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대학생 시절의 남녀 주인공이 CD 플레이어의 이어폰으로 노래를 나눠 듣는 장면. 명필름 제공
서로가 첫사랑으로 기억되길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를 여성으로 인정해준 첫 남자’를 떠올리다…
여성에서 첫사랑은 여러 사랑의 갈래일 뿐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서 나의 첫사랑인 그가 생각났다. 그는 ‘나를 여성으로 인정해준 첫 남자’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작 나는 ‘복기’할 것이 별로 없다. 그와 처음 만나던 날의 설렘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를 만난 건 1994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신입생인 나의 당시 관심사는 온통 ‘연애’였다. 남친과의 데이트를 자랑하는 친구들의 꼬락서니를 보며, “어디 두고 보자”고 오기를 불태우던 시기였다. 연애를 갈망했지만 여자대학교의 현실은 가혹했다. 남자친구는커녕 남자를 만날 기회 자체가 없었다. 미팅은 ‘예쁜 것’들의 전유물이었다. 내겐 ‘땜빵’ 아니면 ‘폭탄처리반’ 역할만 주어졌다. 가끔 내가 ‘폭탄’이 된 적도 있다. 참 행복했다는 느낌을 기억해 평범한 외모를 한탄하며 술에 찌든 나날을 보내던 즈음, 그를 만났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향우회가 다른 학교 동문회와 ‘조인트 동문회’를 연 날이다. 기대 없이 민낯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나갔는데, 175cm의 키에 마른 체구, 쌍꺼풀 진 큰 눈과 도톰한 입술, 긴 곱슬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그가 내 눈에 들어왔다. 바람기는 있어 보였지만, 잘생겼고 친절했다. 무엇보다 나와 달리 자신감 넘치는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감히 용기를 냈다. ‘까짓것 꾀어보자’고 말이다. 용기 내어 야릇한 시선을 그에게 보냈다. 오호~ 이런. 어느 순간부터 그도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2차 술자리에서 아예 내 옆자리로 왔다. 대학 생활, 학점, 가족, 연애, 친구, 짝사랑 경험…. 이야깃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우리 집 근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수다를 이어갔다. 그때 그가 말했다. “난 네가 참 마음에 든다.” “(이때 정말 흠칫 놀랐다) 네?” “네가 좋다고. 밝고 솔직한 네가 좋아. 원래 나는 작고 마른 스타일을 좋아한다. 넌 그렇지 않은데, 점점 너한테 끌린다.” 외모가 내 스타일인 그와, 외모가 그의 스타일은 아니라던 나의 대화는 빠르게 무르익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연인이 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첫사랑이 된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내가 대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다른 연인들이 그렇듯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놀이공원에 놀러가고, 가끔은 술도 마시며 알콩달콩 사랑을 쌓아갔다. 참 행복했다는 느낌은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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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다룬 영화에서는 비가 내려야 한다. 영화 <클래식>에서 남자는 일부러 우산을 두고 여자와 옷을 뒤집어쓴다. <한겨레> 자료
기자 K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첫사랑 “비 온다.”
“응, 비 오네.”
“아직 차네.”
“응, 아직 춥다.” 열아홉 살 여자가 말하고 스무 살 남자가 답했다. 1996년 3월 초의 바람은 찼다. 발밑의 솔잎이 물을 머금어 부드럽게 밟히는 느낌이 운동화로 전해졌다. ‘서울은 추운 곳이구나.’ 남쪽에서 올라온 스무 살 남자가 생각했다. 대학교의 정문과, 정문에서 단과대학으로 오르는 언덕길과, 그 길 너머로 난 별관이 그는 아직 낯설다. 5분 전까지 여자와 남자는 강의실에 있었다. 교수들이 학과 커리큘럼에 대해 설명하는 공식 오리엔테이션이었다. 당연히, 신입생 참석자는 예닐곱 명에 그쳤다. 하품을 하던 열아홉 살 여자와 졸던 스무 살 남자가 조용히 강의실을 빠져나온 오후 1시에도, 아직 비가 내렸다. 그녀에게 차인 뒤 깨달은 것들 “우산 없지? 같이 쓰자.”
“어, 우산 없어. 고마워.” 자신보다 15cm쯤 작은 여자를 대신해 남자가 우산을 들었다. 우산 손잡이를 건네받으며 남자는 애교머리를 한 여자의 옆얼굴을 훔쳐봤다. 스무 살 남자에게 낯선 게 또 있었다. 재수학원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와 대화하기’ 같은 과목은 가르치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며 남자는 여자의 말을 이병처럼 복명복창하고 있었다. 두두둑 두둑 두두두둑∼. 정문까지 걸어가는 15분 내내 빗방울 소리가 났다. 96학번 동기인 여자와 남자는 흔한 통성명을 했다. 둘 다 고교 시절 ‘미친개’로 불리는 선생님이 있었음을 우연히 발견했다. 1995년에 나온 ‘패닉’의 노래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남자는 비 오면 꼬불거리는 자신의 가운데 가르마를 탄 머리카락이 신경 쓰였다. 열아홉 살 여자의 웃음소리는 허스키했다. “난 정문 오른쪽에서 버스 타고 집에 가. 넌?”
“난 왼쪽으로 걸어가면 하숙집.”
