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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토토로, 넌 잘 돼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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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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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대한해협 건너온 일본 최강의 문화상품, 국내 애니메이션업계가 대박을 기대하는 이유

사진/ …<토토로>의 그림은 10여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정교하고 아름답다.
1991년, 일본 도쿄 인근의 사야마 구릉지대의 360평 자투리땅 하나가 시민들에게 팔렸다. 수많은 시민들이 돈을 기부해 매입에 나선 덕분에 이 땅은 택지개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땅의 평수는 비록 적었지만, 그 상징성은 컸다. 보전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나 자연 환경, 동식물, 시설 등을 시민들이 돈을 모아 사들여 관리하는 이른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이 숲은 일본에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대표하는 성지가 됐다. 사람들은 이곳에 ‘토토로의 숲’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숲을 지키기 위한 ‘토토로의 고향기금’이 마련돼 지금까지 숲을 보전해올 수 있었다.

일본 국민들에게 ‘토토로’란…

토토로. 이 숲에 ‘토토로’란 이름이 붙은 것은 일본에서 ‘토토로’란 이름이 갖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숲의 정령인 토토로. 그 이상의 이름은 없었다. ‘토토로’의 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참여해 관심을 촉구한 덕분에 이 운동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도대체 ‘토토로’가 무엇이냐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이런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문화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거나 90년대 이후 최고의 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른 영상 산업과 애니메이션에 관심없는 사람.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명사인 <이웃집 토토로>와 이 작품을 만든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지난 10여년 사이 회자된 이름도 드물다. 비록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하야오와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없었지만 이미 국내 영화팬들에게 그 이름은 무척이나 친숙하다. 1200만명을 동원해 98년 일본 영화역사상 최고의 흥행성적을 올린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를 만든 하야오가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며 일본 애니메이션계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게 만든 작품이 바로 <…토토로>다. 영화가 들어오기 전부터 서울 시내 곳곳에 토토로 캐릭터상점이 생겨있을 정도로 토토로는 이미 국내팬들 사이에서 확실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 주인공 메이가 처음 토토로를 만나는 장면.
이 신화적인 애니메이션이 7월27일 국내에서 개봉한다. 1988년 만들어진 뒤 전세계를 휩쓸고 나서 꼬박 13년 만에 대한해협을 건너온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토토로>는 여전히 빼어나다. 요즘 유행하는 컴퓨터그래픽을 전혀 쓰지 않고 사람 손으로 그린 그림이 풍기는 인간적인 느낌은 요즘 애니메이션에서 느낄 수 없는 따듯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림의 정교함 역시 요즘 애니메이션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빼어난 자연 경관의 묘사, 나뭇잎이 하늘거리는 움직임이나 토토로의 털이 들썩거리는 자연스런 동작묘사는 요즘 작품 이상이다. 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이사간 자매가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고, 순수한 동심을 가진 어린이에게만 보이는 요정 토토로를 만나는 줄거리는 시공을 초월해 어른, 아이 모두를 빨아들이는 힘을 보여준다.

일본이 바로 지금 전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한 문화상품은 단연 애니메이션이고, 이 일본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이 <이웃집 토토로>다. 일본문화 개방 이후 국내에 들어온 일본 문화상품 가운데 최강, 최고의 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흥행여부는 요즘 영화계, 특히 애니메이션계의 비상한 관심거리다. 일단 겉으로 드러난 면모로만 보면 흥행에 실패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뜻밖에도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은 <…토토로>가 서울관객 30만명(전국 60만명)을 넘기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국제카툰&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기획자 박인하씨,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2권의 책을 낸 만화기획자 황의웅,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송락현, 애니메이션 전문지 <뉴타입>의 안영식 편집장 등 국내 최고의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의 예상은 하나같이 서울관객 30만명을 넘기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30만명은 문제없다고 예상하는 쪽은 수입사뿐이다.

서울관객 30만명을 넘길 것인가

재미있는 점은 전문가들이 이 일본 애니메이션이 우리 시장을 휩쓸까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대한 성공해 대박을 터뜨려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현재 상황으로선 이 유명한 작품이 올 여름 영화시장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토로가 부진할 경우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전반이 위축될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전문지 <뉴타입> 안영식 편집장은 “<…토토로>의 성공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흥행 성공 여부가 아니라 극장 애니메이션 자체의 생존 여부가 걸린 문제”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극장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선보이기 위해서는 비록 우리 영화는 아니지만 <…토토로>의 선전이 전제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전문가들이 <…토토로>가 흥행에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흥행 부진을 예측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지난 10여년간 무려 100만명 이상이 이 작품을 불법 복제 비디오테이프로 봤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볼 만한 사람은 이미 다 본 셈이다. 또한 영화 개봉 시점이 최악인 점도 어두운 전망을 내놓게 하는 이유다. 역사왜곡문제로 반일 감정이 극도에 이른 상태이고, 이 때문에 텔레비전 영화정보 프로그램들이 일본영화인 이 작품을 다루지 않고 있다. 오로지 신문과 입소문만으로 승부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 애니메이션은 의외로 국내에서 철저히 외면을 받아왔다. 일본 애니메이션 가운데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지니면서 컬트적 인기를 누리는 작품들인 <무사 쥬베이>와, <…토토로>와 같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도 각각 서울 관객 1만명과 6만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이런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토토로>의 선전을 쉽게 점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상이 반드시 맞으라는 법은 없다. <…쥬베이>나 <…나우시카>는 마니아 취향, 그리고 성인만을 타깃으로 하는 작품이었지만 <…토토로>는 분명 다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족적인 영화라는 점에서 일단 대상층이 훨씬 넓다. 여름 방학 시즌이 대형 영화들이 격돌하는 격전장이긴 해도 어린이를 데리고 갈 만한 영화가 의외로 없다는 점에서 잘 만하면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정서와 잘 맞는다는 점은 이미 비디오로 본 100만명이란 숫자가 입증하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족영화

결국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 아직까지 <…토토로>의 흥행은 예측 불가능이다. <…토토로>가 흥행에 실패할 경우 이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우리 영화계에서 찬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유명하다는 <…토토로>마저 안 된다면 도무지 “극장에 올릴”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토로>는 비록 일본 애니메이션이지만 앞으로 국내시장에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성공 기준선은 서울관객 30만명에 그어져 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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