환경단체 활동가 등을 위촉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작은 사무공간을 무상으로 내놓았다. 4월1일부터 시험판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엔 ‘대학에서 교지 하던 애들이 얼마나 제대로 만들겠느냐’며 거리감을 두던 분들이 시험판을 본 뒤 태도가 달라졌어요. 특히 노동현장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그동안 어떤 매체도 그분들 얘기를 진지하게 다뤄주지 않았으니까요.”(이상원) <뉴스민>의 차별성은 그동안 보도한 뉴스들의 목록에서도 확인된다. 4대강(금호강 구간)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항의농성, 학교 도서관 비정규직 사서 정리해고 반대투쟁, 학교급식 노동자 파업 현장중계 등 지역 방송과 신문이 소홀히 다뤄온 지역의 노동 현안을 집요하게 추적 보도했다. 용길씨는 “그동안 목소리를 낼 통로를 갖지 못했던 현장 노동자들이 이제 현안이 생기면 <뉴스민>부터 찾는다”며 “그분들 기대를 깨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지 않다”고 했다. 요즘 두 사람의 고민은 <뉴스민>의 기사 형식을 어떻게 다양화할 것인지에 맞춰져 있다. 노동 현안을 다루더라도 단순한 팩트만 전달해선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중요한 건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생동감 있게 풀어내느냐더군요. <한겨레21>의 표지나 특집 기사는 그런 점에서 좋은 교과서가 됩니다.”(이상원) “재정 안정 확보해 최대한 오래 버틸 것” 신생 인터넷 매체인 만큼 발행 비용 대부분은 독자들의 후원금에서 충당한다. 한 달에 150만원 정도가 들어온다. 두 사람의 취재·교통비를 감당하기도 빠듯한 수준이다. 용길씨는 “기왕 시작한 만큼 재정 안정성을 확보해 최대한 오래 버텨볼 생각”이라고 했다. “망해도 잘 망해야 뒷사람들이 ‘대구에서도 민중언론 해볼 만하다’며 뛰어들 용기라도 생기지 않겠어요?” 시간은 어느덧 밤 10시를 넘겼다. 가난한 기자는 탕수육과 짬뽕 국물에 몇 잔의 ‘소폭’을 말아주는 것으로 청년들의 무운을 기원했다. 국물의 짠맛 뒤로 목구멍을 타고 넘는 탄산의 청량감이 상쾌했다.(뉴스민 기금계좌 : 대구은행 508-10-423433-9 예금주 천용길) 대구=이세영 기자 noma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