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반가운 ‘별종’ 타자와 투수들…우즈 이승엽 양준혁 김기태 서용빈 임선동
지난 7월29일 부산에서 치러진 롯데-두산전. 경기에 앞서 사직구장에 도착한 두산 선수단은 결국 배팅훈련 중단을 결정했다. 당시 중부지방은 폭우로 물난리를 겪고 있었지만 경남·부산지역은 땡볕 무더위가 이미 시작된 터. 오전 소나기로 인해 이미 사직구장 그라운드는 한증막 이상의 고온(게다가 사직구장은 인조잔디)을 뿜어내고 있었다. 김인식 감독은 코치들에게 “오늘은 선수들 쉬게 해. 그게 더 낫겠어”라고 지시했고, 선수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볍게 몸만 풀고 경기에 들어갔다. 구단마다 여름에 대구, 혹은 부산 경기를 치를라치면 한번씩 있는 일종의 연례행사다.
섭씨 40도 가까운 무더운 날씨에 혼자서 웃고 있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두산의 외국인 선수 타이론 우즈. 다른 선수들이 언더셔츠를 몇벌씩 갈아 입어가며 더위에 허덕였지만 우즈만은 끄떡없었다. 오히려 그는 비닐천으로 만든 땀복을 입고 방망이를 연신 휘둘러댔으니. 혹서기에 땀복 풍경은 우즈만 연출할 수 있는 진풍경이다.
“플로리다 보단 시원하군”
98년 외국인 선수 도입 첫해 홈런왕을 거머쥔 뒤 한국에서 가장 오래 생활하고 있는 우즈는 말 그대로 여름 사나이다. 역대 8월 타격 기록을 살펴보면 금새 드러난다. 지난해까지 3년간 8월 월간 타율이 3할2푼3리(220타수 71안타). 6월에는 2할대에 머무르다 7월에도 2할5푼3리에 맴도는 우즈는 8월이면 3할대로 껑충 뛰어오른다. 우즈는 선선한 9월에 오히려 3할4푼대로 올라가 여름-가을의 사나이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우즈의 여름 활약에 굳이 이유를 달아보자. 우즈는 이에 대해 “나는 미국 플로리다 출신이다. 한국의 여름 날씨가 그다지 덥지도 않고 야구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힌다. 태생적으로 더운 날씨에 강하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격언 중 “가을에 때려낸 홈런이 진짜 홈런”이라는 말이 있다. 디비전시리즈 진출과 나아가서는 월드시리즈 진출 순위 다툼이 한창인 9월에 터지는 결정타가 그만큼 값지다는 얘기다. 이걸 우리식으로 바꿔보자면 8월에 해당한다. 4위까지 가능한 포스트시즌 진출 카드의 향방은 대개 8월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9월이면 늦었다. 162게임의 미국 프로야구와 달리 133게임을 치르는 한국야구의 절정기는 여름이 종착역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는 8월. 이때부터 잘하는 선수가 진짜 스타다.
사실 우즈를 언급하기 전 시즌 최다 홈런(99년??54홈런)의 주인공 이승엽(삼성)을 예로 들었어야 했다. 이승엽의 2000시즌 7월 성적은 2할3푼7리. 많은 이들이 99시즌 홈런 신기록 경신 후유증이 아닐까 하고 우려를 표명했지만 곧바로 다음달인 8월 무려 3할5푼2리(71타수 25안타, 7홈런)로 급상승한다. 딱히 설명할 법이 없지만 우즈의 경우처럼 ‘출신 성분’을 따져보면 어떨까. 이승엽은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여름나기가 힘들다는 대구 사나이 아닌가. 이는 대구 출신인 LG의 양준혁의 예에서도 확인된다. 양준혁의 역대 7월 타율은 3할9푼2리. 무려 4할에 가까운 놀라운 기록이다. 8월에는 3할1푼1리로 3할대를 유지하며 꾸준한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다. ‘모든 대구 출신들은 여름에 좋은 성적을 내냐’고 반문하면 역시 할말 없지만 이들 둘의 여름 성적이 빼어남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승엽, 양준혁 이전으로 올라가보면 최고의 여름 사나이는 김기태다. 김기태는 역대 7월 타율이 4할8푼6리, 8월 타율이 3할1푼3리다. 김기태는 “딱히 이유는 없다. 단지, 투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여름철에 오히려 더욱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매우 잘 치는 수준급의 타자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7∼8월 성적이 뛰어난 좋은 본보기라는 것이다.
‘겨울옷’ 입고 여름나는 포수
지난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주간 타율이 무려 5할대로 치솟았던 서용빈(LG)은 친구 팬의 특별 서비스 덕을 톡톡히 봤다. 평소 골수 LG팬으로 잘 알려진 탤런트 안재욱이 친구인 서용빈에게 보약(어떤 종류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을 지어줬는데 그 덕분인지, 서용빈은 펄펄 날았다. 여름에 강한 것으로 알려진 서용빈이 보약 날개를 달고 펄펄 난 셈.
여름이 가장 힘든 선수들은 아무래도 포수다. 야구계의 3D 포지션이라고 할 만큼 대부분의 선수들이 기피하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체감온도 40도에 가까운 그라운드에서 포수가 걸치는 장비는 엄청나다. 남자의 ‘중요한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흔히 샅보대(낭심 보호대)를 두텁게 찬 뒤 베이스러닝팬티를 입는다. 머리에는 포수용 헬멧을 걸치고 얼굴에는 마스크, 가슴에는 프로텍터, 무릎에는 레그가드를 찬다. 혼자 겨울 만났다. 공격형 포수로 알려진 두산 홍성흔의 역대 8월 타율은 2할(125타수 25안타). 충분히 이해가는 대목 아닌가.
이종범 이후 최고의 타자로 손꼽히는 LG 좌타자 이병규는 따지고 보면 여름에 타율을 까먹는 체질이다. 역대로 6월에는 3할3푼6리까지 치솟다가 8월에 2할대(2할9푼)로 떨어진다. 99년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00안타에 도전했으나 192안타에 머물렀던 것도 따지고 보면 8월 부진 탓이 크다.
무더운 여름 타자들의 맹활약을 제치고 마운드의 해결사로 비집고 나오는 투수도 물론 있다. 현대 임선동이 대표적인 예. 임선동은 지난 한달간 4번의 선발등판에 2번의 완투승 포함, 4연승으로 승률 100%를 기록했다. 방어율은 1.87. 9이닝에 대충 2점을 채 못 준다는 얘기다. 임선동의 경우는 시즌 초 허리 부상으로 약 한달간 쉰 덕분도 있다. 체력에 있어 어느 투수보다 뒤질 것이 없는 탓에 밸런스만 제대로 갖췄으면 충분히 기대가 됐던 성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박찬호(LA다저스)는 여름 사나이인가, 슬로 스타터인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6월까지 5점대의 방어율을 유지하다 7∼8월엔 3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한다. 7월 3.74, 8월에는 3.33으로 안정된 피칭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고질적인 허리통증이 있는 박찬호는 “콜로라도의 쿠어스필드 같은 곳보다 충분히 땀을 낼 수 있는 무더운 날씨가 훨씬 좋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해주신 육개장이나 낙지볶음을 먹고 던지면 힘이 난다고 하는 말은 최근에 와서는 별 의미없는 말이 됐지만 예전에는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징크스였다. 원정경기를 나설라치면 일부러 한인식당을 찾아 이런 ‘열성음식’을 먹고 개운하게 땀을 흘리곤 했다.
박찬호는 여름 사나이냐 슬로 스타터냐
오히려 박찬호는 지금까지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가 결정된 9월에 ‘인상적인’ 승수쌓기를 하는 편이다. 타고난 그의 체질상, 여름 사나이기도 하지만 팀으로서는 다소 바람직하지 않게 슬로 스타터이기도 하고 그래왔다. 그러나 올해의 박찬호는 지난 시즌까지의 기록과 통계를 껑충 뛰어넘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16연속 퀄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 이내의 피칭) 등 시즌 내내 꾸준히 3점대의 방어율로 사실상 다저스의 제1선발을 하고 있지 않은가.
팀으로서도, 선수 개인으로서도 특정 계절에만 반짝 잘하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개막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잘할 수 있는, 불가능하지만 그런 선수가 대접받는다. 불가능할 것 같으면서도 한국야구에 지금 그런 선수가 있다. 타격 전관왕에 도전하는 롯데 외국인 선수 호세. 호세는 현재 경기당 타점이 거의 1타점(8월3일까지 82경기서 81타점)을 생산해내는 괴물이다.
7월 장마가 그랬듯이 8월 땡볕더위도 시간이 해결한다. 팀의 간판 타자와 투수들은 8월을 잘 보내야할 의무가 있다. 올해처럼 4위 다툼이 치열한 페넌트레이스에서 배탈도 없고, 일사병도 끄떡없는 여름 장사로 새롭게 태어날 이들을 기대해본다.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기자

