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은 비인기 종목의 대명사다. ‘한데볼’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런데 요즘 핸드볼계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여자핸드볼 대표팀은 2012년 런던올림픽 직행 티켓을 따내며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남자핸드볼 대표팀도 역사적인 핸드볼 전용 경기장에서 런던을 향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6.25% 확률의 드라마 올림픽 효자 종목 핸드볼의 올림픽 본선 진출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SK그룹 회장인 최태원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은 10월21일 여자대표팀이 중국 장쑤성 창저우에서 열린 아시아 예선에서 우승하며 올림픽 직행 티켓을 따낸 뒤 만찬을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핸드볼에 대한 국민들 눈높이가 너무 높다. 사실 한국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려면 4번 정도의 접전 경기를 모두 이겨야 한다.” 확률상 16분의 1. 6.25%다. 최 회장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다”고 했다.정확한 진단이다. 사실 여자핸드볼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아시아에 한 장만 주어진 올림픽 직행 티켓을 따지 못하고 천신만고 끝에 본선 무대에 진출했다.한국, 중국, 일본, 카자흐스탄 등 4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2003년 9월 일본 고베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한국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카자흐스탄만 24-22로 물리쳤을 뿐, 일본과 24-24, 중국과 21-21로 비겨 1승2무로 중국에 이어 2위로 밀려났다. 결국 코칭스태프를 교체하고 선수를 보강해 그해 12월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해 간신히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베이징올림픽에는 더욱 드라마틱하게 나갔다. 2007년 8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한국은 심판들의 노골적인 편파 판정에 시달리다 홈팀 카자흐스탄을 32-31로 간신히 물리쳤지만 일본에 29-30으로 져, 골득실 차로 카자흐스탄에 직행 티켓을 내줬다. 아시아에서 적수가 없는 남자대표팀도 중동국가의 편파 판정에 희생됐다.결국 국제핸드볼연맹(IHF)이 편파 판정을 인정해 남녀 모두 아시아지역 예선 재경기가 결정됐다. 한국과 일본만 참가한 가운데 남녀 모두 도쿄 요요키체육관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가볍게 승리했다. 그런데 중동국가가 주도하는 아시아핸드볼연맹(AHF)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재판소는 남자부 재경기만 인정했고, 여자는 재경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자대표팀은 다시 각 대륙 2위팀이 참가해 이듬해 3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예선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베이징행 티켓을 딸 수 있었다.이런 아픈 과거 때문에 여자대표팀은 2012년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을 앞두고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더욱이 한국은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일본에 1점 차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여자핸드볼이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이후 6연패 달성에 실패했고, 아시안게임 26전 전승 신화도 깨졌다. 카자흐스탄에는 지난해 12월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역시 1점 차로 졌다.다행히 한국은 홈팀 중국을 31-19, 카자흐스탄을 36-23으로 가볍게 물리쳤다. 카자흐스탄의 한국인 윤태일 감독은 “러시아 클럽팀에 소속된 선수 6명의 합류가 늦었다. 심지어 2명은 창저우 현지에서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은 조직력과 속공이 뛰어난 만만치 않은 팀이다. 유럽 전지훈련을 3번이나 다녀오며 ‘타도 한국’을 외쳤다. 일본은 훈련복 뒤에 ‘부활’이라는 글자를 한자로 새겨넣었다. 최근까지 대표팀 맏언니였던 홍정호 한국팀 전력분석관은 “일본을 생각하면 후배들 가슴에 응어리가 있다.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졌기 때문에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벼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이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후반전 초반까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지만 골키퍼 문경하의 눈부신 선방과 주장 우선희의 속공, 센터백 김온아의 돌파가 이어지며 24-17로 역전승을 거두고 5전 전승으로 올림픽 직행 티켓을 따냈다. 일본팀의 한국인 황경영 감독은 “이게 현실이고 실력 차”라며 허탈해했다.
23년 숙원 이룬 전용 경기장 런던올림픽 티켓을 딴 여자대표팀은 창저우의 금요일 밤을 축제로 수놓았다. 그리고 이틀 뒤에는 창저우의 영광을 서울의 환호로 이어갔다. 10월23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안에 들어선 핸드볼 전용 경기장 개장식이 열렸다. 올림픽 펜싱경기장을 리모델링한 이 경기장은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사인 SK그룹이 스포츠 분야 사회 공헌의 하나로 434억원의 공사비 전액을 부담해 세웠다. 개막 경기를 취재 온 일본 <지지통신> 요시다 겐이치 한국특파원은 “크기도 적당하고 코트와 관중석이 가까워 관중 친화적으로 잘 지었다”며 부러워했다.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가 금메달, 남자가 은메달을 딴 뒤 전용 경기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 무려 23년 만의 쾌거다. 88올림픽 당시 골키퍼로 활약했던 남자대표팀 최석재(45) 감독은 “당시 서울올림픽인데도 핸드볼은 서울이 아닌 수원에서 경기를 치렀다. 그 뒤 핸드볼은 꾸준히 올림픽에서 국가 위상을 드높였는데 이제야 보답을 받은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88서울올림픽 당시 한국 구기종목 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긴 고병훈(65) 전 여자대표팀 감독은 “가슴이 벅차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며 감격했다.이번 대회는 10개 나라가 출전해 우승국이 아시아에 한 장만 주어진 2012년 런던올림픽 직행 티켓을 가져간다. 남자대표팀 결승전은 11월2일 오후 6시에 열린다. 핸드볼의 봄이 이어질지 궁금하다.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지난 10월 런던 올림픽 예선을 통과해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한국 핸드볼 여자 대표팀.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달 문을 연 올림픽공원에 있는 핸드볼 전용경기장의 야경.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핸드볼 전용경기장의 당당한 모습.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