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내놓은 두 아들, 적자 〈A.I〉대 서자 <쥬라기 공원3>의 흥행싸움
스티븐 스필버그가 올 여름 ‘두 아들’을 동시에 내놨다. 스필버그는 1, 2편을 연이어 연출하면서 공룡 붐을 일으켰던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3편에서 총제작자로 물러났다. 대신 화제작 〈A.I〉 제작에 골몰해왔고, 그와 함께 일해온 단짝 프로듀서와 특수효과 전문가들은 이 두 작품에 동시에 매달려야했다. 스필버그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A.I〉가 적자, <쥬라기 공원3>는 서자인 셈이다. 적자와 서자의 흥행 싸움, 과연 누가 이길까?
이보다 더 좌절일 수는 없다?
〈A.I〉(국내개봉 8월11일 예정)는 지난 6월29일 미국에서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미지와의 조우>(1977) 이후 스필버그가 모처럼 각본과 연출을 홀로 맡아 만든 작품으로, 이날까지 영화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철저한 보안 속에 감춰져 왔다. 개봉날, 로스앤젤레스의 유니버설시티 안에 자리잡은 멀티플렉스 극장에는 가족 단위의 일반 관람객이 빼곡이 들어찼다. 영화가 끝나자 일부에서는 박수를 터뜨렸지만 상당수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CNN〉 등 텔레비전에는 연일 〈A.I〉 관련 소식이 쏟아져나오고 있었지만, 극장의 반응이 열광적인 건 분명히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더니 둘쨋주에는 곧바로 3위로 내려앉았다.
스필버그는 ‘할리우드의 자존심’이다. 지난 5월 칸영화제 당시 장 뤽 고다르가 “예전의 비평가 시절로 돌아가 스필버그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세밀히 분석해 볼 수도 있다”며 스필버그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을 때, <할리우드 리포터> <무빙 픽처스> 등 미국 영화매체들은 ‘감히 고다르가 스필버그를 비웃었다’는 어투의 비판성 기사를 일제히 실었을 정도다. 그렇다면 〈A.I〉에 대한 미국 내 평가는 어떨까? <시카고 선 타임즈>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위대함과 계산착오가 화면 안에서 다투고 있다”며 양비론적 자세를 취했다. “놀라운 장면들과 도발적인 아이디어로 채워진 장면”은 위대하지만, 인공지능 로봇들인 캐릭터에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뭔가 잘못됐다는 평가다. 미국의 종합일간지 〈USA 투데이〉는 좀 더 ‘적극적’이다. “큐브릭에게는 너무 포근하고, 스필버그에게는 아주 서늘한 이야기다. 스필버그는 1987년의 <태양의 제국> 이래 영화를 이렇게 좌절스럽게 만든 적이 없다.” ‘좌절감까지?’하는 생각이 들지만, 큐브릭과 스필버그의 작품 경향에 빗대 영화의 어정쩡한 위치를 지적한 비유는 아주 적절해 보인다. 익히 알려진 대로 〈A.I〉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맡기 전까지 무려 15년 동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갈고 닦아온 기획이었다. 스필버그와 20년 넘게 파트너십을 유지해오며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은 캐슬린 케네디는 “큐브릭의 염세적, 비관적 색채와 스필버그의 낙관적 세계관이 적절히 어울린 영화”라고 말했지만, 두 거장의 합작품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큐브릭이 판권을 사들여 이 영화의 원안이 된 단편소설 〈Super Toys Last All Summer Long〉은 숲에 버려진 소년 로봇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의 내용상, 이 작품이 큐브릭의 독창적인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뒤를 이으리라는 기대를 일찍부터 모은 건 당연한 일이다. 놀라운 과학적 상상력과 아름다운 영상으로 유명한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지능을 갖게 된 기계 대 인간의 대결 구도, 인류의 기원에 대한 비밀 등을 담고있어, 진짜 인간이 되고픈 소년 로봇의 갈망을 담은 〈A.I〉와 어울려 보인다. 〈A.I〉에서 큐브릭의 손길은 시대 배경에서 감지된다. 먼 훗날, 지구는 온난화 효과로 남극의 얼음들이 녹아내리자 땅의 상당 부분이 바다에 잠겨버린다. 뉴욕의 맨해튼 역시 예외는 아니며, 물 속에 잠긴 도시 풍경은 스필버그의 손에 힘입어 멋지게 그려진다. 조 존스턴 “<쥬라기 공원4>는 사양하겠다”
