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목례까지 나누고 다시 전쟁에 돌입 판문점에서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남쪽 장교는 부역자 처리를 언급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적과의 동침>에서도 보았듯, 무고한 부역자가 많았다. 그런데 민간인이 아닌 최전선 부대에 적과 내통한 자들이 있다는 첩보를 받고, 방첩대 신하균이 동부전선으로 온다. 상관 살해에 대한 의문점과 전쟁 초반 실종된 친구가 그곳에 있다는 제보와 함께. 의문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린다. <고지전>은 <공동경비구역 JSA>에 비해 미스터리의 활용이 약하고, 생사의 현장에서 적과 기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의 묘사가 투박한 편이다. <고지전>의 방점은 다른 곳에 있다. <고지전>이 진정으로 주력하는 건 전쟁이 일상이 돼버린 곳에서는 이념이나 승패가 아닌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존기계로서의 명령이 그들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휴전협정 후 12시간’이 보여주듯 전쟁의 지독한 무의미다. 전쟁터에서 부대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명령을 내리는 상관을 살해하고 항명하는 것은 영화에서 거의 다뤄진 적 없는 금기지만, <고지전>은 이를 호들갑 떨지 않고 보여준다. 심지어 아군을 몰살하고 살아남은 전쟁영웅까지 나온다. 살아난 부대원들은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모두 죄의식을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다. 휴전협정 중의 교전도 그러하지만, 협정 뒤 모든 것이 끝났다며 서로 목례까지 나눈 이후의 12시간은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무의미를 선사한다. 영화는 대놓고 그 무의미를 관객에게 체험시킨다. 안개 낀 고지에서 양쪽 군이 <전선야곡>을 부를 때, 진심으로 어떤 꼼수를 써서라도 이 전쟁을 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그런데 협정 이후의 이 지독하게 무의미한 전투가 지난 60년간 남북이 꾸준히 해왔던 일들이 아닌가. 도끼 만행 사건, 서해교전, 연평도 사건 등은 모두 아무런 승패도 명분도 없고, 그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인 소모적인 전투들이다. 전투뿐이 아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군비를 늘리고 긴장을 강화한 모든 짓들이 이 ‘휴전협정 후의 12시간’과 무엇이 다를까. 영화는 마지막에 인민군 장교의 입을 빌려 무의미를 확인 사살한다. 전쟁 초반에 “너희들이 지는 이유는 왜 싸우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 인민군 장교에게 신하균은 왜 싸우는지 묻는다. 일주일이면 전쟁이 끝난다고 믿었던 인민군은 이념적 확신에 차 있었지만, 무의미한 전투의 반복 속에 확신은 잊히고 관성만 남았다. “이보다 더한 지옥이 없어” 편지와 물품으로 교류한 남한군을 저격하고 무덤덤하게 남한군이 준 초콜릿을 먹는 김옥빈과 그녀를 대검으로 찌르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신하균 사이에 우리의 윤리가 놓여 있다. 서로를 타자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휴전협정 후 12시간’과 다를 바 없는 한반도는 지옥이 될 것이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채 통증도 느끼지 못하며 좀비처럼 걷던 이제훈과 “우린 이미 죽었지만, 이보다 더한 지옥이 없어 여전히 여기에 있는 것”이라던 고수의 대사는 이를 말해주지 않던가. 황진미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