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소재로 한 광고 봇물… 코카콜라와 청바지에 ‘성역’은 없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가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 대사는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에도 등장한다. 때없이 벌떡벌떡 일어나 “가자”를 외치던 노모의 절규는 50년간 가슴을 내리 눌러온 염원이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 ‘그곳’은 더이상 갈 수 없는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인가. 광고에도 심심찮게 북한 소재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간첩 리철진>을 패러디한 현대 아반떼 광고를 필두로,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과 북, 통일과 이산가족 등을 소재로 한 광고는 상당수다.
‘어머니 이북(e-book)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라는 와이즈북의 광고카피처럼, 이들 광고는 대부분 재담(fun) 광고인 반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CF처럼 진지한 광고도 있다. 흑백화면에 별다른 음악이나 음향효과 없이 조용히 펼쳐지는 다음의 광고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남북 군인을 보여준다. 강경해 보이는 그들의 군화께에서는 개구리 한 마리가 거리낌없이 남북을 넘나들고, 교대 호각소리에 엇갈려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 뒤로 ‘다음에서 만납시다’라는 멘트가 흐른다. 인터넷이 마음의 벽을 허문다는 메시지다.
맥락은 다르지만 이 광고를 보며 떠오른 것은 이탈리아 진 브랜드 ‘디젤’(DIESEL)의 1997년 광고다. 북한을 소재로 스웨덴의 패러디셋 DDB사가 제작한 이 CF는 주로 유럽과 미국지역에서만 방송을 탔다. 평양이라는 자막과 함께 ‘해는 져서 어두운데…’로 시작되는 <고향생각>이라는 노래가 김민기의 음색으로 시작된다. 우울한 곡조와 마찬가지로 모노톤의 화면도 우울하다. 디젤 진을 차려입은 북한 청년은 청바지 때문에 아버지와 다투고 회사에서는 인민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입을 저지당한다. 갑갑한 사회에 절망한 청년은 애인과 함께 다리에서 뛰어내린다. 그러나 눈을 떠보니 지나가던 쓰레기차 위다.
다국적 기업인 디젤의 슬로건은 ‘성공적인 인생을 위하여’(For Successful Living)이다. 그러나 디젤 광고가 다루는 것은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 생의 이면에 담긴 아이러니다. 주로 잔혹한 소재로 위트와 블랙유머를 담은 시리즈의 디젤 광고는, 교통사고 현장처럼 자동차와 인형들이 부서지고 망가져 널려 있는 광고가 있는가 하면, 저녁만찬 식탁에 앉은 돼지들이 요리접시에 얹혀진 돼지요리를 기다리는 광고도 있다. 억압적인 체제에 절망하는 젊은이의 초상을 그린 ‘평양에서의 하루’ 역시 아이러니다. 청바지를 모티브로 체제에 절망하고 자살하려는 북한의 모습을 희화화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즈음하여 북한에는 드디어 코카콜라가 비공식적으로 공급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 코카콜라가 입성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던 북한도 더이상 버틸 수 없는 모양이다. 한 음료회사 광고는 ‘2%로 통일합시다’라는 카피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남북을, 세계를 통일하는 것은 2%가 아니라 코카콜라다. 청바지와 콜라는 ‘서구문화’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소비문화다. 북한이 이 소비문화에 침윤될지 어떨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통일보다 코카콜라와 청바지가 먼저 가고 있다. 이념마저 잠식하는 소비문화야말로 깃발없는 제국주의다. 마정미 문화평론가 spero@cho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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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인 디젤의 슬로건은 ‘성공적인 인생을 위하여’(For Successful Living)이다. 그러나 디젤 광고가 다루는 것은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 생의 이면에 담긴 아이러니다. 주로 잔혹한 소재로 위트와 블랙유머를 담은 시리즈의 디젤 광고는, 교통사고 현장처럼 자동차와 인형들이 부서지고 망가져 널려 있는 광고가 있는가 하면, 저녁만찬 식탁에 앉은 돼지들이 요리접시에 얹혀진 돼지요리를 기다리는 광고도 있다. 억압적인 체제에 절망하는 젊은이의 초상을 그린 ‘평양에서의 하루’ 역시 아이러니다. 청바지를 모티브로 체제에 절망하고 자살하려는 북한의 모습을 희화화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즈음하여 북한에는 드디어 코카콜라가 비공식적으로 공급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 코카콜라가 입성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던 북한도 더이상 버틸 수 없는 모양이다. 한 음료회사 광고는 ‘2%로 통일합시다’라는 카피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남북을, 세계를 통일하는 것은 2%가 아니라 코카콜라다. 청바지와 콜라는 ‘서구문화’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소비문화다. 북한이 이 소비문화에 침윤될지 어떨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통일보다 코카콜라와 청바지가 먼저 가고 있다. 이념마저 잠식하는 소비문화야말로 깃발없는 제국주의다. 마정미 문화평론가 spero@cholian.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