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하다
질문이 없는 토크쇼 <힐링캠프>거울 앞 예쁜 표정 짓기로 상처는 치유될 수 있는가
등록 : 2012-05-15 13:52 수정 : 2012-05-18 13:56
SBS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게스트 맞춤형’프로그램이다. 방송이 공들여 남기는 것은 토크도, 한 인물의 삶의 궤적도 아닌, 이미지일 것이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이효리·차인표(왼쪽부터).
이효리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자신이 변하게 된 계기로 정신과 상담을 이야기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을 반성하며 “효리야 미안해”라고 말하는 순간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힐링캠프>는 바로 이 상담의 과정과 닮은 토크쇼다. 게스트는 힐링 포인트라는 주제 아래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힐링캠프>의 치유법은 그 이야기를 끌어내고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다.
‘이루리라 다 바라는 대로’ 자막과 함께한 박근혜
<힐링캠프>는 과포화된 토크쇼 시장에서 과거 문화방송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가 맡았던 역할을 이어받으며 자리를 잡았다. 최근 SBS
로 화제의 중심에 선 박진영도 <힐링캠프>에서 가수로서의 컴백을 앞둔 심경을 들려주었고, 패티김은 은퇴 심경을 밝히고 오랜 가수 생활을 정리하려고 이 자리를 찾았다. 이미 녹화를 마치고 5월14일 출연이 예정된 양현석은 방송에서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다. 박근혜·문재인 같은 정치인에서부터 사건·사고를 겪었거나 오랜 공백 뒤 컴백하는 스타들,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지 않는 연예인이나 명사들까지 <힐링캠프>를 선택했다. ‘무릎팍 도사’보다 독하지 않으면서 오직 게스트 본인에게만 집중해주고, 부담스러운 질문은 던지지 않는 토크쇼이기 때문이다. <힐링캠프>에서 치유받는 대상은 게스트다. 이를 위해 <힐링캠프> 진행자나 제작진들은 ‘게스트 맞춤형’의 배경과 조건을 만들어준다. 자신에게 가장 편한 장소에서, 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신년 특집으로 연속 방영된 박근혜·문재인 편은 이런 특징이 한층 더 두드러진 방송이었다.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이던 시절 시위로 구속됐던 문재인이 박근혜에 이어 출연했다는 사실이 묘하지만, 실제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정치적 지향점이나 색깔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이 <힐링캠프>에 출연한 뒤 시청자의 기억에 남은 것은 첫사랑의 대상을 ‘본받고 싶은 사람, 선망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박근혜의 조심스러움이나, 특전사 시절의 경험을 강조하고 격파 시범을 보인 문재인의 단단함이다. 결국 <힐링캠프>가 남기는 것은 토크도, 한 인물의 삶의 궤적도 아닌, 이미지일 것이다. <힐링캠프>의 주인공들은 어떤 걸림돌도 없이 예쁜 배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홍보할 수 있다. 박근혜는 ‘맨주먹 정신 다시 또 시작하면 나 이루리라 다 나 바라는 대로’라는 자막이 친절하게 달리는 상황에서 거북이의 <빙고>를 불렀다. 연예인들도 그렇지만 정치인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허락되는 것은 예능적 재미에 앞서 위험한 일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방식의 자기 고백이 힐링이라는 목적 아래 ‘진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나 행동이 진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는 진정성은, 누구도 증명할 수 없기에 오히려 남발되고 있는 가치다. 자신의 입장에서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곧바로 진심이나 진정성으로 치환될 수는 없다. 실제 의료 행위로서의 상담이 마음과 정신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그 상담이 내가 아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나도 몰랐던 자아,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는 결코 보여줄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까지 마주 보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 <힐링캠프>의 게스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자기 안에서 이미 충분히 걸러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자기 연민일 가능성이 높다. 진행자가 끊임없이 개입하고 긴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타자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들었던 ‘무릎팍 도사’와 달리, <힐링캠프>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거울이다. 그 앞에서 그들은 가장 멋지고 예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좋은 ‘지금 이 순간’
그래서 <힐링캠프>에는 질문이 없다. 이경규·김제동·한혜진 세 진행자는 게스트의 말을 들어주고, 그다음 주제로 넘어갈 수 있는 다리가 돼줄 뿐이다. <힐링캠프>가 종종 강연의 형식을 띠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남자의 물건>의 저자 김정운 교수가 출연한 편이나, 기부와 봉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강력히 펼친 차인표 편,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행복론을 화이트보드에 표까지 그려가며 설명한 박진영 편 모두 일종의 특강과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앞에서 강연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보통 그러하듯, 이들은 이미 인생의 고비나 힘든 순간을 이미 넘어온 인생의 선구자로 거기에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회고록과 같고, 그들에게 가장 좋은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이다. 물론 그 편안함과 부담 없음이 <힐링캠프>가 시청자보다 게스트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힐링캠프>가 주고받는 대화로서의 토크쇼로 기능하고 있는지, 곱게 단장된 이미지와 만들어진 표정을 보는 일이 게스트가 아닌 시청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치유의 과정에 함께하니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묻는다면, “기쁘지는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힐링캠프>의 치유는 말하는 이의 몫일 뿐, 듣고 보는 이와는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이나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