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주트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이 시기에 탈규제가 심한 나라일수록 부유한 소수와 가난한 다수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졌고, 사회문제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문제는 국가가 얼마나 부유한지가 아니라 국가 내부의 불평등이 얼마나 큰지였다. 선성장론(후분배론), 곧 번영과 특권은 파이 크기가 커지면 자연스레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된다는 견해에 대해 저자는,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증언함을 보여준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역사학자로서 멀리는 19세기, 가까이는 20세기 유럽·미국의 정책들을 들여다보며 역사적으로 통찰한다는 데 있다. 케인스와 루스벨트가 주도한 미국의 뉴딜정책, 전후 유럽 스칸디나비아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뤄낸 복지국가, 전후 영국의 사회보장국가 등은 빈부 격차 해소와 사회적 불평등 억제에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1945년 이후 1980년대까지 약 30년간 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서 빈부 격차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유럽의 중산층은 무상교육, 무료(저가) 의료 혜택, 공공연금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빈민층과 함께 똑같은 혜택을 누리는 대신 자신들의 세금으로 이 비용을 충당한 결과 1960년대에 가처분소득이 1914년 이래 사상 최대에 이르렀다. 지은이는 “세상이 그렇게 잘 돌아간” 까닭을 시장의 마술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데서 찾는다. 곧 정부가 시장을 규제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주의’란 말이 금기처럼 돼 있고 공공 목적의 재정지출을 옹호하는 논객들마저 ‘자유주의자’(리버럴)를 자처하는 미국에서 지내온 역사학자로서 유럽과 미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쓴 책이지만, 그 목소리는 미국식 사회모델이 횡행하는 한국 사회의 독자에게도 절절한 울림과 함께 직접적 문제제기를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당신이 원하는 국가는? 지은이는 2008년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최악의 적이 다름 아닌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 자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었다고 단언한다. 그의 열쇳말은 ‘큰 정부’ ‘복지국가’ ‘사회민주주의’다. 요약하면, 사민주의에 입각한 강력한 복지국가다. 이 역사학자가 격정적 어조로 토해내는 이야기는, 우리는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와 나는 어떤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는가? 우리가 원하는 국가는 어떤 종류의 국가인가?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토니 주트는 2010년 3월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뒤 그해 8월 뉴욕에서 숨졌다. 허미경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carmen@hani.co.kr * 토니 주트 지음, 김일년 옮김, 플래닛 펴냄, 1만3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