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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농약을 내쫓는 해충의 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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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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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먹이사슬 이용하는 천적농법… 시설농가에 보급해 무공해 농산물 생산

사진/ 농작물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해충을 천적들이 제거한다. 곤충병원성 곰팡이에 감염된 목화 진딧물.
모든 생물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만일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깨진다면 살아남을 생물은 많지 않다. 충남 논산시 부정면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김용배(59)씨는 비닐하우스의 먹이사슬이 제대로 유지되기를 학수고대한다. 딸기 농사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던 점박이응애를 퇴치하기 위해 비닐하우스에 천적인 칠레이리응애를 넣었기 때문이다. 3년째 천적농법을 시도하면서 먹이사슬의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천적을 이용하기 전에는 2600㎡(약 800여평)의 딸기밭에 수십만원어치의 농약을 뿌렸다. 수시로 시설을 드나드는 수고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농약을 대신하는 천적이 있기에 훨씬 적은 수고로 ‘무공해 딸기’를 시장에 내놓는다. 아쉬운 게 있다면 재배면적이 독자 상표로 하기엔 부족해 천적농법 딸기를 널리 알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는 9월에 다시 파종할 때는 주변 농가도 천적농법에 참여해 고유의 상표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충과의 화학전쟁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이렇게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이용해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가 차츰 늘고 있다. 농약을 뿌리지 않고 농작물에 해를 입히는 곤충을 퇴치하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곤충의 종류는 100만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농작물과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해충은 1%도 되지 않는 약 3500종 정도일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250여종의 해충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인간에게 이로운 곤충은 40여만종이나 된다. 해충을 먹고 사는 천적들이 있고 꿀이나 비단 등 유용한 물품을 제공하는 꿀벌, 누에 등이 있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천적이 해충보다 훨씬 많기에 그리 염려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천적이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을 줄이는 시간이나 정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탓이다. 마냥 천적을 믿고 기다린다면 농산물은 해충의 먹을거리로 쓰여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해충을 줄이기 위한 농약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인류의 해충과의 화학전쟁은 한 세기 전에 시작됐다. 1860년대에 화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비소화합물이 앞장서서 전쟁을 치렀다. 당시 머지않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곤충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게다가 2차세계대전 이후 개발된 숱한 유기합성농약은 해충을 잡아먹는 귀신으로 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약의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농약을 많이 사용할수록 해충은 내성을 길러 농약에 적응하게 되었다. 오히려 자연계에 있는 천적이 줄어드는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농가에서는 농약의 농도를 더욱 독하게 하거나 뿌리는 횟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해충방제에 나섰다. 실제로 같은 양의 수확을 거두기 위해 지금은 20년 전에 사용한 살충제의 5배 이상 써야만 비슷한 농약의 효과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까닭에 해충 방제비용이 농산물 수확으로 인한 이윤을 초과해 재배를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해충 방제는 대부분 농약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농업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농약회사에서 출고한 농약이 2만6천t에 이른다. 가격으로 따지면 9500억원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농약은 농산물의 안전을 해치고 생태계에도 치명적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살충제로 쓰이는 BHC나 DDT 등은 토양이나 물 속에서 분해되지 않다가 플랑크톤과 물풀 등에 흡수된다. 그러다가 먹이연쇄를 따라 상위 단계로 옮겨가면서 더욱 농축되어 소비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합성유기물질이 최고 소비자들의 생물체 내로 들어오는 ‘생물농축’이 일어나는 것이다. 벼에 살포하는 살충제의 성분인 BHC의 농도는 생물농축의 폐해를 살펴보면 이렇다. 논에 뿌린 살충제의 BHC가 5.98ppm이었다면, 벼에서 수확한 쌀은 0.17ppm이지만 벼를 먹은 젖소 조직은 13.68ppm, 젖소에서 얻은 우유는 9.82ppm으로 나타나다. 그렇게 오염된 쌀이나 우유를 먹은 사람의 BHC 농도는 12.17ppm에 이른다.

갈수록 농약의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농산물에 규정 이상의 농약을 뿌리는 걸 막기 위해 농약잔류검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농약을 쓰지 않는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유기농산물의 비중은 우리나라에서 0.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대안 농업’의 한 방식으로 천적농법이 보급됐다. 미국 남부의 목화농장에서는 면화씨 바구미 퇴치를 위해 말벌을 쓰고 있다. 말벌은 면화씨 바구미의 애벌레 속에 알을 낳고 부화하면서 애벌레를 먹고 자라 해충을 없앤다. ‘그린 머슬’(green muscle)이라는 아프리카산 버섯은 농작물을 공격하는 메뚜기떼를 죽이는 ‘천연살충제’ 구실을 하고 있다. 버섯균은 감자 딱정벌레를 잡아먹기도 한다. 곤충 암컷의 생식 분비물인 ‘페르몬’(pheromone)은 과수원에서 풋과일에 기생하는 나방을 퇴치하는 데 쓰인다. 이런 해충 방제는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자연의 법칙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사진/ 곤충의 생식분비물도 해충을 방제한다. 페르몬 상자를 설치해 나방의 접근을 막고 있다.
환경에 부담없어 대안농업으로 각광

국내에서도 천적을 이용한 해충 방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농업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해충의 생물적 방제를 위해 다양한 천적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칠레이리응애는 딸기재배 농가에서 점박이응애를 성공적으로 방제했다. 온실가루이좀벌도 토마토에서 온실가루이를 효과적으로 방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추와 수박 등에서 진딧물을 방제할 수 있는 진디벌을 적용한 시험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외국에서 국내에 침입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꽃노랑총채벌레와 오이총채벌레를 억제할 수 있는 토착천적인 애꽃노린재의 대량사육기술도 확보했다. 이런 천적은 해충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시설재배 작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시설에 있는 해충들은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번식도 빠르다. 밀폐된 공간이기에 해충의 종류도 많지 않아 소수의 천적만 있으면 성공적으로 방제할 수 있다.

모든 농가가 천적을 이용한 해충 방제에 나서기는 힘들다. 아직까지 농가에 보급하는 천적의 상당수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대량 번식이 이뤄진다 해도 모든 해충의 천적을 보급하기 어려운 탓이다. 게다가 천적을 이용한 해충 방제가 성공하려면 농가 부근에서 천적이 생산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현재 시설과채류 주산단지 지역에 있는 25곳의 농업기술센터를 비롯해 한국IPM 동그라미동물농장 세실무역 등 민간회사가 천적 생산에 나섰지만 시범 보급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곤충 천적을 이용한 농법은 화학살충제에 의한 환경오염을 막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앞으로 곤충 천적은 소비자들의 안전한 농산물 선택에 힘입어 백강균 CS-1 등 미생물 천적, 천연물 농약과 함께 지속적인 보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도움말 주신 분

유재기 농업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농업해충과장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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