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의 인물이 펼치는 파노라마… 다양한 제국과 문명의 흥망성쇠가 압축된 <실크로드 이야기>
바닷길로는 갈 수 없는 곳,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사막과 고원지대의 틈바구니에 중앙아시아가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미지의 땅, 야만의 땅으로만 비쳐진다. 옛 소련과 ‘…스탄’이 붙는 나라들, 그리고 몽골과 중국의 변방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역사적으로도 언제나 잠시 스쳐지나가는 곳, 나름의 문명도 문화도 없는 유목민의 땅으로만 여기기 쉽다.
중앙아시아를 소설처럼 읽는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큰 잘못이다. 적어도 과거의 역사만으로 볼 때 중앙아시아처럼 화려했고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곳도 없다. 유라시아 대륙의 정확하게 가운데 부분에 있는 곳, 그 바로 아래에는 또다른 문명인 인도문명이 있는 곳이 바로 중앙아시아다. 그래서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은 중국을 의미하는 ‘세레스’(Seres)의 앞부분에 인도(India)를 붙여 ‘세랭디아’(Serindia)라는 프랑스식 신조어로 부르기도 했다. 두 대륙이 만들어낸 문명의 정수는 중앙아시아를 통해 서로에게 전해졌고, 이곳에서 만나 화학적으로 결합해 변화의 싹을 틔웠다. 그 화려했던 역사가 이뤄진 무대가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길, 바로 ‘비단길’ 실크로드다. 그래서 “세계가 하나의 단일 국가가 된다면 그 수도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도시 사마르칸트가 될 것”이라고 했던 역사학자도 있었다.
아시아 전문 출판사인 이산출판사가 최근 펴낸 <실크로드 이야기>(수잔 휫필드 지음, 김석희 옮김/ 문의 02-334-2849/ 1만2천원)는 이 역사적인 지역의 가장 화려했던 순간을 그리는 책이다. 실크로드가 워낙 인기좋은 소재이다보니 실크로드에 대한 책은 이미 여러 가지가 나와 있지만, <실크로드 이야기>는 다른 실크로드 책들과는 상당히 틀리다. 다른 책들이 대부분 기행문, 또는 화보집인 데 반해 이 책은 이 지역의 역사와 다양한 제국과 문명의 흥망성쇠를 압축한 정통 역사책이다. 지금 변방 제3세계라는 이유로 세계사 시간에도 간략하게 언급조차 되지 않고 넘어가는, 우리로서는 제대로 알기 어려웠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알려주는 드문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실크로드 책과 가장 구별되는 점, 다른 인문서들과는 다른 점은 바로 서술형식이다. 책이 다루는 시기는 8세기 중반부터 10세기 말까지 약 250년 동안의 기간. 지은이는 이 기간 동안 실크로드를 활동 무대로 했던 10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실크로드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인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에서는 다음 차례 주인공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실마리를 전해주면서 새 주인공으로 넘어가고, 때로는 두 인물이 만나기도 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인물 중심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주인공 10명은 대부분 둔황에서 발견된 둔황문서나 역사적 자료에서 발굴해낸 사람들이다.
정사(正史)의 주역이 아닌 평범한 인물들
사마르칸트와 당나라의 수도 시안을 왕래하던 장사치 나나이반다크로부터 시작해 고선지 장군의 무용담을 후배에게 이야기하는 티베트 병사, 당나라 목종의 누이 태화 공주, 지금의 타슈켄트에서 태어나 기생이 돼서 실크로드를 전전한 한 여인 등 다양한 주인공들은 정사(正史)의 주역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지은이 휫필드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들의 삶을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통해 상상 속에 재현해내며 역사의 주인공으로 탈바꿈시켰다. 역사를 장식한 위인들은 아니지만 힘겨운 삶을 살았던 이들 보통사람들이 바로 실크로드의 진정한 주인이며, 이들의 삶이 진정한 역사라고 지은이는 역설한다.
책은 문학적 방법으로 역사를 설명해주기 때문에 소설책처럼 쉽게 읽힌다. 책의 앞머리에서 8세기 이전 이 지역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간단하면서도 정확하게 술술 풀어주는 프롤로그 부분은 단연 압권이다. 수세기 동안 명멸했던 많은 왕조들과 문명의 흥망사, 그리고 이 지역을 통해 전해진 불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 등 수많은 종교의 발전사를 단 30쪽 분량 속에 잘 압축한 지은이의 빼어난 글솜씨도 일품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실크로드에서 활동하던 유랑예능인의 조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