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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골라∼ 골라∼ 잘만하면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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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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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성과 한숨 교차된 한국프로농구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장 이모저모

사진/ 2001 한국프로농구협회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 4개팀이 1차 지명으로 단신 선수를 채택했다.(사진공동취재단)
흰 구슬, 빨간 구슬, 노란 구슬, 파란 구슬. 투명한 유리그릇에 각각 담겨 있던 네 가지 색깔의 구슬이 나무상자(추첨기) 속에 들어가 마구 섞였다. 맨 처음 튀어나온 것은 흰 구슬. 동양이었다. 드래프트장 이곳저곳에선 탄성과 한숨이 흘러나왔다. 2001-2002 한국프로농구(KBL) 외국인선수 드래프트가 열린 지난 7월23일(한국시각) 미국 시카고 더블트리호텔 11층 회의실. 프로농구 10개팀 감독·코치 등 구단 관계자와 74명의 외국인선수, 딸린 가족까지 150여명이 들어찬 드래프트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4개팀이 장신보다 단신 뽑아

순번 추첨은 전체 10개팀 중 지난 시즌 성적에 따라 1묶음(10위∼7위), 2묶음(6∼5위), 3묶음(4∼1위) 등 3그룹으로 나뉘어 이뤄졌다. 첫 1묶음 추첨에서 지난해 10위팀인 동양이 1순위 지명권을 얻고, 7위 삼보, 9위 기아, 8위 코리아텐더가 각각 2, 3, 4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국내 프로농구에서 외국인선수(용병)는 단순히 주전 5명 중 2명이 아니다. 어쩌면 용병 2명의 비중은 팀전력의 60%를 넘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좋은 용병 선발은 곧바로 팀성적으로 연결되기에, 각 팀은 드래프트 취지를 손상시킨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사전에 미국으로 가 ‘흙 속의 진주’를 찾고 또 찾았던 것이다.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쥔 동양은 이날 센터 감을 고르리라던 예상을 깨고 미국 미시시피대 출신 포워드 마커스 힉스(25·196.5cm·97kg)를 선발했다. 힉스는 “좋은 선수가 많아 지명되기만을 바랐는데 전체 1순위로 뽑혀 행복하다”며 “팀플레이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힉스는 애초 프랑스 프로리그에 진출하기로 돼 있었던 것이 무산되자 한국농구에 도전했다.

힉스를 뽑은 김진 동양 감독은 “빠른 농구를 지향하는 만큼 발이 빠르고 체력이 좋은 힉스를 낙점했다”고 말했다. 힉스는 미국프로농구(NBA) ‘하위리그’인 ‘IBA’에서 지난 2000-2001시즌 신인왕(20점 10튄공)을 차지했고, 지난 5월 프랑스 프로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뛰며 27.5득점, 7.5튄공의 성적을 기록했다.

2순위 지명에 나선 삼보는 뛰어난 탄력과 힘 넘치는 골밑 플레이로 선발전 내내 눈길을 끌어모은 앤드리 페리(31·196.8cm)를 선택했고, 이어 2라운드에선 새 용병 중 유일하게 백인인 조너선 비어봄(23·199.3cm)을 선택했다. ‘브래드 피트’ 같은 외모와 뛰어난 점프력으로 눈길을 끈 비어봄은 한국농구에 맞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3순위 기아는 아르헨티나와 스페인리그에서 뛰었던 딜런 터너(30·193.2cm)를 뽑았다. 드래프트에 앞서 사흘 동안 시카고 후프스체육관에서 벌어진 선발경기(트라이아웃) 현장에서 “키 큰 선수 가운데 좋은 선수가 없다”고 투덜거렸던 기아 박수교 감독은 1라운드에서 ‘단신’을 뽑고 2라운드에서 래리 애브니(24·200.3cm)를 낙점한 뒤 만족해 하는 분위기.