그런데 이런 미래는 어쩐지 암울하지 않다. 비극적인 건 인간이 아니라 기계다. 감정이 프로그래밍된 소년 로봇 데이비드(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치명적인 병으로 미래를 기약하며 냉동된 아들을 둔 가정으로 입양되는데, 그는 그곳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극적으로 돌아온 진짜 아들과 애정 경쟁을 벌이던 데이비드는 몇번의 말썽 끝에 그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퇴물 로봇들이 숨어 사는 어두운 숲에 버려지게 된다. 여기까지가 크게 세 토막으로 구성된 〈A.I〉의 첫번째 이야기다. 스필버그와 큐브릭이 공유했을 문제의식은 이곳에서 모두 소진돼 버린 듯, 스필버그는 이 다음부터 인간이 되고픈 슬픈 피노키오의 운명을 ‘ET’의 모험담처럼 엮어간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데이비드는 여성들에게 성적 쾌락을 안겨주라는 임무를 안고 태어난 로봇 ‘지골로 조’(주드 로)와 만나 가혹한 인간들의 손길을 피해다니느라 바쁘다. 세번째 이야기는 바다 속 도시로 들어간 데이비드가 동화처럼 만들어내는 반전의 장면들이기 때문에 미리부터 밝히기가 약간 곤란하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멋진 미래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A.I〉의 매력은 스필버그의 작가적 태도가 아니라 두 주연배우에서 풀풀 풍긴다. <식스 센스>에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착한 소년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진짜같은 인조인간이 돼 가히 천재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진 켈리의 춤을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주드 로의 연기도 일품이다.
<쥬라기공원3>(국내개봉 7월20일)에서 심오한 문제의식을 찾으려는 이는 더 이상 없다. 1편에서 원작소설이 가진 화두였던 카오스 이론은 공룡의 출현에 거품처럼 사그라들었고, 2편은 잔혹스러웠을 뿐이다. <쥬만지> <애들이 줄었어요>를 만든 조 존스턴 감독이 부담스런 연출을 맡은 3편은 그래서 성공적이다. 이 시리즈에서 따져볼 건 재미와 볼거리인데, 이 대목에서 3편은 1·2편을 앞선다. 처음으로 등장한 유머는 주인공들이 공룡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알맞은 수위로 쉼없이 끼어든다. 공룡들의 난투극은 전편들보다 덜 잔인해졌으면서도 다양해졌다. 티―렉스보다 더 크고 강력한 티라노사우루스가 새로 등장해 땅에서는 물론이고 물 속에서도 끈질지게 인간사냥에 나서고, 특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익룡들의 대거 출연이 볼만하다. 또 똑똑해서 더 공포스러운 랩터는 한결 높아진 지능을 자랑하는데, 사로잡은 인간을 덫으로 놓고 다른 인간을 유인할 정도다. 스토리 자체는 여전히 특별할 게 없다. 공룡들의 번식처 이슬라섬 주변에서 해양놀이를 즐기던 소년이 실종되자 그 부모가 고생물학자 그랜트 박사(샘 닐)를 충동질해 ‘악몽의 섬’으로 뛰어들면서 아슬아슬한 모험이 시작된다. 스필버그 사단은 원작소설가 마이클 클라이튼과 함께 4편의 시나리오 제작에 착수했지만, 존스턴 감독은 “4편은 절대 사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상상하면 뭐든 다 만들어낸다
작품에 대한 기대감만 놓고 따진다면, 스필버그의 적자보다는 서자가 앞선 형국이다. 하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만나본, 양쪽 제작에 참여한 스탭들은 〈A.I〉 제작이 좀더 흥미로웠던 낌새다. “〈A.I〉의 바다 속 도시 세트는 진짜 아름답다. 그런데 그걸 보존할 수가 없다. 빨리 이런 훌륭한 세트를 길이 남길 박물관을 만들어야한다.” 제작비를 염두에 두는 프로듀서라서 더 그랬겠지만 케슬린 케네디의 이 말은 진심처럼 들렸다. 또 <쥬라기공원3>에서 로봇 공룡을 디자인하고 그 액션연기를 감독한 스탠 윈스턴은 주로 〈A.I〉의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서 얘기를 쏟아냈다. “가장 중요한 건 상상력이다. 이제 상상하면 뭐든 다 만들어낸다. 스스로 창조력과 상상력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도 언젠가 만들어질 것이다. 미리 윤리적 선입견을 가지고 ‘이건 안된다’고 상상력에 제한을 둬서는 안된다.” <터미네이터2> <에일리언2> 등에 참여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기술진으로 꼽히는 그는 〈A.I〉를 만들 때 주인공 소년을 아예 로봇으로 만들어 연기를 시키자고 제안했지만, 스필버그가 “‘아직 이르다’며 만류했다”고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이성욱 기자/ 한겨레 문화부

사진/ 스탠리 큐브릭의 미완프로젝트를 스필버그아 이어받은 〈A.I.〉는 관객 동원과 평단 모두에서 시큰둥한 반응을 얻었다.
