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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얼굴’이라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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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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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반영하는 창, 프랑스의 여성작가 니콜 아브릴이 말하는 <얼굴의 역사>

얼굴은 영혼의 창이고,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얼굴을 꾸미고 치장하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그리고 이 얼굴의 아름다움을 따지는 기준과 선호도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해왔다. 그러나 변함없었던 철칙은 얼굴이야말로 아름다움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얼굴은 가장 오랜 예술 작품의 소재이기도 했다. 얼굴을 주제로 만들어진 최초의 예술작품인 고대 이집트의 <가부좌의 서생>부터 그리스의 조각상들과 중세의 성화 등 얼굴에 관한 예술작품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또한 얼굴은 많은 전설과 설화의 소재이기도 했다.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에 도취됐던 나르시스가 만약 자기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을 봤다면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클레오파트라도 있다. 그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이집트 고대 미술부터 할리우드 스타까지

사진/ 얼굴은 시대에 따라 다른 가치관, 다른 관념을 반영하는 예술의 소재였다. 고대 이집트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기원전 1355년), 중세 화가 마사이스의 그림 <튀니지의 여왕>, 피카소의 <앉아 있는 도라 마르>, 그리고 20세기 대중스타 오드리 헵번(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겉으로야 엄청난 차이가 나 보이지만, 사람들의 얼굴이란 살갗 한겹만 벗겨내면 사실 다 똑같다. 문제는 바로 그 한꺼풀 겉모습이 실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거기에 집착한다. 성형수술이란 요즘 시대에만 있는 문명의 혜택 같지만 그 역사는 고대 이집트까지 올라간다. 클레오파트라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나일강변에서는 코를 고치는 수술이 시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수술이란 것이 얼굴 본연의 순수함을 앗아가더라도, 사람들은 시대적 아름다움에 부합하고자 스스로의 얼굴에 손을 대왔다. 얼굴이 종종 그 자체로 능력이자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흔히 얼굴을 “영혼의 창”이라고 한다. 하지만 얼굴은 동시에 그 자체로 역사를 반영하는 창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여성작가 니콜 아브릴의 책 <얼굴의 역사>(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펴냄/ 9800원/ 문의 02-335-2854)는 바로 얼굴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됐는지, 인간의 얼굴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문화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는 이색 역사책이다.

책은 서양역사를 중심으로 얼굴의 역사적 파노라마를 상상력을 보태 설명해나간다. 이집트 고대 미술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얼굴을 묘사한 조각상인 <가부좌의 서생>부터 시작해 짙은 화장술로 영원한 젊음을 추구했던 로마 여성들의 이야기, 그리고 기독교 미술을 중심축으로 삼아 본격적인 얼굴의 묘사가 시작된 중세, 피카소의 자화상과 은막의 할리우드 스타들로 대변되는 20세기까지.

십자군 전쟁과 동방 화장품의 유럽 진출

얼굴을 통해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빚어낸 이야기들은 때론 믿기지 않을 만큼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때론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동감을 하게 만든다. 지은이가 ‘얼굴’이란 열쇳말로 해석하는 역사는 일단 재미면에서 훌륭하다. 가령 예수는 우상숭배에서 교묘히 벗어나면서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했고 이 덕분에 기독교 예술은 발전했다는 것, 그리고 십자군 전쟁을 통해 동방의 화장품이 유럽에 들어오면서 당시 기독교가 금지했던 화장과 염색이 부활됐고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살아났다는 이야기 등은 흥미롭다.

지은이는 사람들이 외모에 집착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얼굴을 통해 존재의 정체성과 영혼의 안식을 얻으려는 시도가 있어왔다는 점도 강조한다. 인간이 얼굴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판단할 기준이 없다고 믿고 사실적인 묘사 그 자체에 충실했던 15세기 플랑드르 화가들, 신의 얼굴에 가려져 있던 인간의 얼굴을 비로소 그리기 시작했던 르네상스의 화가들이 바로 그런 시도의 주역이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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