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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곤충을 닮은 비행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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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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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갯짓 이용한 고난도 비행원리 밝혀… 미세비행체 실전 배치 머지않아

사진/ 곤충을 날개를 사용해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생물이 되었다. 곤충의 비행을 모방한 미세비행체의 모형도.
삼엄한 눈초리의 보초병들이 격전지 요새를 빈틈없이 지키고 있다. 땅 위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보초병들도 공중의 작은 반점처럼 보이는 물체를 주목하지는 않는다. 설령 누군가 물체의 쓰임새에 이상한 느낌을 받더라도 속수무책이다. 주시하는 순간 민첩한 동작으로 금세 시야에서 벗어나는 탓이다. 다시 물체는 공중에 머물며 적의 동태를 카메라에 담는다. 같은 시각에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지휘본부 병사들은 손목 모니터를 통해 비행물체에서 날아오는 입체적 정보를 분석한다. 그리고 얼마 뒤 지휘본부는 비행물체를 일정한 장소로 원격 조종해 목표물을 공격하도록 지시한다.

이런 일은 공상과학영화 밖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미국 국방성 방위연구소(DARPA)의 3500만달러짜리 미세비행체(Micro Air Vehicles: MAV)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끝나면 MAV는 전투현장에 실전 배치될 전망이다. 이미 미군은 MAV 유형의 무인정찰기를 걸프전과 보스니아 내전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투입된 무인정찰기는 무게가 4.5kg, 길이 1.2m로 MAV의 시험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비행체의 크기를 줄인다고 MAV 구실을 하는 건 아니다. 새나 곤충의 비행특성을 살펴 양력이나 추진의 원리를 제대로 적용해야 성공적인 MAV 구실을 할 수 있다. MAV는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의 기술 지원을 받아 손가락 크기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소형인 까닭에 연구자들은 새보다는 곤충의 비행을 모방하는 방식에 기대를 걸고 있다.

왜소한 날개로 몸체 띄우는 비결


사진/ 곤충의 근육에 전극을 연결해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날개의 변화를 살핀다.
지금까지 곤충의 비행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생물체의 비행원리는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다. 라이트 형제의 발명에서 비롯된 고정익 항공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고정익 항공기는 날개의 형태와 접근각이 날개의 상부에서 저압지역을 만들어 양력을 발생시켜 날아오른다. 이에 비해 곤충은 날아다니기에 충분한 양력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곤충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최초의 생물로 무려 3억5천년 전인 석탄기시대에 비행을 시작했다. 고정익 항공기는 낮은 속도에서 충분한 양력과 추진력을 얻을 수 없지만 곤충은 날갯짓을 통해 저속 비행을 즐기기도 한다. 잠자리의 순간 가속능력은 최신예 전투기가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다.

