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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생물의 신비 ‘공학적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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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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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술 접목해 첨단기술로 거듭나… 의학·군사 등에서 탁월한 효과 발휘

사진/ 자연이 신기술의 원천으로 거듭나고 있다. 인공피부의 재료로 주목받는 홍합.
화상 환자는 이식수술을 받는다 해도 다른 부위의 살을 떼어내기에 어딘가에 흉터가 남는다. 때로는 감염증에 시달리기 일쑤다. 하지만 머지않아 화상이나 당뇨병 등으로 인한 피부궤양 환자들이 손쉽게 ‘인공피부’(artificial skin)를 이식받을 것으로 보인다. 환자 자신의 살점을 떼어내 표피를 배양하거나 가축의 조직으로 살가죽의 안쪽인 진피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최근 주목받는 인공피부의 재료는 바다에 널리 깔려 있는 홍합이기 때문이다. 홍합이 만들어내는 ‘교원질 섬유조직’을 이용해 인공피부를 만드는 것이다. 이 조직은 사람의 힘줄보다 5배나 질기고 16배나 잘 늘어난다. 홍합이 바위나 부두, 유정시설 등에 흔들림 없이 달라붙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은 교원질 섬유조직에서 비롯된다. 이런 구실을 하는 홍합의 조직은 수술 뒤 상처 부위를 붙이는 접착제 구실을 하며 신축성 있는 피부조직을 만드는데도 효과적이다.

바다 생물들 의약품의 원천으로 떠올라

사진/ 인공피부의 재료로 주목받는 무쇠껍질을 잘아하는 전복.
바다 생물의 신비한 능력은 의학분야에서 획기적인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수억년의 전화과정을 거치면서 열악한 조건을 견뎌온 생물들이 수두룩한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미생물이라 할지라도 놀라운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다. 생물이 물 속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바다 생물은 독특한 방어기제를 작동하면서 침입자들을 막아내며 생존 기술을 진화시켰다. 작은 세포 안에 생명활동에 필요한 모든 물질을 간직하고 있는 미세 해조류는 인간의 건강 필수요소를 공급할 전망이다. 이미 교각의 말뚝 등지에서 얻은 이끼류는 피부암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암으로 통하는 흑색종 치료제로 거듭날 태세이며 원뿔달팽이의 독은 간질병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조류에서 발견한 ‘하리마이드’라는 곰팡이 화학물질은 약물 내성이 있는 암세포를 없애기도 한다.


이렇듯 바다 생물은 새로운 의약품의 산실로서 ‘의학적 재탄생’을 앞두고 있다. 강한 생존력을 유지하는 생체 특성을 밝혀내 인간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바다 생물의 의학적 효과는 여전히 가능성에 머물고 있다. 바다 생물에 대한 연구는 육상에서보다 훨씬 어려운 탓이다. 아무리 고성능 장치로 바닷속을 들여다본다 해도 심해의 미생물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천연물화학의 역사가 짧아 아직 생물공학이 제대로 접목되지도 못했다. 신물질을 찾아내도 배양방법을 터득해야만 의학적으로 효용성을 인정받는다. 그런 까닭에 지금은 해양 생물을 단순 가공해 이용하는 수준이다. 바다 생물의 생리적 특성을 이용한 제품이 치료약으로서 약국의 진열대에 놓이기보다는 건강식품으로 쇼핑채널 화면에 머무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요즘 자연계의 생물들은 단순 이용 대상에서 생물공학적으로 거듭나고 있다. 생물체의 자연적 능력에 인간의 기술을 적용하는 ‘바이오하이브리드’(biohybrids) 단계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생물체는 더욱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인간은 다양한 영역에서 생물체를 활용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바다 생물은 전복이다. 전복이 있다면 먹음직스런 속은 죽을 끓이거나 무침 재료로 사용하고, 특이한 껍질을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이 껍질의 성분은 보잘것 없다. 고강도를 자랑하지만 재료는 석회(칼슘카보네이드)와 천연 고분자일 뿐이다. 만일 두 물질을 단순 혼합하면 보잘것 없는 물질일 뿐이다. 하지만 전복의 신비한 공정을 거치면 단순 혼합보다 1천배나 강한 재질을 만들어낸다. 부드러운 층과 단단한 층이 교차되면서 어떤 압력에서도 견디는 ‘무쇠껍질’이 되는 것이다. 만일 이 물질의 분자구조를 외장에 적용한다면 탱크 철갑이나 고강도 세라믹이 될 것이고, 도색용으로 사용하면 긁히지 않는 안경렌즈나 페인트 등을 만들 수도 있다.