“어머, 비 오는데 춥겠다, 지퍼 채워야지.” 우산 안으로 갑자기 여자가 깊이 들어왔다. 남자는 베이지색 면바지에 흰색 테니스화를 신고 곤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남자는 지퍼가 열린 줄 몰랐다. 여자의 애교머리가 남자의 턱밑에 살짝 닿았다. 여자는 왼손으로 점퍼 끝을 잡고, 오른손으로 지퍼를 가슴까지 올려줬다. 지퍼를 올린 다음 흡족하다는 듯 남자의 가슴팍을 살짝 두 번 쳤다. “이래야 안 춥지. 갈게. 과방에서 보자.” 남자는 왼쪽으로 갔고, 여자는 오른쪽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남자는 여자가 버스를 탔는지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수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빨리 걸었다. 지퍼에 여자의 온기가 남아 있다고 느꼈다. ‘내가 마음에 든 건가.’ 그렇게 남자는 착각했다. 그다음은 흔한 이야기다. 착각은 어리바리 스무 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생뚱맞게 들이댔지만 운 좋게 여자가 받아줬다. 둘은 사귀었다.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 같은 노래를 같이 듣고 춘천 닭갈비 따위를 먹으러 다녔다. 여자가 주위 사람의 터진 옷 솔기나 열린 지퍼를 보고 지나치지 못하며 남자와 어깨동무 정도의 스킨십은 자연스럽게 나누는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1년 뒤 여자에게 차일 때쯤 남자는 깨달았다. 지퍼 올려주기는 사람에 따라 적당한 사회적 스킨십일 수 있음을 되새겼다. 그날 자신의 옷차림 색깔 맞춤이 엉터리였음도 여자에게 차인 뒤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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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 남긴 흔적들 첫사랑에게 띄우는 X기자의 연서…
현실 속으로 널 납치할 순 없지만 너와의 시간은 내 삶의 가장 햇빛 비추는 날들이었어 H에게 오랜만이야. 아직 나를 기억할까? 가끔 네 소식을 들었어. 이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너의 행복한 한때를 미니홈피에서 훔쳐본 것도 벌써 몇 년 전인 듯. 잘 지내지? 남편은 잘해주고? 난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유치원 다니는 다섯 살짜리 아들 녀석, 아내와 정신없이 살고 있지.
죽을 병에 걸린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반복된다. 일본 영화 <내 첫사랑을 너에게 바친다>의 한 장면. 영화공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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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술이 닿았어야 했을까. 창작 뮤지컬 <첫사랑>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
어떻게 사귀었는지,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네 첫사랑의 기준이 뭐냐고 했다. 시간순으로 가장 앞에 있는 것이 첫사랑인가. 제대로 된 사랑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데, 준비체조도 없이 시작한 첫 번째 사랑은 심장마비지 첫사랑은 아니지 않은가. 마음이 아파야 첫사랑인가. 첫사랑은 다 아파야 하나. 웃기면 안 되는가. 지금도 생생하면 첫사랑인가. 기억력이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술 마실 때마다 생각나야 첫사랑인가. 열받아서 생각나는데도? 이런저런 기준을 다 맞출 수는 없다. 첫사랑, 1990년대 그 어느 해쯤 대학에서 만난 그 애를 첫사랑 정도로 해두자. 그녀를 바래다주고 밤을 새우다 같은 과였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은 약간 할머니상이었다. ‘소녀시대’ 윤아도 따지고 보면 할머니상이다. 그 애도 예뻤다는 얘기다. 키도 컸다. 늘씬했다. 스타일이 좋았는지는 애매하지만 과감하기는 했다. 햇볕이 따가운 어느 날, 리넨 리본이 달린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왔다.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경마장 장면에서 썼던 그런 모자였다. 어떨 때는 등이 확 파인 옷을 입고 오기도 했다(등판에 여드름 몇 개가 있었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입학하자마자 선배·동기들의 관심을 세게 받았다. 다른 과 선배들도 그 애를 보면 “우와우와” 거렸다. 동기 녀석 하나가 그 애한테 꽂혔다. 사실 나는 그 애한테 별 관심 없었다. 다른 애가 더 좋았다(물론 예뻤다. 한 번 들이댔는데 통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어찌어찌하다 보니 예쁜 할머니상의 애와 나는 자꾸 같이 다니고 있었다. 저녁에 끝나는 수업에 맞춰 그 아이가 나오는 교정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물론 연출이 필요했다. 가로등 밑에서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잔디밭을 걸었다(생각해보니 별짓 다 했다). “뭐하고 있니?” 수업을 마친 그 애가 물었고, 나는 뭐라 했는지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는 이상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 아이의 집은 학교에서 멀었다. 언젠가 함께 술을 마시고 좌석버스를 타고 그 애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돌아오는 버스가 끊겼다. 지하철도 끊겼다. 술 마시느라 택시비는 어림도 없었다. “집에 잘 갈 수 있겠어?” 그 애가 물었다. “물론이지”라고 뻥을 쳤던가? “어떻게든 날밤을 까겠다”고 했던가? 그 아이가 집에서 돈을 가지고 나오겠다고 했는데 내가 말렸던가? 가물가물하지만 나는 지하철역 근처 편의점으로 가야 했다. 양이 가장 많은 죠리퐁을 샀다. 편의점에 양해를 구하고 판매용 책 하나와 죠리퐁을 들고 컵라면용 테이블 앞에 섰다. 죠리퐁을 하나씩 골라 먹으며 밤을 새웠고, 지하철 첫차를 탔다(이게 무슨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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