곤충이 왜소한 날개에 의지해 육중한 몸집을 공기중에 띄우는 비결은 무엇일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동물학자 찰스 엘링턴 연구팀이 이런 의문에 관한 실마리를 풀었다. 현재 DARPA의 MAV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엘링턴은 비행중인 곤충이 날개 전방 테두리 위의 공기에 나선형의 소용돌이를 발생시켜 양력을 얻는다는 ‘공기기둥 형성설’을 제시했다. 소용돌이가 날개 위쪽에 저압지역을 만들고 날개 밑에 형성된 고압 영역이 날개를 밀어올려 양력을 만든다는 것이다. 보통 항공기는 주로 날개 위에 형성되는 와류(渦流)효과로 날개 위쪽의 공기 속도가 아래쪽보다 더 빨라 날개 윗부분의 기압이 낮아져 날게 되는 것도 반대의 비행원리인 셈이다. 이런 곤충의 양력 발생 메커니즘은 어떻게 공기중에서 스스로를 조절하는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사진/ 곤충들은 독특한 비행술로 공기중에 머문다. 잠자리 날개 주위에 공기가 흐르고 있다.
곤충은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지배하게 되었다 곤충 중에서 가장 교묘하게 비행하는 게 잠자리다. 잠자리는 전진·후퇴가 자유롭고 공중에서 정지했다가 갑자기 시속 50km의 속도를 낼 수 있다. 4륜구동의 놀라운 기동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흉부에 있는 아포템이라는 탄력성이 뛰어난 단백질은 큰 날개를 1초에 25∼30회나 저을 만큼의 힘을 뒷받침한다. 파리는 곤충 중에서 가장 빠른 비행속도를 자랑한다. 애벌레가 사슴에 기생하는 말파리는 시속 1300km의 속도로 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으며, 시속 65km로 자동차 주위를 선회하다가 순간적으로 차체에 내려앉기도 한다. 곤충이 지구상의 유기체 중에서 가장 번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날갯짓 비행이 있었기 때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신비로운 날개운동으로 수억년 동안 진화해온 곤충. 공중에서 방향을 선회하고 놀라울 정도의 곡예비행을 수행하는 것도 독특한 날개운동을 통해 이뤄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밝혀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조그만 날개들의 역학적인 본질이 비행기처럼 날개 주변의 일정한 공기흐름과 고정된 날개를 통해 접근할 수 없다는 게 걸림돌이다. 만일 새의 날개를 비행기의 날개로 취급하고서 어떤 특정시간에서 그 속도와 상승력을 계산해 전체 날갯짓에 합산한다면, 그 새가 어떻게 공중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지를 대략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조류에게 적용되는 고정익 항공기의 공기역학이 곤충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곤충의 독특한 비행역학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생물학자 마이클 디킨슨 연구팀은 노랑초파리를 모델로 ‘로보플라이’(robofly)라는 25cm 길이의 로봇식 날개 한쌍을 제작했다. 이들은 비늘이 있는 날개들처럼 공기중에서 빠르게 퍼득거리는 효과를 내도록 로보플라이를 점성이 강한 미네랄 오일 탱크에 넣어두었다. 그런 다음에 각 부위에 센서를 부착한 로보플라이에 힘을 가하면서 날갯짓의 작용 메커니즘을 파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디킨슨팀은 곤충이 중력을 이겨내고 공중에 떠 있도록 하는 3가지의 흥미로운 기술을 밝혀냈다.

사진/ 교대식 회전은 테니스공을 백스핀으로 치게되면 주변에 승강기류를 형성하는 방식의 기작이다.
곤충이 공기중에 머무는 대표적인 방법은 ‘지연성 스톨’(delayed stall)이다. 곤충이 날개의 아랫면과 공기 흐름면이 받음각을 이루도록 앞쪽으로 기울이면서 빠르게 지나갈 때 일어난다. 항공기나 새들의 날개처럼 고정된 날개가 큰 받음각으로 멈추게 되면, 갑자기 상승력을 잃고 추락하게 된다. 그렇지만 곤충은 날갯짓으로 양력을 계속 만들어 공중에 머물 수 있다. 다음은 곤충이 날갯짓을 거의 마칠 즈음에 날개가 뒤쪽으로 회전해 역회전력을 만들어내는 ‘교대식 회전’(rotational circulation)이다. 역회전으로 테니스공을 들어올리듯이 교대식 회전을 통해 순간적인 상승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항적(航跡) 포착’(wake capture)이라 불리는 기작이다. 날갯짓을 시도한 곤충이 원위치로 되돌리기 전에 회전하면 애초의 항적과 교차할 수 있어서 곤충이 일시적으로 공중에 뜨면서 활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지연성 스톨은 고난도의 비행술이어서 일부 곤충만 가능하다. 이와 달리 교대식 회전이나 항적 포착은 대부분의 비행성 곤충이 공중에서 시도할 수 있다.

신체의 상호작용 등 아직 수수께끼로

그들만의 양력 발생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곤충은 5mm 안팎의 크기로 날아오르기 위해 고난도의 비행술을 진화시켜왔다. 만일 곤충의 비행 기작을 MAV 제작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면 놀라운 성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까지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곤충이 날갯짓 순간을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 비행의 형태는 복잡한 양상으로 펼쳐진다. 그런 순간 포착은 기술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뇌와 신경계, 근육 그리고 골격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게 마련이다. 앞으로 곤충의 신체 상호작용을 둘러싼 비밀이 풀린다면 곤충을 닮은 MAV가 전장을 누비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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