사진/ 섭씨 40도 가까운 무더위에도 우즈는 끄떡없다. 고향이 플로리다여서 태생적으로 더운 날씨에 강하다.(한겨레)
98년 외국인 선수 도입 첫해 홈런왕을 거머쥔 뒤 한국에서 가장 오래 생활하고 있는 우즈는 말 그대로 여름 사나이다. 역대 8월 타격 기록을 살펴보면 금새 드러난다. 지난해까지 3년간 8월 월간 타율이 3할2푼3리(220타수 71안타). 6월에는 2할대에 머무르다 7월에도 2할5푼3리에 맴도는 우즈는 8월이면 3할대로 껑충 뛰어오른다. 우즈는 선선한 9월에 오히려 3할4푼대로 올라가 여름-가을의 사나이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우즈의 여름 활약에 굳이 이유를 달아보자. 우즈는 이에 대해 “나는 미국 플로리다 출신이다. 한국의 여름 날씨가 그다지 덥지도 않고 야구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힌다. 태생적으로 더운 날씨에 강하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격언 중 “가을에 때려낸 홈런이 진짜 홈런”이라는 말이 있다. 디비전시리즈 진출과 나아가서는 월드시리즈 진출 순위 다툼이 한창인 9월에 터지는 결정타가 그만큼 값지다는 얘기다. 이걸 우리식으로 바꿔보자면 8월에 해당한다. 4위까지 가능한 포스트시즌 진출 카드의 향방은 대개 8월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9월이면 늦었다. 162게임의 미국 프로야구와 달리 133게임을 치르는 한국야구의 절정기는 여름이 종착역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는 8월. 이때부터 잘하는 선수가 진짜 스타다.

사진/ 이승엽의 2000시즌 7월 성적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8월에 무려 3할 5푼으로 급상승했다.(한겨레)

사진/ 양준혁의 역대 7월 타율은 4할에 가깝다. 그의 활약은 '대구 사나이'이기 때문일까.(한겨레)

사진/ 박찬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6월까지 5점대의 방어율을 유지하다 7~8월에 3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했다.(A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