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식전 댓바람부터 전화가 울렸다. 시각은 오전 10시. 꾸역꾸역 마감하고 기어 들어와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떤 인간이 이 시간에 전화질이야~. 조지 마이클 좋아해 ‘조지는 마이클’(별명)로 불린 고향 친구였다. “이따 내 결혼식에 올 거지?” 순간 뭔소리여, 시방~이라고 구수한 고향 사투리를 퍼부어주려다가 청첩장 받은 생각이 나, “1시냐?”고 되물었다. 마음 같아선 제치고 돈만 보내고 싶었다. 결혼식장이 고향 경기도 평택인 까닭이었다. 초등학교 때 단짝이던 녀석은 조지는 마이클답게 허밍으로 애원했다. 다른 친구 없니?
주말에 나 홀로 외출은 불가한 까닭에 아들 녀석과 와잎을 차에 싣고 평택으로 향했다. 와잎은 지금 결혼해서 언제 애 낳느냐며 군걱정을 했다. 난 “늦더라도 결혼해야지. 내가 겪는 고통, 남도 똑같이 겪어야 하지 않겠냐?”라고 답했다. 아들 녀석에게 공룡책 읽어주던 와잎은 “오늘 밤 술 먹고 사고 좀 쳐줘? 진짜 고통 좀 겪어볼래?”라고 복화술로 말했다. 교활한 벨로키랍토르는 포식자 티라노사우루스 앞에서 깨깽했다.
좀 늦게 식장에 도착했다.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반가운 면상들이 보였다. 입만 열면 뻥치는 뻥근이, 반경 5m 내 모든 생명체의 후각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암내의 소유자 스멜, 이름에 태자 들어갔다고 탱자, 이름을 빨리 발음한 쨈병, 작고 뚱뚱해 뚱돌, 뻐드렁니에 좁은 이마로 원시인의 외모를 자랑하는 권시인 등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 같은 녀석들이었다. 신혼부부와 인증샷을 찍고, 곧장 피로연장으로 향했다. 내 옆에 앉은 권시인은 최근에 늦깎이 영화배우로 데뷔했다(고 본인이 말하고 다니는데 출연작을 본 사람은 없다). 우리는 옛날 얘기를 하며 찧고 까불었다. 권시인이 요새 웃을 일이 없는데 이렇게 만나니 좋다고 하길래, 내가 그랬다. “집에 거울 없니? 하긴 거울 보면 10초 동안 웃고 10분 동안 우울하겠구나?” 권시인은 낄낄댔다.
결혼식을 파하고 집에 가려는데 헤어지기 아쉬운지 권시인이 천안에 사는 심비홍(제861호 ‘오바이트도 좋다, 똥만 싸지 마’ 참조)네에 놀러가자고 꼬였다. <한겨레21> 한 부도 안 보는 심비홍이랑은 상종도 안 하려다가, 오랜만에 심비홍이랑 같이 권시인 약 올리면 술맛 나겠다는 생각에 그만, 천안으로 가고 말았다. 그게 엄청난 실수라는 것을 알기까지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 만난 심비홍은 우리를 천안시 불당동에 위치한 ‘공주얼큰이칼국수’로 안내했다. 얼굴 큰 얼큰이가 얼큰이칼국수로 가는구나~. 우리는 보쌈, 만두, 얼큰이·하얀칼국수에 소맥을 시켰다. 보쌈은 기름기가 적당했고, 칼국수는 얼큰이다웠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소맥을 돌렸다. 술이 돌자, 권시인은 자신이 최근 종편 시트콤에 배우 한진희의 젊은 역할로 출연했다고 깔때기를 댔다. 제목은 <왔어 왔어 제대로 왔어>. 너 진짜 연예인이니? 종편 ‘망했어~ 망했어~ 제대로 망했어~’ 구만~. 우린 물 만난 듯 깐족댔다. 와잎은 박장대소로 부창부수임을 증명했다. 정말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니 작품이 떴다. 요즘 연예계 맛이 갔어~ 갔어~ 제대로 갔어~. to be continued. 문의 041-566-9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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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연예인이 된 원시인의 깔때기
얼큰 시원한 충남 천안시 ‘공주얼큰이칼국수’
제 904호
등록 : 2012-03-30 11:17 수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