5순위 지명권을 가진 케이시시(전 현대)는 99년 ‘방출’한 재키 존스를 택해 이날 드래프트에서 최대 화제가 됐다. 재키 존스는 이로써 4시즌째 한국무대를 밟게 됐다. 반면 조니 맥도웰(전 현대)은 신세기에 지명돼 외국인선수로는 최장인 5시즌 연속으로 한국무대에서 뛰게 됐다. “현대가 왜 나를 내쳤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섭섭해했던 맥도웰은 “신세기에서 뛰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의 하나는 1라운드 선발에서 4개팀이 ‘장신’보다 ‘단신’을 뽑았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삼성의 우승을 이끈 아티머스 매클래리를 의식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선발 기준도 여느 해에 비해 달라졌다. 각 팀이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기량을 위주로 선발하기보다는 기존 국내선수들의 부족분을 염두에 두고 선발했다는 것.

하지만 성패는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토종선수들과 섞어놓고 얼마나 조화롭게 팀워크를 이뤄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프로농구 원년부터 실시된 트라이아웃에서 ‘군계일학’을 뽑고도 빛을 못 보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팀워크 때문이었다. 지난 시즌 트라이아웃에선 데이먼 플린트가 펄펄 날았다. 전체 2순위로 동양에 지명됐지만 결과는 ‘아니올시다’였다. 플린트는 동양에서 현대로 팀을 옮겨다니다 결국 시즌이 끝나기 전에 ‘퇴출’됐다.

전체 1순위로 마커스 힉스를 지명한 동양의 경우, ‘모험’을 택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김진 감독은 ‘빠른 농구’를 하기 위해 힉스를 지명했다고 밝혔지만, 지난 시즌 동양의 팀색깔에 비추어볼 때, 어려움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튄공잡기왕 재키 존스를 내친 에스케이는 그레그 스프링필드(24·200.2cm)를 선택한 뒤 만족감을 드러냈다. 서장훈이 있는 한 ‘용병이 3명’이기에 언제나 강력한 우승후보인 에스케이는 한국농구를 잘 아는 하니발을 발판으로 ‘튼튼한 삼각타워’로 높이의 농구를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확실한 슈터’ 문경은을 영입한데다, ‘검증된 용병’ 맥도웰을 챙긴 신세기는 2라운드에서 뽑은 센터 얼 아이크(23)가 제몫을 해준다면 한층 팀전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팀 만족 표시하지만…

지난 시즌 준우승팀 엘지는 이번 드래프트에서 ‘구슬 운’이 좋지 않았다. 재계약 선수가 있으면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한 것으로 간주되고, 2라운드에선 역순으로 지명하기 때문에, 순번 추첨에서 7순위를 받은 게 도리어 나빴다. 게다가 재계약한 이버츠(197.8cm)의 키가 어정쩡해 새 용병을 뽑는 데 애를 먹었다. 2라운드에서 말릭 에번스(28·200.1cm)를 뽑은 엘지 김태환 감독은 “재키 존스와 조니 맥도웰을 염두에 뒀지만, 앞 순번에서 다 차지해버렸다”면서도 “에번스가 튄공잡기, 슛가로막기 등 골밑 장악력뿐만 아니라 수비가 아주 좋다”고 칭찬했다.

드래프트를 마친 뒤 각 팀은 서로 “잘 뽑았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한두달 전에 제각각 미국에 가서 ‘사전답사’를 통해 선수들을 봐둔 각 팀 코치진의 아전인수격 만족”이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하지만 각 팀이 팀색깔에 따라 ‘필요한 선수’를 뽑았다면 이들의 한국농구 적응은 더욱 쉬워질 것이고 다음 시즌 프로농구는 한층 재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라이아웃 내내 “특정 선수를 ‘찜’해놓고 선발경기 때에는 대충 뛰게 했다”는 둥 팀별로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고, 이에 따른 트라이아웃 존폐 논란도 불거졌다. 이번 시카고 용병 선발전(트라이아웃)에는 참가신청서를 낸 251명 가운데 135명이 서류를 통과해 75명이 선발경기에 참가했고, 이 가운데 73명이 마지막날 드래프트에 참석했다. 외국인선수는 새내기의 경우 월 1만달러(시즌 6개월 6만달러)를 받게 되며, 재계약 용병은 월 최대 1만2천달러까지 받게 된다.

어찌 됐든 파이는 각 팀에 배분됐고,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이들을 잘 굽느냐 하는 것이다. 2001∼2002 프로농구는 11월에 막을 올린다.

시카고/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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