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경의 <조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
책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흔적을 좇는다. 그 흔적엔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육성과 눈물이 담겨 있다. 일본 땅을 비롯해 동토의 땅 사할린과 항일운동의 터전 간도, 동남아시아, 저 먼 태평양의 남양군도에 이르기까지다. 그중엔 일본의 전쟁 책임을 ‘대신’ 뒤집어쓴 이들도 있다.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에 대해 전후 일본 당국은 책임을 회피했다. 명령을 내린 일본군 장교는 조선인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도쿄전범재판에서 조선인 포로감시원 20명이 사형당했다. 타이와 버마를 잇는 철도인 태면철도(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철도) 공사에 투입된 조선인 포로감시원 800명 중 살아서 귀국선을 탄 사람은 300명뿐이었다. 사할린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전후 소련과 일본이 벌인 (일본인) 귀국 협상에서 배제됐다.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희생과 눈물이 세상에 알려진 데는 운 좋게 일본 귀환자에 포함된 박노학의 평생을 바친 노력이 컸다. 그는 일본에 귀환하자마자 사할린 동포들의 귀국 운동을 시작했다. 1966년 5800명의 귀환 희망자 명부를 한·일 양국 정부에 제출했고, 사할린 동포와 한국 가족 간에 편지 배달부 구실을 했다.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한 원혼 저자는 일본의 침략전쟁이 군부와 일부 우익이 결탁한 전쟁일 뿐 일왕과는 무관하다는 일각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한다. “당시 일본 헌법에 따르면 일본군 총수는 ‘천황’이다. 일왕이 일본군의 모든 지휘권을 갖고 있었다.” 히로히토 일왕은 상징적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1942년부터 도조 수상이 건의한 항복을 거부한 주인공”이자 “태평양전쟁이 난 이후부터 대본영에서 직접 전쟁을 지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일본 당국은 패전 뒤 ‘성스러운 결단’으로 전쟁을 종식시켰다고 칭송하며 그에게 평화주의자의 옷을 입혔고, 히로히토는 천수를 누렸다.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수백만 강제동원 피해자의 원혼은 어찌할 것인가”라고 이 책은 묻는다. 허미경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carmen@hani.co.kr * 정혜경 지음, 서해문집 펴냄, 1만39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