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계 판도를 바꾸는 어제의 스타들, 캐프리아티와 이바니셰비치를 지켜 보라
세계여자테니스계에 ‘그들만의 매력’으로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는 테니스미녀들이 있는가 하면 ‘파워테니스’로 재기의 투혼을 불사르는 옛 스타들이 공존하고 있다. 마르티나 힝기스(21·스위스), 안나 쿠르니코바(20·러시아) 등 ‘코트의 모델’들이 짧은 흰 스커트 사이로 속살을 살짝살짝 보이며 플레이를 하는 모습에 숱한 남성팬들의 심장 박동소리는 더욱 거세진다. 어린 시절 승마와 스키로 단련된 균형잡힌 몸매의 세계여자테니스 1위 힝기스는 어느덧 숙녀의 향내를 풍기며 최근의 성적과 관계없이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빼어난 몸매와 수려한 용모가 돋보이는 10대, 20대 초반의 신세대 스타들의 기세에 눌린 ‘과거의 스타’들은 성적 매력보다는 오로지 실력으로 재기의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기적적인 재기에 성공한 10대 돌풍 원조
재기투혼의 선두주자는 단연 제니퍼 캐프리아티(25·미국). 비록 윔블던 결승문턱에서 10대 돌풍 쥐스틴 에냉(19·벨기에)에게 쓴 잔을 마셨지만 캐프리아티는 올해 첫 그랜드슬램대회인 오스트레일리아오픈과 6월 프랑스오픈을 거머쥐며 기적적인 재기를 선언했다.
그의 재기 뒤엔 어두웠던 과거가 있었기에 더욱 빛을 더한다. 그는 지난 89년인 13살 때 역대 최연소로 프랑스오픈 주니어대회우승을 차지하며 세상에 이름을 내놨고 다음해 14살의 앳된 소녀의 모습으로 프랑스오픈 4강에 올랐다. 그랜드슬램 역대 최연소 준결승 진출이라는 기록이었다. 이른바 10대 돌풍의 ‘원조’가 된 셈이다.
91년 윔블던과 US오픈 준결승에 진출, 그해 세계 6위까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마침내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미국에 금메달을 안겨줌으로써 화려한 ‘캐프’의 시대를 예고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성공의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마리화나 소지혐의와 귀금속 절도혐의로 체포되는 등 비행청소년의 길로 치달았다. 이로 인해 94년부터는 아예 라켓을 내동댕이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15개월 뒤 라켓을 다시 쥔 그는 96년 시카고대회 때 재기의 스파링 파트너로 당시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세계랭킹 1위 모니카 셀레스(미국)를 잡았다. 15살 때 샌디에이고 대회 결승에서 두살하고도 4개월 위였던 셀레스를 꺾었고, 이듬해 마이애미에서도 언니를 울린 적이 있어 세계 50위로 추락한 자신의 부활을 세상에 알리기엔 셀레스 언니는 더없이 좋은 희생 제물이었다. 결국 96년 시카고대회 때 셀레스를 이긴 캐프리아티는 부활의 싹을 찾았고 패배를 당한 셀레스는 이날의 충격으로 ‘여제’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캐프리아티는 셀레스의 테니스 인생에서 늘 걸림돌이 돼왔다. 91년부터 93년 여자테니스 1인자로 절정기를 구가하던 셀레스는 93년 4월 독일 함부르크오픈에서 라이벌 슈테피 그라프(독일)의 광적인 팬인 귄터 파쉐에게 어깨뼈 사이를 칼에 찔리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 그 뒤 2년동안 라켓을 놓은 셀레스에게 코트복귀 1년 만에 당한 시카고대회 패배는 충격이 더했다. 이후 셀레스는 98년 프랑스오픈 준우승을 차지한 것말고는 변변한 성적을 내지 못해 오늘날까지 ‘불운의 스타’로 팬들의 기억속에 자리를 잡아나갔다. 심지어 올해는 90년부터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해 안방이나 다름 없는 프랑스오픈마저도 부상을 이유로 불참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승부한다
그는 중대한 고비에서 힝기스, 린지 데븐포트(25·미국), 비너스 윌리엄스(21·미국) 등 톱3의 벽을 한번도 넘지 못했다. 체력의 한계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셀레스에게는 은퇴 시기만을 남겨두었다는 평이 떠돌기에 이르렀다. 이와 달리 캐프리아티는 99년 프랑스오픈과 US오픈 4회전까지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재기를 선언했다.
마침내 올 상반기는 오스트레일리아오픈과 프랑스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해 그랜드슬램대회 2연승을 거뒀다. 그 누구보다도 부럽지 않은 생애 최고의 해를 맞이한 것이다. 지난 5월 프랑스오픈 직전에 라우레우츠 스포츠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재기상을 받을 정도로 그의 재기는 자타가 공인한다.
