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일 기자
황 동감한다. 영화 소개에 ‘여고생과의 로맨스’가 나오고, 예고편은 더 자극적으로 찍혔다. 선정성을 우려하거나 기대한 관객도 많을 텐데, 영화는 살짝 시치미를 떼며 따돌린다. 노시인은 상상했을 뿐이고 예술로 승화시켰는데, 펄펄 뛰는 서지우의 ‘오버질’을 보여주며, 영화가 관객에게 “뭘 상상했는데?”라고 오히려 반문하는 듯하다. 영리한 각색인데, 서지우의 캐릭터가 축소되고 거칠게 그려진 건 불만이다. 그냥 찌질한 놈 아닌가. 정 그렇지 않다. 성격의 다면성이 줄어든 건 맞지만, 그에게서 순진한 소년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인간적으로 연민하거나 감정이입하는 사람도 많다. 황 교통사고 장면이 인상적이다. 멀리서 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길게 찍은 이유가 뭔가. 정 거짓된 삶에 대한 응징이랄까, 자업자득이랄까. 벌을 받는 마지막 순간의 얼굴을 생략하거나 압축하지 않고 끝까지 리얼타임으로 드러내는 게 도덕적 균형감이라 생각했다. 황 원작에선 두 남자의 눈에 비친 대상이던 은교가 영화에선 생생히 살아난다. 그 결과 원작에선 필요 없던 은교의 의도가 영화에선 중요해진다. 서지우와의 정사 동기로 “내가 그렇게 예쁜 아이인 줄 몰랐다”는 말, “외로워서”란 말이 나오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지 않나. 정 여고생의 위태로운 성장담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청춘의 혼란을 느끼는 시기고, 은교는 자기를 인식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경험하며 성장한 것이다. 마지막의 각성 장면도 그런 의미고. 젊은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성장하지만, 늙은이는 둘 다 죽지 않나. 그러니 청춘이 값진 것이지. 황 은교 역할의 김고은은 요즘 유행하는 얼굴이 아니다. <해피엔드> 이전에 전도연은 섹시한 이미지가 없었다. <사랑니>의 정유미도 배우 할 인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셋 다 언뜻 보면 평범한데 자세히 보면 예쁘다는 공통점이 있다. 감독의 혜안인가, 아님 취향인가. 정 너무 예쁜 얼굴은 배우로서 표현의 폭이 적다. 김고은은 평범한 느낌이지만, 어떤 감정이 들 때 대단히 직접적인 표정과 눈빛이 나온다. 황 <은교> <해피엔드> <사랑니> 전부 치정과 질투가 난무하지만, 당사자들의 처지에서 이해할 수 있게 그렸다. 통속적 욕망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이랄까. 정 ‘내재적 접근법’이란 표현이 재밌다. 그런 욕망이 다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황 1968년생인데, 늙음에 대해 진짜 공감하는 것 같다. 계기가 있는가. 정 노안이 왔다. 글자를 보려고 손을 멀리하거나,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는 나에게서 노인의 몸짓을 발견하고 당황했다. 영화감독에게 안 보인다는 건 큰 공포다. 늙는다는 건 진짜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다. 글 황진미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