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호그의 <버려진 모태의 땅>(1938). 인물과 사상사 제공
인물과 사상이 펴낸 <임석재의 생태건축>
이런 자연론은 로마시대와 중세 기독교 문명에까지 이어졌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던 로마 사람들은 자연을 장식적 대상, 볼거리, 방해물 등으로 받아들였다. ‘두 번째 위기’다. 로마 문명이 쇠퇴하고 기독교 문화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이 위기는 지속된다. 당시 기독교에서는 자연을 하늘이나 우주와 동의어가 되면 신령스러운 것, 눈에 보이는 지상의 자연은 인간에 종속된 것으로 구분했다. 이에 반해 중세 가톨릭은 자연을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적 사랑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대상이자 통로로 여겼다(‘두 번째 자연’). 기독교의 반생태적 속성에 대한 해법이 제시되는 듯했으나 이런 논리는 다시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문명의 등장으로 뒤집히고 만다. 문명의 중심에 자리잡은 인간중심주의는 본격적인 자연 정복의 서막을 열었다. ‘세 번째 위기’의 시작이다. 이를 극복한 것은 자연을 감성적 대상으로 정의하는 낭만주의가 등장하면서부터다(‘세 번째 자연’). 자연의 숭고미를 그린 풍경화가 유행하거나 건축에서 과거의 유적을 발굴된 그대로인 폐허 상태로 감상하는 운동 등이 등장한다. 그러나 위기는 반복된다. 기계론적 자연관이 등장해 자연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자연을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보던 첫 번째 자연관이 완전히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네 번째 위기’를 뒤집은 ‘네 번째 자연’은 자연을 영적이고 성스러운 것으로 바라본 자연철학이다. 이를 다시 뒤엎은 것이 ‘다섯 번째 위기’ 산업혁명이다. 생산력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로 확장되면서 인간의 물욕도 통제할 수 없는 크기로 팽창한다. 대규모 벌채, 토지집약적 농업, 광업의 활성화, 도시화, 석탄연료 사용 증가 등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자연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이용한다. 다섯 번째 위기는 사회 변화를 가장 큰 폭으로 보여준다. 이를 가로막을 대안은 무엇이었을까. 기독교 내부에서 자성하는 운동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 사회운동’이다. 산업화·자연파괴·물질주의·자본화 등을 경계하고, 정신적·영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종교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 데 대한 반성과 경계의 운동이었다. 기독교 사회운동에서 자연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거의 없지만, 산업화·자본화를 반대하는 간접 경로를 통해 자연파괴를 자연스럽게 일정 부분 늦추는 역할을 했다(‘다섯 번째 자연’). 그러나 산업화의 영향력은 워낙 막강했다. 19세기 서구 사회는 누가 더 빨리 산업화를 이루느냐가 관건이었다. 근대적 대도시가 형성되고, 무한 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도심의 고층 건물들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은 ‘물신’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위기’에서 자연은 재화 획득을 위한 원자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자연이라는 모태에서 분리시킨 인류는 분리 불안을 겪기 시작한다. 돌아갈 모태가 없는 영적 방황의 상태에서 사람들은 대도시에서 탈출해, 자연과 화해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농촌 미학’과 ‘교외 이상’이라는 ‘여섯 번째 자연’이다. 인간중심주의에서 자연중심주의로 사람들의 이런 노력에도 한 번 시작된 환경 위기는 20세기 들어 더욱 가속도를 낸다. 19세기 환경 위기가 유럽과 미국 등 몇몇 선진 산업국가의 대도시에 국한된 문제였다면, ‘일곱 번째 위기’의 시대에 환경문제는 전 지구적인 것으로 확산된다. 이에 사람들은 기술로 기술의 폐해를 돌파하자는 대안을 내놓지만 ‘기술득세주의’는 생태적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임 교수는 우리가 맞닥뜨린 일곱 번째 위기의 대안을 먼 과거에서 찾는다. ‘유기체로서의 자연’이다.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까지 포함하는 종합적 생명의 장으로서 자연을 인식하고 이런 생명체에 인간도 포함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환경위기를 새로운 기술에 의존해서 해결하려는 태도는 전형적인 인간중심주의라며 다시 자연중심주의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