사진/ 생물체를 모방하면 첨단 기술이 나온다. 바이오 강철을 만드는 거미.
육지의 생물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첨단 소재로 관심을 모았다. 거미줄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물질 가운데 하나이다. 지름이 0.0003mm밖에 안 되는 거미줄은 주철처럼 파괴되지 않으면서도 수백배의 에너지를 흡수한다. 이런 거미줄이 언젠가는 날아가는 탄환을 멈추게 하거나 우주공간에서 5t이나 되는 인공위성을 묶어 올리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물론 자연상태의 거미줄을 그대로 이용한다면 그런 미래는 요원하다. 1분에 5, 6피트의 실크를 분비하는 거미 5천 마리가 평생 줄을 내놓아도 겨우 옷 한벌을 짜는 탓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거미의 방사 메커니즘을 규명해 유전공학적으로 거미줄을 대량 생산하려고 한다. 캐나다의 넥시아 바이크테크놀로지는 거미 유전자를 염소의 유방세포에 주입해 우유의 거미줄 단백질을 추출하고 있다. 아직은 탄력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머지않아 염소가 우유로 배출한 거미 단백질은 ‘바이오 강철’을 만들어 낙하산을 만드는 실이나 인공 인대나 힘줄을 만드는 등 외과용 재료로 쓰일 전망이다.

사진/ 껍질이 고강도 섬유소재로 쓰이는 딱정벌레.
생물체는 군사적으로도 효용성이 높다. 주로 소형 생물들이 군사적으로 거듭나고 있다. 초보적인 것으로는 꿀벌처럼 생물을 훈련시켜 지뢰찾기에 이용하는 게 있다. 이런 방법은 생물체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기에는 간편하지만 대상 생물은 몇종에 지나지 않는다. 이보다는 생물체의 특성을 살려 공학적으로 처리하는 게 훨씬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딱정벌레의 껍질은 가벼우면서도 단단해 철판 전투복을 만들 수 있으며 휘발성 물질에 강한 레실린이라는 단백질을 함유한 바퀴벌레 껍직은 위험지대 수색에 사용할 수 있다.

생물체 닮은 로봇이 작전을 수행한다

최근에는 생물체에 첨담장치를 부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짜 생물체처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계적인 복제생물체도 만들고 있다. 이것이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공학적으로 이용하는 ‘생체모방’(biomimetics)이 각광받고 있다. 군사적으로 생체모방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생물체는 곤충이다. 파리의 공기역학적 비행 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랍다. 파리의 이동과 항법능력에 대한 원리를 밝혀내 하드웨어로 재구현하면 만능 곤충로봇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파리 정도의 크기인 로봇에 항법 원리를 모두 적용하기는 힘들다. 초대형 파리로봇으로 출발하겠지만 언젠가는 실제 파리의 크기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딱정벌레는 뛰어난 감지능력이 있어 50∼7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산불을 알아차린다. 연기와 산불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감지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감지능력이 뛰어난 딱정벌레의 독특한 기관을 이해하고 이를 모방하면 화학성분이나 적외선을 정확하고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생물체의 능력을 따라 배우는 기술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아직도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신의 발명품이 수없이 많은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생명체를 만든다 해도 이미 만들어진 생명체의 다양성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으로선 그저 생물에게서 한 수 배우는 정도이다. 그렇게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자연을 닮아가면서 바이오칩이나 초고감도 바이오센서 등 꿈의 신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자신들의 놀라운 능력을 숨긴 채 하찮은 미물로 취급받는 생명체가 수두룩하다. 생명체를 둘러싼 비밀의 문이 열린다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곤충을 닮은 기계는 물론 사람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여름 대자연의 신비에 눈을 돌려 미래의 신기술을 엿보자.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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