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역사와 문학을 가로지른 정찬주의 ‘가슴 떨리는’ 견문록 <돈황가는길>
책을 보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지역이 있다. 아무리 따져봐도 연고를 설명하기 힘들지만 가슴속에 확 들어와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 그런 곳. 작가 정찬주씨가 돈황을 발견한 것은 엉뚱하게도 까까머리 시절 혜초가 둔황(敦煌)에서 <왕오천축국전>을 집필했다는 사지선다형 답안을 외우면서였다. 이유를 알 길이 없지만 돈황은 사춘기 내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등단한 뒤 <산은 산 물은 물> <만행> 등 구도소설과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 <암자에는 물 흐르고 꽃이 피네> 등 암자 기행을 써온 데는 어린 시절 무의식 깊숙이 박힌 둔황에 대한 동경도 한몫했으리라 추측하는 게 그리 억지는 아닐 터이다.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읽는 듯한 즐거움
지난해와 올해 두번에 걸쳐 둔황을 다녀온 정씨가 <돈황가는길>(김영사 펴냄)이라는 사색깊은 견문록을 냈다. 둔황으로 가는 그의 여정이 “의식과 무의식 속으로 스며든 상상과 자식의 물방울들이 여행지의 낯선 풍물과 조우하면서 뿜어올려지는 삼투압의 가슴 떨리는 체험”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중국과 서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에 자리잡은 오아시스 도시 둔황은 고대 동서교역과 문화교류의 요충지였다. 특히 막고굴이라고 일컫는 둔황석굴은 5호16국시대 서역에서 들여온 불교가 당대(唐代)에 이르러 찬란한 꽃을 피울 때까지 불교예술의 한 정점이 된 곳이다. 작가는 모래바람을 거스르며 구도의 길을 떠난 고승들의 인내와 불심에 마음을 실어 돈황가는 길을 독자들에게 안내한다. 이 글이 단순한 이국풍물기행에 머무르지 않는 것은 불교역사와 고대 중국문학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 감동과 명상의 결을 한층 깊고 섬세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셴양(咸陽)에서 시안(西安)을 지나 둔황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유적들은 고사(古事)들과 함께 소개되면서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읽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었던 화청궁 유적에서 양귀비는 목욕탕에서 갓 나온 우윳빛 탐스러운 몸으로 현현한다. 진시황릉을 지키기 위해 조성한 거대한 병마용갱에 이르러 ‘분서갱유’와 ‘지록위마’ 같은 고사성어는 한편의 드라마로 다시 펼쳐진다. 작가는 유적을 둘러싼 역사의 회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병마용갱을 발견한 시골 농부 양지발에게 기꺼이 한쪽의 사진을 할애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중국을 여유로운 시선으로 하나의 앵글 안에 포착한다. 이백과 두보에서 정호승과 도종환에 이르기까지 풍경 안에 적절하게 어우러진 시정(詩情)은 이 책을 문학적 감흥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작가의 감동이 가장 격정적으로 토로되는 곳은 역시 막고굴. 사춘기 때부터 그리워했던 막고굴과의 격렬한 상봉소감을 정씨는 이렇게 적는다. “나그네는 막고굴의 벽화들과 밀애를 즐겼다. 눈으로 간음하고, 손으로 애무하고, 몸으로 성교를 한 느낌이다.”
‘화랑 발견’으로의 비약은 옥에 티
시대마다 두드러지는 양식을 비교, 분석하는 그의 눈썰미와 지식의 깊이는 경탄할 만하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37호굴 ‘유마경변상도’에서 그가 펼치는 지식과 상상력의 결합이 다소 무리한 직관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그는 이 그림에 등장하는 ‘조우관을 쓴 사신’이 신라시대의 화랑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그 근거로 조우관이 “지금까지 봐온 것 중 가장 세련된 것”이며 “외교관이라기보다 화랑의 나이에 걸맞은 열혈청년의 얼굴”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스로 비약이라고 인정한 이 주장은 일간지와 방송에서 “둔황 막고굴 벽화에서 신라시대 화랑이 발견됐다”는 보도로 한번 더 비약됐다. 이 위험한 결론의 책임소재를 묻는다면 엄밀한 검증없이 하나의 주장을 객관적 사실로 만드는 언론의 경박스러운 속성에 있겠다. 그러나 정씨가 준황석굴 유물과 관련된 학계의 성과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것은 언론의 선정주의적 보도와 맞물려 옥에 티처럼 느껴진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돈황가는 길> 김영사, 9900원.
중국과 서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에 자리잡은 오아시스 도시 둔황은 고대 동서교역과 문화교류의 요충지였다. 특히 막고굴이라고 일컫는 둔황석굴은 5호16국시대 서역에서 들여온 불교가 당대(唐代)에 이르러 찬란한 꽃을 피울 때까지 불교예술의 한 정점이 된 곳이다. 작가는 모래바람을 거스르며 구도의 길을 떠난 고승들의 인내와 불심에 마음을 실어 돈황가는 길을 독자들에게 안내한다. 이 글이 단순한 이국풍물기행에 머무르지 않는 것은 불교역사와 고대 중국문학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 감동과 명상의 결을 한층 깊고 섬세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셴양(咸陽)에서 시안(西安)을 지나 둔황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유적들은 고사(古事)들과 함께 소개되면서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읽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사진/ 시대마다 두드러지는 막고굴 벽화의 양식을 비교, 분석하는 그의 눈썰미와 지식의 깊이는 경탄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