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고나무 기자
벌써 3년차 기자인 아들에게 “넌 항상 덜렁거리니까” 같은 어법은 도무지 참기 어렵다. 그게 친구든, 누나든, 20여 년간 민완 기자로 일하다 얼마 전 퇴임한 어머니든. 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 더 있다. 아버지가 술주정을 부릴 때보다 “당신은 종종 어리바리하니까…”라고 말할 때 더 불같이 화내던 게 어머니다. 자신이 싫어했던 말을,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4월 말 서울의 저녁 공기는 차다. 마지막 한 모금을 내뿜고 아들이 들어온다. 약불로 줄이자 압력솥 수증기 소리가 잦아든다. 오늘밤의 대화는 아들에게 익숙했다. 출장 준비는 물론 대학, 연애 등 일상의 모든 문제에서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는 자주 어긋났다. 늘 자기 확신에 찬 어머니는 좀체 자기 말을 접지 않는다. 마음먹은 말이 있으면 상대의 답변에 아랑곳없이 끝까지 뱉었다. 어린 아들에게 그 자기 확신의 언어는 멋있어 보였다. 그러나 지금 ‘두 개의 자기 확신’은 4월 말 저녁 밥상 앞에서 충돌한다. 아들은 티셔츠 소매를 걷고 도마를 꺼냈다. 재료를 확인했다. 1시간 전 마트에서 산 닭가슴살을 한 입 크기로 썰어 간장 1작은술에 재어놨다. “16년 동안 목마를 타고….” 여전히 방은 TV 소리뿐이다. 냄비가 달아오르자 아들은 닭고기와 양파를 넣고 2~3분 중불에 끓였다. 닭고기가 익자 불을 올리고 달걀을 절반 붓고 뚜껑을 닫았다. 20초 뒤 달걀이 조금 익은 뒤 남은 달걀을 붓고 10초 더 끓였다. 압력솥에서 밥을 퍼 닭고기와 달걀을 올렸다. 오야코(親子) 돈부리의 ‘오야’는 어머니이고 ‘코’는 아들이다. 달걀이 닭의 자식이므로 닭고기와 달걀이 함께 들어가는 덮밥을 이렇게 부르게 됐다. 취재와 술자리로 늘 바빴던 어머니가 아들에게 자주 해주던 초간단 요리다. 아들은 두 그릇의 오야코 돈부리를 상에 올렸다. 조용히 상을 들고 들어갔다. “드세요.” “그냥 물 대신 다시마 우린 물을 넣으면 더 좋다.” 어떤 상황에서도 비평하지 않곤 못 배기는 버릇 고치라는 말을 아들도 요새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다. 나쁜 피든 좋은 피든, 피는 어쩔 수 없다. ‘어머니와 아들이 같이 먹어서 오야코 돈부리인가’라고 아들은 오야코 돈부리를 욱여넣으면 생각했다. (오야코 돈부리를 만들어 먹으며 떠올린 상상입니다. 만들기 쉽고 맛있었지만, 역시 이름은 괴상합니다. 조리법은 네이버를 참조했습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