라우레우츠 아카데미는 마이클 조던(농구스타), 펠레(축구황제),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테니스 철녀) 등 스포츠 스타들과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 다임러 크라이슬러사와 함께 설립한 재단(모나코 소재)으로 지난해부터 스포츠 아카데미상 수상자를 뽑아왔다. ‘파워 테니스’로 여자테니스계를 강타하는 캐프리아티의 재기는 늘 곁에 붙어다니며 코치와 연습파트너를 자처하는 아버지와 오빠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다.
수영과 달리기, 사이클, 헬스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소유자로 거듭난 캐프리아티는 스피드와 힘을 겸비하며 다시 일어서게 됐다. 쇠락의 징조를 보인다고는 하지만 셀레스에게도 재기의 징조가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셀레스는 지난 4월 미국 오클라호마 IGA(총상금 17만달러)대회 결승에서 캐프리아티를 2-1로 물리치며 재기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셀레스가 “더이상 나를 비운의 스타로 부르지 말라”는 말을 입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남자선수 가운데도 고란 이바니셰비치(30·크로아티아)가 윔블던 테니스대회 4강에 오르며 재기의 청신호를 밝혔다. 92년 세계 2위까지 오르며 220km대의 ‘광속서브’로 코트를 주름잡던 이바니셰비치였지만 98년 윔블던 결승에서 피트 샘프러스(31·미국)에게 참패를 당한 뒤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급기야 올해는 세계 125위까지 끝없이 추락했다. 그러나 2001윔블던대회 주최쪽이 주는 와일드카드를 간신히 얻어쥐고 4강까지 오르는 대회역사에 길이 남을 일을 해냈다.
그는 상위랭커들과 싸우면서 그동안의 울분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윔블던 잔디에 시속 222km대의 서브에이스 150여개를 꽂아 넣었다. 아직도 서브 하나로 경기를 치르며 자신의 살길을 찾아나가고 있다. 88년부터 윔블던에 참가하며 ‘노익장’을 과시한 그이기에 4강까지 오른 것도 신기에 가깝다.
그 밖에 윔블던 준결승에서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친 앤드리 애거시(30·미국)의 힘찬 재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4년 전 세계순위 141위까지 떨어진 애거시는 99년 프랑스오픈과 US오픈에 이어 2000년 오스트레일리아오픈을 휩쓸며 라이벌 샘프러스를 제치고 남자테니스계를 장악했다. 재기에 시동을 건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지난해 윔블던 4강에서 탈락하고 나서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쳤고, US오픈 2회전 탈락과 이후 계속되는 투어대회 1회전 탈락으로 1회전 탈락 단골손님이라는 오명을 쓰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와 누이가 한꺼번에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1회전 탈락 전문이라는 오명을 씻을 겨를도 없이 방황의 나락으로 계속 떨어지게 했다. 그러나 그는 불행의 긴 터널 속에서 빠져나와 올 시즌 첫 그랜드슬램대회인 오스트레일리아오픈 2연패를 거머쥐더니 윔블던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바니셰비치와 애거시의 놀라운 노익장
얄궂게도 3년 연속 윔블던 준결승에서 만난 패트릭 래프터(29·오스트레일리아)에 다 잡은 경기를 막판 체력 한계로 무너져 결승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애거시는 92년 윔블던 우승을 차지하고 거의 9년 만에 윔블던 타이틀 재탈환을 시도했을 정도로 장수 테니스를 구가하고 있다.
으레 대회 때마다 10대는 돌풍을 일으키고 20대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마련이다. 전성기를 마친 20대 후반과 30대에겐 재기를 통한 새 삶의 기회가 언제나 주어진다. 시련을 딛고 ‘코트여왕’으로 등극한 캐프리아티처럼.
박원식 기자/ 한겨레 스포츠레저부 pwseek@hani.co.kr

사진/ 올해 두개 대회를 제패하며 재기에 성공한 제니퍼 캐프리아티.(GAMMA)

사진/ 은퇴설이 나도는 불운의 스타 모니카 셀레스.(GAMMA)

사진/ 윔블던대회 결승에 오른 ‘광속서브’의 고란 이바니셰비치.(AP연합)

사진/ 올 시즌 녹슬지 않은 기량은 보여준 앤드리 애거시.(AP연합)