스필버그는 ‘할리우드의 자존심’이다. 지난 5월 칸영화제 당시 장 뤽 고다르가 “예전의 비평가 시절로 돌아가 스필버그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세밀히 분석해 볼 수도 있다”며 스필버그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을 때, <할리우드 리포터> <무빙 픽처스> 등 미국 영화매체들은 ‘감히 고다르가 스필버그를 비웃었다’는 어투의 비판성 기사를 일제히 실었을 정도다. 그렇다면 〈A.I〉에 대한 미국 내 평가는 어떨까? <시카고 선 타임즈>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위대함과 계산착오가 화면 안에서 다투고 있다”며 양비론적 자세를 취했다. “놀라운 장면들과 도발적인 아이디어로 채워진 장면”은 위대하지만, 인공지능 로봇들인 캐릭터에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뭔가 잘못됐다는 평가다. 미국의 종합일간지 〈USA 투데이〉는 좀 더 ‘적극적’이다. “큐브릭에게는 너무 포근하고, 스필버그에게는 아주 서늘한 이야기다. 스필버그는 1987년의 <태양의 제국> 이래 영화를 이렇게 좌절스럽게 만든 적이 없다.” ‘좌절감까지?’하는 생각이 들지만, 큐브릭과 스필버그의 작품 경향에 빗대 영화의 어정쩡한 위치를 지적한 비유는 아주 적절해 보인다. 익히 알려진 대로 〈A.I〉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맡기 전까지 무려 15년 동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갈고 닦아온 기획이었다. 스필버그와 20년 넘게 파트너십을 유지해오며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은 캐슬린 케네디는 “큐브릭의 염세적, 비관적 색채와 스필버그의 낙관적 세계관이 적절히 어울린 영화”라고 말했지만, 두 거장의 합작품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큐브릭이 판권을 사들여 이 영화의 원안이 된 단편소설 〈Super Toys Last All Summer Long〉은 숲에 버려진 소년 로봇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의 내용상, 이 작품이 큐브릭의 독창적인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뒤를 이으리라는 기대를 일찍부터 모은 건 당연한 일이다. 놀라운 과학적 상상력과 아름다운 영상으로 유명한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지능을 갖게 된 기계 대 인간의 대결 구도, 인류의 기원에 대한 비밀 등을 담고있어, 진짜 인간이 되고픈 소년 로봇의 갈망을 담은 〈A.I〉와 어울려 보인다. 〈A.I〉에서 큐브릭의 손길은 시대 배경에서 감지된다. 먼 훗날, 지구는 온난화 효과로 남극의 얼음들이 녹아내리자 땅의 상당 부분이 바다에 잠겨버린다. 뉴욕의 맨해튼 역시 예외는 아니며, 물 속에 잠긴 도시 풍경은 스필버그의 손에 힘입어 멋지게 그려진다. 조 존스턴 “<쥬라기 공원4>는 사양하겠다”

사진/ 처음으로 유머가 등장한 <쥬라기 공원3>는 볼거리에서 전편들을 앞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